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정통으로 맞았네…나이 같아도 '노쇠' 빠르면 사망위험 4배

[머니투데이 박정렬 기자]

노화는 거스를 수 없지만, 노쇠는 극복 가능한 운명이다. 나이가 같아도 신체, 정신 건강을 두루 가꾸면 노화 속도를 늦춰 보다 오랜 시간 건강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실제 초기 노년기에 해당하는 60대 중반에서 노쇠 정도가 10년 뒤 건강 상태를 좌우한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 연세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신재용·장지은 교수, 미국 하버드대 의과대학 김대현 교수팀은 만 66세 성인 96만8885명을 비교 분석한 결과, 이때를 기점으로 심하게 노쇠한 집단이 건강한 집단에 비해 10년 내 사망 위험이 약 4.4배 높다고 17일 밝혔다.

노쇠는 노인 증후군, 허약 등 다양한 용어로 표현된다. 노화와 질병의 축적으로 기능이 감퇴해 스트레스에 취약해진 상태를 말한다. 몸과 마음의 '내구력'이 떨어져 병에 잘 걸리고, 발병 후에는 치료를 견디는 힘이 부족해 병이 심해지는 악순환의 상태다. 의학계에서는 같은 나이라도 노쇠가 심하면 통상적으로 노화가 더 진행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연구팀은 노쇠가 인생 후반기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2007~2017년 국민건강보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했다. 병력과 신체·검체 검사, 신체 및 정신 건강, 장애 여부 등 5개 영역의 39가지 항목을 평가해 노쇠 정도를 평가하고 건강한 집단, 노쇠 전 집단, 경증 노쇠 집단, 중증 노쇠 집단으로 분류한 후 각 집단의 10년 내 사망률을 분석했다.

정희원 노년내과 교수가 노쇠가 진행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사진=서울아산병원

그 결과, 건강한 집단은 연간 100명 중 0.79명이 사망했으며, 노쇠 전 집단에서는 1.07명, 경증 노쇠 집단에서는 1.63명, 중증 노쇠 집단에서는 3.36명이 사망했다. 사회인구적 특성 등을 보정해 비교한 결과, 66세 때 심하게 노쇠한 집단의 10년 내 사망 위험은 건강한 집단보다 4.43배 높았다.

노화에 따른 질환은 건강한 집단에서 연간 평균 0.14건, 노쇠 전 집단에서 0.23건, 경증 노쇠 집단에서 0.29건, 중증 노쇠 집단에서 0.45건씩 발생했다. 노쇠할수록 질환 발병률이 높을뿐더러 치명적이기까지 했다. 중증 노쇠 집단에서 10년 내 심부전·당뇨·뇌졸중이 발병할 위험은 건강한 집단보다 각각 2.9배·2.3배·2.2배 높았다. 신체적·정신적 기능 저하로 타인의 돌봄이 필요한 비율은 중증 노쇠 집단에서 건강한 집단에 비해 10.9배 높았다.

이번 연구는 같은 나이라도 노쇠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고, 이를 통해 미래의 사망 위험과 건강 상태를 예측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연구팀은 노쇠 예방을 위해 가능한 젊을 때부터 규칙적인 생활 습관과 운동, 금연, 절주, 스트레스 관리 등을 통해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이미 노쇠가 진행된 경우라면 먹는 약물을 점검하고 노쇠의 흔한 원인이 되는 근감소증이나 인지기능 감소, 우울, 불안, 수면장애 등에 대해 노년의학 전문의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라며 "전 세계적으로 빠른 고령화와 돌봄이 필요한 인구 급증이 예상되는 만큼 이를 예방하고 지원할 수 있는 사회적 논의와 정책 개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