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전국 상위 6%가 대치동에선 상위 52%”

이경은 기자 2023. 4. 1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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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리 학군 컨설턴트 인터뷰

드라마 ‘일타스캔들’의 실제 배경이 된 대치동 진입을 고민하는 당신이라면 꼭 읽어야 할 생생한 대치동 이야기.

우리나라에도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상징하는 곳이 있다. 학령인구 감소에도 초등학교 전학생이 매달 끊이지 않고 여름방학이면 길거리에서 전국구 사투리가 들린다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이다. 수많은 '맹모’들의 목적은 단 하나, 훌륭한 교육 환경이다. 그 열망은 입시 결과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2023학년도 서울대 최종 등록자 기준 상위 100개 고교 중 12곳이 강남구, 7곳이 서초구에 위치해 있다. '대한민국 입시 1번가’이자 강남·서초 8학군의 중심인 대치동의 힘이 체감되는 순간이다.

지금도 전국의 많은 학부모가 대치동 진입을 고민한다. 대치동의 특성과 진입 요령을 묻기 위해 윤미리 컨설턴트(인사이드대치 대표)를 만났다. 그는 5년째 여러 플랫폼을 통해 대치권 학군지의 교육과 주거 이야기를 전하는 '대치동 큐레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대치동 큐레이터를 자청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 대치동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교육을 위해 다시 돌아올 때 막연한 두려움이 컸죠. 대치동을 경험해보지 않은 부모는 더 큰 두려움이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제 경험과 여러 정보를 바탕으로 대치동 큐레이터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대치동 1세대라고 할 수 있나요.

고등학생이던 1990년대 후반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이 운영하는 '강남대일학원’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줄을 섰던 기억이 선명해요. 그때도 지금처럼 학생이 가득했죠. 1970년대 후반 휘문고·숙명여고 같은 강북 명문고들이 대치동으로 이주하면서 대치동 교육열이 시작됐잖아요. 제가 살던 당시에도 교육열이 높은 중산층이 많이 거주했고 그로 인해 학군지는 점점 커지는 상황이었어요.

그때부터 교육에 대한 수요가 높았네요.

지금은 교육 자체보다 대학 입시가 중점이 됐어요. 대입을 위한 교육 서비스 소비 욕구가 크죠. 그 욕구에 맞춰 사교육 시장이 몰려들고 확장과 진화를 거듭하다 보니 진입하는 사람에 따라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신중하게 진입해야 하는 이유죠.

대치권은 대치동을 중심으로 서쪽의 역삼동, 남쪽 도곡동·개포동·일원동을 포괄해 부르는 명칭이다. 이 지역들은 중고등학교 학군을 공유하기 때문에 대치동보다 큰 의미인 대치권으로 불린다. 넓은 대치권에 꾸준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건 대치동 학원가. 대치동 형성 초기에는 서울 지하철 3호선 대치역을 중심으로 학원가가 형성됐지만, 어느새 2호선 삼성역에서 강남구 영동대로 서쪽으로 확장됐다. 점차 영역을 넓히는 주택가와 상호 작용하면서 학원가도 세포 분열하듯 늘어났다.

같은 강남이라도 지역별로 교육열 달라

강남도 지역별로 분위기가 다르다고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이나 청담동 같은 소위 '테북(테헤란로 북쪽)’ 학부모의 교육관은 대치동과는 조금 다릅니다. 압구정과 청담엔 소형 평수 아파트가 적고 231㎡(70 평) 이상 대형 평수가 많아 부동산 가격이 높은 편입니다. 부동산 관점에서만 봐도 재산 수준이 높으니 경제적 여유가 남다르죠. 그래서인지 테북에선 어릴 때부터 국내 대학과 해외 대학을 준비하는 학생으로 나뉩니다. 반면 대치권은 국내 대학 입시가 우선이죠. 이곳과 분위기과 비슷한 곳이 서울 양천구 목동과 노원구 중계동 학군지예요.

8학군 중 일부를 이루는 서울 서초구 반포 지역은 어떤가요.

압구정·청담과 대치 사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대치동처럼 반포동 일대도 강남·서초 8학군인데다 중산층이 많이 사는 동네였지만 최근 부동산 상승장에서 반포는 '중산층 업그레이드’ 버전이 됐어요. 부동산 재건축 과정에서 대부분 신축 아파트로 바뀌어 반포동 일대의 부동산 거래가는 균일한 편입니다. 그에 비해 대치동 일대는 빌라, 오피스텔 등 주거 양식이 다양해 거래 가격도 천차만별이죠. 이런 이유로 대치와 반포는 뿌리는 같지만 최근 반포는 입시를 바라보는 속도에서 여유가 생긴 듯해요. 물론 국내 대학 입시 준비를 우선으로 하는 건 여전합니다.

대치권에는 다양한 소득 수준의 가구가 모여 사는데요.

