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은 귀찮고 버리긴 아깝고…"헌 옷으로 돈 버세요" [긱스]
중고 패션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관련 스타트업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경 긱스(Geeks)가 크림의 투자를 받은 ①이은비 크레이빙콜렉터 대표, 크래프톤과 SM의 투자를 받은 ②김혜성 마인이스 대표를 만나 이들이 바라본 중고 의류시장의 사업성과 전망을 공유합니다.
"인스타처럼 인플루언서 팔로우하는 패션 플랫폼 만들었죠"
세컨핸드(중고) 패션 플랫폼 콜렉티브를 운영하는 이은비 크레이빙콜렉터 대표가 처음 창업을 떠올린 곳은 2019년 뉴욕이었다. 연세대 의류환경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에 있는 패션 브랜드 톰브라운에서 일하면서 한국과 다른 뉴욕의 패션 문화에 흥미를 느꼈다. "세컨핸드라는 문화를 그때 처음으로 접하게 됐어요. 중고 패션 플랫폼을 중심으로 MZ세대들이 중고 의류를 익숙하게 거래하더라고요. 지속가능하면서도 되게 재미있는 문화였어요. 한국에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이 대표는 바로 한국으로 들어와 창업을 준비했다. 그렇게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2020년 만든 회사가 크레이빙콜렉터다. 크레이빙콜렉터가 운영하는 콜렉티브는 인스타그램처럼 특정 판매자를 팔로우하고 올린 제품을 모아 볼 수 있는 플랫폼이다. 메시지 기능으로 판매자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이용자의 취향에 맞게 상품을 추천해주는 맞춤형 서비스가 특징이다. 지난해 스노우의 자회사 크림에서 55억원 규모의 프리A 투자를 유치했다.
처음엔 유명 온⋅오프라인 빈티지 샵을 한 데 모은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비즈니스를 구상했다. 하지만 결국엔 C2C(개인 간 거래)로 방향을 틀었다. 콜렉티브는 개인이 직접 중고의류를 올려 판매하는 방식이다. "커머스가 점점 더 개인화가 돼가요. 콘텐츠도 옛날에 방송국 같이 큰 곳에서 했다면 이제는 유튜브로 넘어왔잖아요. 커머스도 1세대 개인간 거래였던 이베이에서 B2C로 갔다가 다시 C2C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콜렉티브 판매자만 월 기준 8000명. 구매자는 20만명이다. 매월 수십억원이 거래된다. 이 대표가 신경섰던 건 MZ세대들이 의류를 소비하는 방식이었다. MZ들은 SNS 등을 통해 인플루언서들의 패션을 보고 따라 입는 걸 좋아했다. "패션을 참고할 때 인스타그램 같이 셀러들의 스타일을 볼 수 있는 곳을 활용하잖아요. 어떤 셀러가 마음에 든다면 그 셀러의 옷을 반복적으로 구매할 거라고 봤죠. 셀러에 대한 신뢰도를 쌓고 팬덤을 만들 수 있도록 했어요. 이를테면 셀러의 팔로워들을 한군데에 모아주는 거예요."
처음엔 인플루언서들에게 직접 연락했다. 패션 인플루언서들이 옷이 워낙 많으니 안 입는 옷을 처분하는 걸 돕겠다고 했다. "한국이 데일리룩을 찍어 SNS에 올린다든가 자랑하는 게 익숙한 나라예요. 인플루언서들은 항상 다양한 콘텐츠를 위해서 옷과 아이템들을 소비를 해야 되는데 사실은 이분들한테도 굉장히 부담스러운 소비입니다. 옷장속에 쌓아놓기도 하고 버리면 환경에 안 좋죠. 낭비적인 방식 대신 다시 판매하는 걸 권유했어요."
패션을 컨텐츠로 소비하는 MZ세대의 특징을 본 것이다. "요즘 분들은 옷을 닳을 때까지 입는 게 아니라 한두 번 입고 판매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사실상 컨텐츠성으로 소비를 하는 거여서 입었던 옷을 다시 판매하는 것에 대한 허들을 낮게 느껴요. 중고 의류 거래가 합리적인 거래방식으로 점점 더 자리잡고 있다고 봅니다."
한국의 중고 의류에 대한 인식도 빠르게 달라졌다고 했다. "처음에 창업했을 때는 중고 의류에 대한 거부감,이 거래는 그냥 중고나라에서 하는 거 아니냐 하는 부정적인 인식이 많았다면 지금은 오히려 빈티지에 대한 관심도도 많이 올라갔어요. 어떤 아이템을 구할 수 없을 때 세컨핸드를 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금 콜렉티브가 받고 있는 거래 수수료는 0원. 거래 데이터가 더 많이 쌓이면 상품들을 직접 매입해 판매해보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이 시장을 같이 키워나가는 입장이잖아요. 기존에 중고 거래를 하지 않던 유저들도 조금 더 허들 없이 중고 거래를 즐길 수 있는 활동들을 고민 중이에요. 거래를 더 안전하게, 빠르게 할 수 있다면 더 접근이 쉬워질 거라고 봐요. 예를 들면 배송이나 상품 업로드를 도울 수도 있고요."
