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배달 뛰며 팬데믹 이겨낸 미슐랭 쉐프...美 1위 오른 한식당의 성공기
창업자 박정현 쉐프-박정은 대표 인터뷰
한국식 '반찬'문화에서 모티브…캐주얼~다이닝까지 연쇄 창업
청국장, 보리굴비, 창란젓 등 한국적 음식 재해석해
"좋은 재료 쓰고 맛의 균형 맞추면 어떤 음식이든 통할 수 있어"
팬데믹으로 1년 반 실내 영업 못하자 배달까지 뛰며 버텨
뿔뿔이 흩어진 150명 팀 새로짜 미슐랭2스타 유지
"실력 있는 한국 쉐프들과의 협업 통해 한식 더 알릴 것"
한끼 식사 가격이 1인당 375달러(약 50만원)에 달하지만 매일 밤 뉴요커들로 식당이 꽉꽉 찬다. 매달 1일부터 그 다음달치 예약을 받는데, 예약 시작 10분 정도면 한달치 예약이 모두 마감된다. 좌석수가 14개뿐이고 매일 저녁 5시30분과 8시30분 두번만 손님을 받기 때문에, 예약창이 열리자 마자 ‘매진’되는 것이다. 미국 뉴욕 맨해튼 이스트30번가에 있는 고급 한식당 ‘아토믹스(Atomix)’ 얘기다.
아토믹스는 ‘미식계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월드 베스트 50 레스토랑(The World’s 50 Best Restaurants)’ 순위에서 지난해 33위, 미국 내 1위에 오르며 화제가 됐다. 월드 베스트 50에 한식당이 포함된건 아토믹스가 처음이다.
메뉴는 단촐하다. 10가지 음식이 나오는 단일 코스메뉴 하나뿐이다. 다만 시즌별로 메뉴가 바뀐다. 최근엔 잡채, 애호박밥, 감태국수가 메뉴에 들어갔다. 뉴요커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끈 메뉴중엔 청국장과 보리굴비, 김부각도 있었다. 아토믹스는 경희대 조리과학과 출신 박정현 쉐프와 박정은 대표가 만들었다. 둘은 부부다.
○평범해보이는 '반찬'에서 찾아낸 성공
이들이 한식에서 가능성을 찾은 건 남편 박정현 쉐프가 2010년 고급 한식당의 원조격이자 일찌감치 뉴욕에 진출한 임정식 쉐프의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정식(Jungsik)’에 합류하면서다. 대학 졸업 후 영국, 호주의 유럽식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요리 경험을 쌓았던 박 쉐프는 메인 쉐프까지 오르며 2011년 정식의 뉴욕 진출과 함께 미국에 첫 발을 내딛었다.
정식에서의 경험은 박 쉐프가 한식을 완전히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최근 아토믹스를 찾은 기자에게 “정식에서 5년 간 일하면서 어릴 때부터 먹어왔던 평범한 음식 안에 담긴 가능성과 가치를 배웠다”며 “우리 음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남들이 하지 못하는 새로운 것을 만들고, 그것이 뉴욕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스타 쉐프에게 사사받은 그가 2016년 독립하며 맨해튼에 연 식당 ‘아토보이(Atoboy)’는 시작부터 독특했다. 박 쉐프와 서울에서부터 뉴욕까지 함께 하며 외식 매니지먼트 업계에서 경험을 쌓아온 아내 박정은 대표와 고민 끝에 정한 아토보이의 ‘컨셉’은 ‘반찬’였다.
아토보이는 15가지 반찬 중 3가지를 고르고 여기에 밥과 김치를 더해 한상차림을 만들어 먹는 방식을 선보였다. 박 쉐프는 “정통 한식에선 그저 곁들임 음식인 반찬을 새롭게 조명하고 싶었다”며 “한국 특유의 한상차림의 즐거움을 전달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호응이 좋아 놀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실제 아토보이 메뉴는 2017년 뉴욕타임즈의 식당 비평가 피트 웰스로부터 “매우 스마트하고 놀라운 음식”이란 찬사를 들었고 두 사람은 뉴욕 미식계의 ‘라이징 스타(떠오르는 별)’가 됐다.
