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해서 샤넬백·슈퍼카 사던 MZ '거지방'에 모여 '이것' 한다

연승 기자 2023. 4. 17.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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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를 사 마신다고?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아리수(수돗물) 마시든지 참았다가 회사 가서 마셔."

최근 생겨난 '거지방'은 지난해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했던 '무지출 챌린지'와 유사하다 . 무지출 챌린지는 치솟는 물가에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지출 제로(0)'를 실천하는 움직임으로,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는 일주일에 며칠 무지출에 성공했는지를 가계부나 인증샷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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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거지방' 잇단 개설
학생·10대·성별 등으로 자격 제한 두기도
익명의 공간에서 지출 내역 일일이 올리면
참여자들 "사치네" "정신 못 차려" 거센 질타
코로나 당시 제로금리·코인·부동산 등 거품경제에
플렉스하던 MZ, 제로지출 이어 '거지방' 만들어
MZ세대 놀이 문화서 자조와 희화로 위로 받아
카카오 톡 오픈 채팅방에 개설된 일명 ‘거지방’들. ‘거지방’의 배경 화면에는 한국 드라마 ‘5대 거지짤’로 유명한 변우민, 손현주, 박신양이 출연한 드라마의 한 장면이 다수 등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개설된 ‘거지방’들 캡처.
[서울경제]

“생수를 사 마신다고?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아리수(수돗물) 마시든지 참았다가 회사 가서 마셔.”

“스터디 카페에 갔다고? 사치네. 집에 가서 공부해라.”

최근 ‘거지방’이라는 이름으로 개설된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오가는 대화다. 지출 내역을 올리면, 돈을 써서 혼이 나고, 반성을 하고, 지출을 줄이겠다는 다짐을 하고, 절약을 할 수 있다고 독려해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오픈 채팅방이 셀 수도 없이 많이 생성되고 있다. 참여 자격 제한이 없는 방부터 연령, 성별 등으로 제한을 두는 방도 있지만 이들 방의 목적은 단 하나다. 지출 내역을 알려 합리적인 소비를 하지 못했을 경우 신랄한 비판을 받은 후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대화방에서는 대부분 사치를 해서 ‘혼쭐’이 나는 내용이다.

최근 생겨난 ‘거지방’은 지난해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했던 ‘무지출 챌린지’와 유사하다 . 무지출 챌린지는 치솟는 물가에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지출 제로(0)’를 실천하는 움직임으로,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는 일주일에 며칠 무지출에 성공했는지를 가계부나 인증샷을 공유한다. 그런데 ‘거지방’은 익명으로 자신의 지출을 공유하고 또한 익명의 누군가로부터 따가운 질타를 받는 형태로 ‘무지출 챌린지’ 당시 보다 훨씬 팍팍해진 삶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무지출 챌린지’를 비롯해 ‘거지방’ 등은 MZ세대의 놀이 문화라는 분석이다. 이수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Z세대는 서로 같은 취향을 가진 불특정 다수가 익명으로 모여 소통하면서 관계를 맺는다”며 “마치 마라톤의 ‘페이스 메이커’를 두듯이, 거지방 참여자들은 이를 동기부여 체계로 활용해 ‘내가 지금 잘하고 있다’는 위안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단순히 MZ세대만의 놀이 문화로 한정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또래 간 소통의 부재, ‘초양극화 시대’가 복합적으로 결합된 산물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 당시 ‘제로금리’, 코인·주식·부동산 가격 급등에 따른 ‘거품 경제’에 따른 착시현상, 보복소비 심리의 폭발로 인해 이른바 ‘플렉스(자신의 성공이나 부를 뽐내거나 과시하는 것을 의미)’하던 MZ세대들이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초긴축'으로 돌아선 것이다. 그런데 절약을 넘어 ‘궁상’으로 보이기까지 한 이런 소비행위에 대해서 친구들이 아닌 익명의 공간에서 익명의 대상과 공유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무지출은 자신을 공개한다는 점, 그리고 어쨌거나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을 공유하고 자랑하는 것인데 ‘거지방’에서는 비난에 가까운 질타를 통해 가학적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이다. 또 스스로를 ‘거지’라고 칭하는 자조는 MZ세대의 특징인 솔직함을 반영하지만 익명에서만 솔직할 수 있는 것이다. 친구와도 자신이 ‘거지임’을 드러내지 못하는 게 현실인 것이다.

연승 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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