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칼더 두 거장, 같은 공간 다른 울림

2023. 4. 1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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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내달 28일까지 2인전
돌·금속 소재 조각 작품들 전시
이우환, 12년 만에 국내 개인전
칼더, 공간과의 교감 예술 선봬
이우환, 관계항 - the kiss, 2023 [이한빛 기자]
알렉산더 칼더 - Crag 전시전경 [이한빛 기자]

이우환과 알렉산더 칼더. 이름만으로도 존재감 넘치는 동서양 거장의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나란히 열린다. 각각의 개인전이지만 작품이 놓인 공간을 활성화해, 해당 공간과 소통하는 칼더의 작업과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장소로서 작품을 선보이는 이우환의 작업은 묘한 공명을 일으킨다.

칼더의 추상 조각에 ‘모빌’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동료 예술가였던 마르셀 뒤샹이었다. 움직이지 않는 조각에 움직임을 뜻하는 ‘모빌’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일종의 언어유희였으리라. 덕분에 칼더는 ‘움직이는 조각의 창시자’로 불린다.

얇은 금속 조각을 추상적 형태로 자르고, 금속 막대나 와이어로 연결해 공기의 진동에 따라 움직이는 칼더의 작품은 움직임으로 공간을 지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얇은 조각들의 흔들림과 함께 움직이는 그림자, 그로 인한 공기의 변화까지 칼더의 작업은 공간에 대한 인식 변화를 가져왔다. 작품을 두는 대상으로 공간이 아니라 공간 그 자체가 작업이 될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이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실내에서 그의 조각을 만나 체감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국제갤러리의 이번 전시엔 천장에 달린 대형 조각을 비롯해 금속판과 와이어로 구성된 스탠딩 모빌, 브론즈로 제작한 소형 모빌 등이 전시됐다. 특히 브론즈로 제작한 소형 스탠딩 모빌 작업은 대형 야외 조각을 위한 모형 성격이 강하다. 칼더는 30m 높이로 제작됐을 때, 그 아래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느낄 감각적 체험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실제 야외 조각으로 제작되지는 못한 모형 작업이지만 그 움직임 만큼은 상당히 자연스럽다.

칼더의 조각엔 흥미로운 이름이 많다. 구아바, 꽃, 휩 스네이크(Whip Snake).... 이에 관객들은 제목과 작품의 형상 사이에 연관성을 찾느라 바쁘다. 하지만 칼더의 외손자로 현재 칼더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알렉산더 스터링 칼더 로워는 맥 빠지는 소리를 한다.

그는 “제목엔 특별한 의미가 없다. 작업을 하던 당시 작가가 떠올린 이름을 붙인 것일 뿐, 대상을 보고 그에 착안해 만든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모빌은 예전의 기억도 혹은 미래의 모습도 아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재를 말하고 있다. 공간에서 공간과 상호 작용하는 이 순간을 작업을 통해 느낄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마당에 꽤 두꺼운 철판이 놓였다. 철판을 들어올리는 건 작은 바위다. 이우환 작가가 1968년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작업해 온 ‘관계항(Relatum)’ 연작이다. 이우환 작가가 국내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은 지난 2015년 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 공간’ 설립 이후 12년 만이다. 이번 전시에는 조각 6점과 드로잉 4점으로 채웠다.

“대상 그 자체도 아니고 정보 그 자체도 아닌, 이쪽과 저쪽이 보이게끔 열린 문, 즉 매개항이다”

이우환 작가는 2015년 부산전시 당시 관계항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어떤 현황을 규정짓는 ‘관계’ 대신 관계를 맺는 주체를 의미하는 ‘관계항’은 작품의 개별 요소들이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유동적 상황임을 암시한다. 돌이 자연을 뜻한다면 철판은 자연을 가공한 인간의 추상적 힘을 대변한다. 이들 둘의 만남은 인간의 역사이자, 앞으로도 계속될 ‘무한’의 미래기도 하다.

신작 ‘관계항-키스’(2023)는 일종의 의인화된 은유다. 얼굴 형상의 돌을 입을 맞추듯 가까이 놓였고, 바닥엔 돌을 둘러싼 쇠사슬로 2개의 원형이 그려졌다. 포개지고 교차하며 교집합이 형성된다. 타인과 맺는 가장 극적인 관계인 ‘연인’은 찰나의 우연일지 모른다.

그리고 교집합에 포함되지 않은 여집합이 더 크다는 것도 사랑에 빠진 우리는 애써 잊으려 한다.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그의 작업은 관람객을 묵상으로 이끈다. 전시를 기획한 국제갤러리 측은 “작품 하나 하나가 ‘무한’을 표현하고 있는 메타포인 만큼, 하나의 거대 서사이자 이론 그 자체인 이우환의 작품 세계를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두 전시 모두 5월 28일까지.

이한빛 기자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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