이후 부부는 2018년 보다 고급화된 정통 한식당인 아토믹스를 열었다. 아토믹스는 그 해 식당 평가로 유명한 ‘미쉐린 가이드’로부터 별 하나를 받았다. 이듬해엔 2019년 별이 2개로 늘었고 현재까지 ‘2스타’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적’이란 측면에서 아토믹스는 아토보이보다 한 발자국 더 나갔다. 청국장과 보리굴비, 창란젓 등 지극히 한국적인 음식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코스에 포함시켰다.
음식 이름도 한국 발음을 그대로 영어로 옮겼다. ‘Japchae(잡채)’와 ‘Aehobak Rice(애호박밥)’, ‘Gamtae noodle(감태국수)’ 같은 식이다. 음식이 나올 땐 그 음식을 설명하는 카드가 손님에게 제공된다.
박 쉐프는 “아토믹스에선 제가 자라온 한국이란 배경이 녹아든 저만의 음식을 만들고자 했다”며 “자연스럽게 한국의 식재료와 문화가 요리에 드러났고, 이걸 손님들에게 알리려 카드를 만들었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국장이 미국에선 절대 안 통할 것이라고 많이들 생각하지만 언제 다시 코스 메뉴에 들어오는지 묻는 단골들이 많다”며 “어떤 음식이든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맛의 밸런스(균형)를 맞춘다면 어디서든 통한다는 게 아토믹스를 운영하며 느낀 생각”이라고 말했다.
○1년반 영업 중단 위기, 근성으로 근복
맛 이상으로 아토믹스를 빛나게 하는 건 서비스다. 아토믹스는 월드 베스트 50에서 손님에게 최고의 응대를 한 식당에게 주어지는 ‘환대특별상’ 1위를 차지했다. 아토믹스의 디자인과 서비스를 설계한 박정은 대표는 “손님이 가게 문에 들어서는 순간의 분위기부터 자리에 앉았을 때의 느낌, 직원의 응대와 음식까지 우리 가게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이 완성도 높은 발레 공연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특별하게 느껴지게 했다”며 “직원의 걸어다니는 속도와 자세까지도 아토믹스가 추구하는 분위기에 맞춘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라고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3월 뉴욕시는 모든 식당의 실내 영업을 금지했다. 이 조치는 이듬해 9월까지 1년 반 동안 이어졌다. 아토믹스도 문을 닫아야했다. 하지만 부부는 테이크아웃용으로 만든 음식을 직접 봉고차로 배달하며 이 시절을 버텼다.
1년 반이 흘러 다시 가게 문을 열 수 있게 됐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추며 식당을 ‘미슐랭 2스타’에 올려놨던 150여명 직원 대부분이 뿔뿔이 흩어진 것. 박 쉐프는 “사실상 팀을 완전히 새로 짜 요리부터 서비스까지 모든 것을 새로 맞춰가야 했다”며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라고 말했다. 새 창업이나 다름없는 변화에도 아토믹스는 그해 미슐랭 2스타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리고 지난해 월드 베스트 50에 올랐다.
두 사람은 아토믹스 개업 후 4년 만인 작년엔 맨해튼 한복판인 록펠러센터에 보다 한식에 가까운 레스토랑 ‘나로(NARO)’를 열며 세 번째 창업에 나섰다. ‘나로호’의 나로를 딴 이 가게는 건물주 격인 록펠러 재단이 직접 투자까지 하며 입주를 요청했다고 한다. 올해는 한국의 술과 안주에 초점을 맞춘 술집 ‘서울 살롱’을 열 계획이다. 박 대표는 “아토보이와 아토믹스의 음식은 한식의 요소가 가미돼있지만 퓨전의 성격이 강했다면 나로는 순수한 한식당이라 불러도 될 정도”라며 “새롭게 가게를 열 때마다 보다 한국에 가까워지는 것이 스스로도 신기하다”고 했다.
전 세계 미식의 관문인 뉴욕에서 후배 쉐프들이 진출할 수 있는 ‘문’을 넓히고 싶다는 게 이들의 포부다. 박 쉐프는 “우리가 뉴욕에 있기 때문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쉬운 위치에 있을 뿐, 우리만큼 실력 있는 한국의 쉐프들과 레스토랑이 많다고 생각한다”며 “이들과 협업으로 한식을 세상에 더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뉴욕=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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