소득 수준이 천차만별입니다. 신기한 건 직업군은 비교적 일관성이 있어요. 전문직, 특히 의사가 많죠. 제가 상담한 분의 80% 이상이 의사일 정도로요. 특이한 분위기예요. 의사라는 직업의 안정성을 아이에게 똑같이 물려주고자 하는 분이 많아요. 어떻게 보면 의사라는 직업이 주는 안정성으로 입시의 수혜를 받은 분들이 대치권을 찾는 듯합니다.

인구 감소에도 '박 터지는’ 대치권

학령인구가 점차 줄어 서울 내에서도 폐교가 하나둘 나오는 상황이다. 하지만 대치권만큼은 예외다. 인사이드대치 통계 자료에 따르면 한 해 평균 2000명 정도의 초등생이 대치권으로 전학을 온다. 이러한 대입 성공에 대한 열망을 바탕으로 입시의 메카, 대치권은 계속 성장해왔다.

대치권 진입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성공적인 대입이나 질 높은 학원가도 이유지만 최근 초등생 부모 사이엔 눈에 보이지 않는 무리, 즉 '학군’의 힘을 생각하는 분이 늘고 있어요. 이제는 이곳에 이사 오는 목적이 오직 대학 입시만은 아니란 거죠. 가끔 "대학은 못 가도 된다"는 학부모님을 만나기도 해요. "대학 하나로 인생이 결정되는 시대는 지났다"는 데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거죠. 입시보단 첫 사회화 공간으로서 좋은 학군이 가진 의미를 더 크게 보는 거죠.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는 분위기를 가르쳐주니까요.

대치권 진입을 망설이는 학부모도 많습니다.

대치권 아이들은 타 지역에 비해 학업 수준이 높고 성취 속도가 빠르다고 알려져 있잖아요. 그 안에서 '우리 아이가 기죽진 않을까’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싶어 많은 부모가 진입을 망설이죠. 실제로 저도 그랬어요.

어린 나이에도 학습 격차가 큰가요.

전국 단위로 충분히 잘하는 초등학생도 대치동에 오면 평범해집니다. 초등학교 2~3학년 필수 코스로 꼽히는 H 학원의 전국 단위 반 배정 시험인 일명 'H 수능’의 성적 분포를 보면 더 체감이 돼요. 전국 상위 6% 정도 되는 아이가 대치에선 상위 52%거든요. 매해 최상위권도 전부 H 학원 대치점에서 나오고요.

부모가 자녀를 저평가할 수도 있겠는데요.

학부모의 불안도가 다른 학군에 비해 높아요. 그 불안을 표출하는 방식도 저마다 다르고요. 아이에게 공부를 더 시키는 부모도 있고 다른 소질을 찾게 하려는 부모도 있죠. 예체능이나 유학 같은 '플랜 B’가 대표적입니다. 이런 이유로 플랜 B에 대한 컨설팅 기관도 상당히 많아요. 입시의 최전선에 있기 때문에 시작이 빠르지만 회선도 빠르죠.

불안을 덜어낼 방법은 없나요.

당연한 말이지만 가계경제가 여유로울 때 진입하는 게 좋아요. 금전적으로 빠듯한데 성과까지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급해집니다. 진입 전에 정확한 예산과 교육비 상한선 그리고 목적을 정해야 하고요. 미리 정하지 않고 대치동에 들어갔다간 주변 말에 휘둘리다 돈만 탕진할 수 있어요.

예민한 부모, 대치동 재고해야

이사를 말리는 경우도 있다고요.

아이도 엄마도 주변 속도에 예민한 경우에는 그래요. 예민한 부모는 자녀의 성적 향상 속도가 느릴 때 불안이 강해집니다. 아이를 크게 다그치기도 하고요. 쉽게 비교하거나 주변의 분위기를 많이 신경 쓰는 아이라면 대치권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대치동 진입 적정 연령대가 있는지요.

공부도 공부지만 정서적 측면을 무시할 수 없어요. 한 아이에게 이사는 '분갈이’ 같아요. 화분에 심어져 있던 걸 뽑아 다른 데 심는 거죠. 이미 한 지역에서 뿌리를 깊이 내린 아이들은 전학해서 적응하기 쉽지 않아요. 하지만 애초에 맺어둔 관계가 얕은 어린아이는 적응이 한결 수월하겠죠. 각자 상황에 맞추시되 가능하면 초등학생 때 오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대치권 진입 시 꼭 기억해야 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요.

대치동 학원가에는 분명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많습니다. 내 자녀가 처음부터 잘 적응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면 걱정 없겠지만 반대의 경우도 염두에 둬야 해요. 아이의 학업 능력이 예상만큼 좋지 않아도 부모가 아이를 실패자로 낙인찍지 말아야 하죠. 대치동에 '실패자는 조용하다‘라는 말이 있어요. 이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다고 모두 대학을 잘 가는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입시는 실패했어도 각자의 삶을 잘 살고 있는 사람이 많아요.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해도 부모가 아이를 기다려주면 언젠가는 본인만의 성취를 이뤄낼 테니 타박하지 말고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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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호영 기자 조영철 기자 

이경은 기자 ali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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