이날치 안이호, 이번엔 SF 감각의 수궁가
첫 非단원 소리꾼으로 한 무대
동해안별신굿 가락 판소리 접목
“이날치 덕분에 인지도는 쌓였는데, 제가 전통 판소리 무대를 계속 해왔다는 건 다들 모르시더라고요. (웃음)”
한 마디로 ‘센세이션’이었다. 힙합 같기도 하고, 디스코 같기도 하고, 솔(Soul) 같다 싶으면 스윙이 되고 마는 기묘한 ‘비빔밥 장르’였다. 수궁가를 팝(Pop)으로 만든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 이야기다. 판소리에 쌓아올린 4분의 4박자의 베이스와 드럼 비트는 ‘1일 1범’ 시대를 부르며 세계 무대까지 집어삼켰다. 안이호는 이날치의 소리꾼들을 이끄는 중심에 있다.
그가 ‘전통 판소리’로 돌아왔다. 국립창극단 ‘절창Ⅲ’ (5월 6~7일, 국립극장) 무대를 통해서다. “돌아왔다”고 하니 민망한듯 웃으며 “사실 계속 해왔다”고 말한다.
이날치의 등장이 ‘동종업계’에 미친 영향이 만만치 않다. 그간 전통음악계에서 역량있는 음악인들이 변화를 시도하는 무대는 숱했다. 장르의 변주와 협업도 이미 많았다. 다만 이날치는 ‘성공의 징표’와도 같았다. 이들의 인지도 확장에 물밑에서 꿈틀거리며 자생해온 ‘전통을 기반으로 한’ 새 시대의 음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주목받았다. 이날치 등장 이후 지난 3~4년 사이의 일이다. 이런 이유로 이날치는 ‘혁신의 아이콘’이자, ‘퓨전의 정점’이라는 상징성마저 띈다.
판소리를 수십 년 해온 소리꾼이 ‘전통의 울타리’를 뛰어넘었기에 지레짐작도 맘껏 하게 된다. “‘전통무대를 향한 갈증’은 있지 않았을까” 싶은 섣부른 짐작이다. 하필 안이호가 서게 될 ‘절창Ⅲ’이 ‘전통 판소리의 본질’을 꾸준히 이어온 국립창극단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이호는 국립창극단 단원으로만 꾸몄던 ‘절창’ 무대에 서게 된 첫 비(非)단원 소리꾼이다.
“전통 무대는 계속 해왔기에 갈증은 없어요. (웃음) 다만 국립창극단은 이름이 지켜온 가치가 있고, 소리꾼들에겐 종갓집으로의 역할을 해온 곳이에요. 들판에서 풀을 뜯어먹고 살던 나를 종갓집에서 된장찌개 끓였으니 먹어보라며 불러준 기분이에요.”
▶‘첫 非단원’소리꾼...‘절창’뒤집으러 온다=국립창극단의 ‘절창’ 무대는 젊은 소리꾼들의 ‘소리판’이다. 안이호는 ‘절창’ 무대에 만장일치로 발탁된 첫 외부 소리꾼이다. 국립창극단은 사실 2021년 ‘절창’ 시작 당시부터 외부의 실력파 소리꾼들과의 협업을 기획했다고 한다. 오지원 국립창극단 책임 PD는 “먼저 ‘절창’ 브랜드를 잘 다듬어 정착한 뒤 뛰어난 소리꾼들과의 무대를 해야한다는 판단에 그간 기반을 다져오는 과정을 거쳤다”며 “첫 주인공을 누구를 할까 고심하던 중 안이호가 안성맞춤이라는 의견이 모아졌다”고 귀띔했다.
‘절창’의 구성은 독특하다. 두 명의 소리꾼이 한 무대에서 각자의 색깔을 보여주면서도 유연하게 어우러진다. 안이호는 국립창극단 단원 이광복과 함께 한다. 이들의 인연이 길다. 두 사람은 전통예술고등학교(전 국악예술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20년 넘게 알고 지냈다. 안이호는 “(이) 광복이는 어릴 때부터 자주 봤는데, 한 무대에 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더 특별하다”고 말했다.
안이호 이광복은 각각 ‘수궁가’와 ‘심청가’를 선보이고, 전혀 다른 내용의 두 사설을 뒤섞어 새로운 해석을 덧댄다. 두 판소리의 주인공은 ‘전형적인 캐릭터’다. 수궁가의 별주부(자라)는 병든 용왕을 위해 토끼의 간을 구하는 충(忠)을, 눈 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바다에 몸을 던진 심청은 효(孝)를 상징한다. 이 무대에서 둘은 누구도 아닌 자신의 자유를 찾아 떠난다.
안이호는 “세상의 변화에 따라 작품이 가지는 가치나 의미도 변화하는 것이 숙제처럼 다가오고 있다”며 “두 작품이 가진 가치와 소리가 품은 의미는 유효하나 그것이 어떻게 새로운 의미를 줄 수 있을지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 지점이라 생각해 열심히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SF 감각 더한 수궁가...“상처 보듬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힘이 되길”=비니를 눌러쓰고 관객을 쥐락펴락했던 안이호는 멤버들과 나눠 부르던 수궁가를 온전히 ‘자기만의 색’으로 소화한다. 이날치와는 다른 색이 될 무대다. 그는 “이날치의 활동은 전통 판소리를 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고, 부딪히는 부분도 있다”고 했다.
전통 기반의 음악 활동은 ‘박제된 유물’이라는 편견 탓에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강요받았다. 혹은 ‘새로움’이 미덕인 것처럼 따라왔다. 안이호는 “국악을 설명할 때 ‘젊다, 새롭다, 신선하다’라는 말을 붙이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것 같은 일종의 최면 상태에 빠진 것 같다”며 “기존의 것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 새로운 것을 가져올 수 있지만, 그 어떤 창작자도 신선하고 젊어보이는 것을 목표로 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치는 ‘이렇게까지?’ 싶을 만큼 큰 관심을 받았어요. 도대체 무엇이 사람들에게 숟가락으로 떠서 줘도 뱉어내던 것들을 스스로 꿀꺽 삼키게 만들었는지 지금도 궁금해요. 그게 무엇인지 잘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여전히 들어요. 다만 소리꾼으로, 판소리를 베이스로 하는 사람으로선 어떤 작업이든 모두 동일하게 가지게 되는 경험들이에요.”
무대에선 다양한 시도 역시 이어진다. 선율 악기 대신 북과 장구, 징과 같은 타악기를 활용하고, 동해안별신굿 가락을 판소리에 접목했다. 안이호는 “내겐 수궁가가 현실적인 SF이자 블랙코미디”라고 했다.
“수궁가를 생각하면 어릴 적 좋아했던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라는 만화가 떠올라요. 충격적인 세계관을 가진 만화였어요. 그 안의 ‘뿅뿅’거리는 SF적인 소리가 수궁가와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절창’은 ‘아주 뛰어난 소리’를 뜻한다. 하지만 이 단어에는 또 다른 뜻도 있다. ‘날카롭게 베인 상처’라는 의미다. 안이호는 “이 의미가 이상하게 좋았다”고 했다. 소리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소리꾼들은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면서까지 목소리를 만들고, 그 상처가 아물며 단단해지는 과정을 거쳐요. 요즘 워낙 아픈 일들이 많잖아요. 사람이 한 단계 성장한다는 것 자체가 상처가 나고, 그것을 잘 아물게 보듬고, 잘 아문 상처를 지켜봐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무대를 통해 자신을 붙잡고 있던 가치와 상처를 보듬고 털어내고, 우리 모두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으면 좋겠습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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