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란 웃다가도 등골 서늘한 것”… 구미호 설화 재해석한 이 소설

이호재 기자 2023. 4. 17. 10:3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집에 내려달란 말이야!" 한강을 달리는 심야버스 안.

17일 전자책(e북)으로 먼저 출간되고, 다음달 1일 종이책이 나오는 장편소설 '호'(읻다)는 구미호 설화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설 ‘호’ 출간한 정보라 작가
14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에서 만난 정보라 작가. 김재명기자 base@donga.com
“집에 내려달란 말이야!”

한강을 달리는 심야버스 안. 취객이 기사를 협박하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버스 승객인 ‘기준’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그때 한 여자가 풍성한 갈색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기준에게 다가왔다. 여자는 작은 치약 통처럼 생긴 플라스틱 튜브를 건네며 “이걸 짜서 아저씨 코에다 바르라”고 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하지만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아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자 어이없게도 아저씨가 갑자기 가장 가까운 좌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뒤늦게 알았지만, 머리카락이라고 생각했던 건 9개의 꼬리고 여자는 요술을 쓰는 여우였다. 그런데도 기준은 홀리듯 구미호와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다.

장편소설 ‘호’ 표지. 읻다 제공


17일 전자책(e북)으로 먼저 출간되고, 다음달 1일 종이책이 나오는 장편소설 ‘호’(읻다)는 구미호 설화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호’는 로맨스의 탈을 쓰고 있지만 유쾌한 장면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코미디, 주인공을 위협하는 귀신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선 공포 장르처럼 느껴진다. 1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정보라 작가(47)에게 정말 사랑 이야기를 쓴 게 맞냐고 묻자 그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답했다.

“연애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니에요? 깔깔 웃다가도, 갑자기 등골이 서늘한 거요. 독자 생각은 모르겠지만 전 진짜 로맨스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하하.”

그가 처음 ‘호’를 쓴 건 15년 전이다. 2008년 그의 외할머니는 뇌출혈로 쓰러졌고 당시 러시아에 머물던 그는 급히 귀국했다. 외할머니를 돌보던 그는 어릴 적 자신을 키워준 외할머니와 ‘전설의 고향’ 구미호 편을 보던 기억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공포 설화를 현대적인 로맨스로 바꿔 작품을 쓰면 어떨까 싶었다. 또 외할머니가 눈을 떴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도 싶었다. 학원 강사인 ‘기준’과 구미호의 결혼을 반대하는 할머니가 쓰러지고, 할머니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기준이 고군분투하는 서사는 그렇게 탄생했다.

“외할머니 사망신고도 제가 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죠. 소설 속에서나마 외할머니가 퇴원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썼던 만큼 제겐 애틋한 작품입니다.”

14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에서 만난 정보라 작가. 김재명기자 base@donga.com
그는 ‘호’로 2008년 제3회 디지털작가상 모바일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선인세 500만 원을 받고, 계약서까지 작성했지만 아쉽게도 출간은 이뤄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외부 상을 수상했지만 책은 펴내지 못한 ‘미발표 등단작’인 셈이다.

“당시 박사(미국 인디애나대 슬라브 문학) 논문을 써야 했고, 여러 장르문학 잡지에 단편소설을 기고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미출간이 크게 아쉽지는 않았어요. ‘호’가 15년 만에 발표되는 만큼 꼼꼼히 고쳤는데 독자들이 어떻게 읽어줄지 궁금하네요.”

정 작가는 지난해 단편소설집 ‘저주 토끼’(Cursed Bunny·래빗홀)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올해도 부커상 인터내셔널 1차 후보에 천명관 작가(59)의 ‘고래’(문학동네)가 지명됐다. 의미를 묻자 그는 곰곰이 생각한 뒤 이렇게 답했다.

“저 역시 2년 연속 부커상 인터내셔널 후보에 한국 작가가 선정될지 몰랐어요. 부커상 심사위원회의 관심은 한국 문학의 품질이 일정 수준 보장된다는 의미 아닐까요. 올해도 좋은 소식이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14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에서 만난 정보라 작가. 김재명기자 base@donga.com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