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양 수술만 두 번, 선택지를 받아든 보호자.. 당신이라면?

2023. 4. 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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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고수’를 찾아서
병원에서는 ‘언제 무지개다리 너머로 갈지 모르겠다’고 말했어요.
처음에는 속이 상했는데, 이젠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지난달, 뒷다리가 마비돼 서울 성산동 우리동생동물병원을 찾은 반려견 ‘평화’(13세 추정)의 예후는 좋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지난해 악성 유선종양이 발견돼 수술을 받은 평화는 악성 종양이 언제 다른 기관으로 전이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평화의 수술을 집도한 우리동생 김재윤 원장은 “뒷다리가 마비된 것도 디스크(추간판 탈출증)일 수 있지만, 척추에 악성 종양이 전이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상태를 설명했습니다.

언뜻 들으면 평화의 상태는 매우 심각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주 씨의 표정이 그다지 어두워 보이지는않았습니다. 평화의 상태를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도 밝아 보였습니다. 그동안 형주 씨와 평화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최근 유선종양 수술을 받고 난 뒤 1년도 되지 않아 후지마비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반려견 '평화'의 모습. 평화 보호자 이형주 씨 제공

유독 소심했던 강아지.. 보호소서 물리지 않았다면..

평화와 형주 씨가 처음 만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15년입니다. 당시 충남 아산시의 한 사설 보호소에서 지내던 평화는 다소 소심한 성격으로 보호소 안에서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평화는 보호소 안에서 태어났지만, 수많은 개체수와 부실한 관리 탓에 언제 태어났는지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개들이 함께 보호소에서 지내는만큼 물고 물리는 사건은 종종 발생했었다고 합니다. 형주 씨에 따르면 순한 성격이었던 평화가 항상 다른 친구들에게 물리곤 했었다고 하네요.

결국 보호소 측은 평화가 보호소 밖에서 지내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마침 유기견 임시보호를 주로 하던 형주 씨에게 이 사연이 전해졌고, 형주 씨 가족은 평화를 임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임보 직전에도 평화는 크게 물려서 병원에서피부를 꿰매는 등의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태였다고 해요. 형주 씨는 병원 치료를 받은 뒤 다시 보호소로 가야 한다는 평화의 처지가 안쓰럽게 느껴졌다고 당시를 돌아봤습니다.

입양 전 평화가 동물병원에 입원한 모습. 평화는 다른 개들에게 치여 지내며 물림 사고를 많이 당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평화 보호자 이형주 씨 제공

임시보호가 입양으로 이어진 것 역시 평화의 성격이 한몫했습니다. 평화는 순한 만큼 겁도 많았다고 해요. 형주 씨는 “산책 연습하는 데에만 3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가슴줄을 채우고 산책을 하려고 하면 뒷걸음질 치며 가슴줄을 벗어버리려 하기 일쑤였다고 하네요. 결국 온 가족이 평화를 산책하려고 하면 초긴장 상태로 다 같이 평화와 집 밖을 나가서 만일의 사태를 방지하려 애썼다고 해요. 결국 임시보호 3개월 만에 평화는 형주 씨가 평생 책임져야 할 가족이되었습니다.

같이 지내다 보니 ‘얘가 만약에 다른 데에 입양을 가면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 싶은 거예요. 결국 우리가 책임지면서 산책도 하고 맘 편하게 지내게 해야겠구나, 하는 마음을 먹게 됐죠. 마침 입양 문의도 없었고요.
어떻게 보면 그런 생각도 들어요. 그때 보호소에서 물려서 병원에 가지 않았다면, 아마 보호소에서 계속 살아야 했을 텐데.. 그렇게 인연이 돼서 우리와 함께 사는 게 다행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요. 그 생각 때문에 더욱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도 했죠.