"H&M 살 돈으로 폴로를 살 수 있다면 구매하시겠습니까"
김해성 마인이스 대표는 옷장에 옷이 쌓여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당근에 파는 건 귀찮고, 사입업체에 옷을 파는 건 비효율적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의류 수거 신청만 하면 알아서 다 하는 옷장정리 서비스를 떠올렸습니다." 그는 스타트업얼라이언스 테헤란로커피클럽에서 "옷장에 자리만 차지하던 옷들을 전문가들의 손을 통해 더 퀄리티 높은 상품으로 만들어 비싼 가격에 팔 수도 있고, 기부도 가능한 사업모델을 만들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연쇄창업가다. 그는 시카고대 경제학과 재학 중에 애드테크 스타트업 프린터스를 창업했다. 이후 국내 VC 투자 심사역을 거쳐 2022년 마인이스를 만들었다. 굿워터캐피탈, CJ대한통운, SM컬처파트너스, T인베스트먼트, 슈미트, 스파크랩 등 국내외 VC와 기업으로부터 투자 받았다.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와 이승윤 전 래디쉬 대표, 김창원 전 펫프렌즈 대표 등이 엔젤투자자로 참여했다.
마인이스가 운영하는 차란은 위탁 받은 중고 의류를 자체 수거, 전문 스튜디오 촬영, 향균과 살균 클리닝, 적정 판매가 제안 등의 상품화 과정을 거쳐 판매한다. 판매자로부터 옷을 받으면 차란이 받아서 검수와 가격책정을 한다. 이중 판매가 어려운 옷은 돌려주거나 기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준다. 판매가 가능하면 가격 책정, 스튜디오 촬영까지 한다. 옷이 팔리면 판매금액의 60% 가량을 판매자에게 돌려준다. "일정 기간 판매가 되지 않을 경우 판매자에게 옷을 돌려주거나 기부하도록 했습니다. 회사 입장에선 검수 비용이 들지만 옷을 가져오는 비용이 다른 새 의류 등보다 훨씬 적습니다."
김 대표는 "전체 중고거래 시장규모는 25조, 의류의 중고거래는 5조원이다. 이중 5%만 가져간다고 해도 2500억원 시장"이라고 했다. 특히 잘 알려져있는 명품시장 크기에 준하는 중저가 의류 시장을 봤다. 특정 카테고리 및 명품 브랜드를 주로 취급하는 중고 리셀 플랫폼과 달리 차란은 SPA 브랜드부터 프리미엄 브랜드까지 폭넓은 상품을 다루는 것이 특징이다. "중저가 시장은 온라인, 오프라인에 파편화돼있었어요. 100개가 넘는 온라인 빈티지샵, 2000개가 넘는 오프라인 빈티지샵이 있었지만 분산돼있는 게 문제였죠."
차란은 지난 2월 41억5000만원 규모의 시드투자를 유치했다. 2022년 4월 사업에 착수한지 10개월만에 이뤄진 투자로 공식 서비스가 출시되기도 전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받아 관심받았다. 공식 서비스 출신 전 알파·베타 서비스 테스트를 통해 빠르게 시장 가능성을 검증하고 자체 오퍼레이팅 시스템을 구축한 성과를 인정받은 결과였다.
베타서비스를 운영해본 결과 전체 구매 고객 중 58%가 재방문 고객이었다. 김 대표는 여기서 성공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그는 "중고의류를 잘 포장까지 해서 판매하다보니 구매자의 만족도가 큰 것으로 분석됐다"고 했다. 정진혁 티인베스트먼트 팀장은 "높은 성장이 예측되고 있는 중고 의류 시장에서 편리한 위탁 판매 경험과 상품 구매 경험을 제공한다는데 주목했다. 짧은 시간 동안 철저한 시장 검증 계획을 가지고 성공적으로 테스트를 수행한 실행력을 보고 투자하게 됐다"고 했다.
참, 한가지 더
중고 의류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패션 플랫폼인 쓰레드업은 전 세계 중고 패션 시장의 거래액이 2022년 1190억 달러(약 142조원) 에서 2026년 2180억 달러(약 261조원)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3년 뒤 패션 시장의 18%를 중고 의류가 차지할 것으로 봤다. 중고 패션의 성장 속도는 일반 소매업보다 21배 빠르다.
글로벌 기업들도 움직이고 있다. 스니커즈 리세일 사이트를 운영하는 고트그룹의 스트릿 패션 리세일 플랫폼 그레일드 인수, 일본 최대 중고 거래 플랫폼인 메루카리의 도쿄 증시 상장, 베스티에르콜렉티브·스탁엑스·빈티드의 투자 유치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네이버가 북미 최대 중고 패션 플랫폼 포시마크를 인수했다.
전통적인 유통 업체에서도 중고 패션 시장의 선순환 효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구찌, 버버리, 스텔라맥카트니와 같은 명품업체들이 중고 시장에 진출했다. 미국의 삭스 피프스 애비뉴, 영국의 셀프리지스와 같은 고급 백화점들도 중고 명품 매장 만들기에 나섰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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