두 번의 종양과 수술.. 양자택일의 순간에 놓인 보호자

처음 3년간 평화는 두려움이 많은 편이었지만, 두려움을 이겨내고 다른 반려견 가족들과도 잘 지내는 강아지가 됐다. 왼쪽에서 세 번째가 평화. 평화 보호자 이형주 씨 제공

바깥세상에 대한 평화의 막연한 두려움은 3년이 지나서야 끝났습니다. 가족이 된 지 3년 만인 2018년, 형주 씨는 평화가 지냈던 동물보호소에서 해외입양을 앞둔 또 다른 강아지를 2개월 정도 임시보호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친구를맞이하는 평화의 두려움이 더 깊어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새로운 친구와 죽이 잘 맞은 평화는 물꼬가 트이듯 산책을 신나게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평화는 형주 씨의 또 다른 반려견 3마리와 함께 발랄한 나날을보냈다고 합니다.

물론, 좋은 일만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보호소에서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은 까닭에 평화는 자궁에 종양이 발견돼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다행히 당시에는 종양이 양성이어서 큰 이상은 없었습니다. 수술을 받은 뒤에도 건강상에 큰 문제는 없었다고 해요. 평상시에도 수제 간식을 만들어주고, 영양제를 챙겨주는 등 건강 관리에 만전을 기울인 형주 씨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늦은 중성화 수술은 결국 평화의 발목을 잡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평화에게 유선종양이 발견된 겁니다. 정확한기전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통계학적으로 어린 시기에 중성화 수술을 할수록 자궁이나 유선종양이 발병할 확률은 줄어든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심지어 평화가 맞이한 종양은 매우 ‘고약한 놈’이라는 소리를 듣는 종양이었습니다. 김 원장은 “평화의 몸에서 발견된 종양은 ’칼시노마’라는 악성 종양”이라며 “그레이드가 높건 낮건, 제거 수술을 하더라도 다른 기관에 전이될 가능성이 높은 질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평화는 아픔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의젓한 성격이다. 평화의 주치의 김재윤 우리동생 원장은 "의젓한 성격이 외려 보호자에게 위로를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평화 보호자 이형주 씨 제공

그렇다고 해도 있는 종양을 제거하지 않을 도리는 없었습니다. 장시간 수술 끝에 다시 형주 씨에게 돌아온 평화는 매우양호해 보였다고 합니다. 김 원장이 “평화는 질병에 대한 통증 호소도 그리 많지 않은 편”이라며 “어떻게 보면 보호자보다 강아지가 더 의젓한 듯하다”고 말할 정도였죠. 그런 까닭에 평화가 오히려 형주 씨에게 위안을 주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형주 씨도 비슷한 생각이었습니다.

평화가 참 건강 체질이에요. 지금 이렇게 병을 앓고 있는 애에게 할 얘기는 아니지만, 아프기 전에는 먹는 것도 잘 먹고.. 얘가 싫어하는 기색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만지지 않는 것 말고는 특별히 스트레스 관리라고 해줄 것도 없을 정도였죠. 제가 평화 덕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질병에 초연하게 대처하는 평화 덕에, 형주 씨는 마음의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럼에도 전이됐을 가능성이 나타난 만큼 선택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김 원장은 “보통 이런 악성 종양의 경우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두 가지 선택지란, 항암치료 선택 여부입니다. 보통 평화 정도의 나이가 되면 기대수명이 대략 4~5년입니다. 그런데, 항암치료 과정 역시 그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즉, 죽을 때까지 항암치료를 진행하느냐 아니면 살아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주느냐를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죠. 김 원장은 “이건 수의사가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결국 보호자들에게 선택지를 주고 결정을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선택지를 받아든 형주 씨는 최근,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는 휠체어를 주문했다고 말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주 씨는 평화가 이 때의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도 평화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다짐했다. 평화 보호자 이형주 씨 제공
뒷다리가 안 움직이니 재활을 시도해 보긴 할 거예요. 그런데 안 되면 어쩔 수 없겠죠. ‘안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언제 무지개다리를 건너도 이상하지 않다고 하니, 그때까지는 최대한 평화가 개로 살면서 즐길 수 있는것은 다 해주고 싶어요.

형주 씨와 비슷한 선택지를 받아든 다른 보호자들은 어떤 고민과 선택을 했을까요? 어느 쪽이든 각자의 반려동물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내렸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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