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 70은 지적장애 등록, 71이면?…‘경계선 지능인’들 어쩌나

박송이 기자 2023. 4. 1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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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 70~85로 일상생활 힘들지만 복지 사각
범죄 피해 노출 가능성 높아 국가적 대책 시급
지난 3월 30일 서울 서초동 법원삼거리에서 경계선 지능인의 장애인등록신청반려처분 취소소송 제기 기자회견이 열렸다. /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주간경향]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계선 지능인은 지적 장애인과 평균 이상의 지능지수를 가진 비장애인의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이다. 일반적으로 지능지수 70~85 사이를 경계선 지능에 해당한다고 본다.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명확한 실태조사나 통계는 아직 없다. 다만 해외의 통계를 미뤄볼 때, 전체인구의 약 14%가 경계선 지능이라고 추정된다. 생활에 문제가 없는 경우도 있으나 학교나 직장, 사회생활을 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많다. 범죄의 표적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장애인으로 인정되지 않아, 복지 지원을 받지 못하는 등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성인 된 후에도 직업 구하기 어려워

지난 3월 30일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공익인권법재단 공감·재단법인 동천은 경계선 지능인의 장애인 등록을 위한 장애인등록신청반려처분 취소소송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1월, 30대 후반의 김지호씨(가명)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지자체에 장애인 등록 신청을 했다. 김씨는 지능지수 72로 경계선 지능에 해당한다. 김씨의 경우 지각추론 점수가 특히 저조했고, 손으로 하는 일에 큰 어려움을 겪어 왔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 스스로 운동화 끈을 묶기도 힘들었으며, 운전면허 기능시험에는 번번이 떨어졌다. 어릴 때부터 인간관계와 학교 공부를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지만, 자신의 성격 문제로 여기며 스스로를 자책해왔다. 성인이 된 후에도 직업을 구하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도 한 달 이상 지속하기 어려웠다. 힘든 상황이 계속되자 김씨는 임상심리평가를 받았다. 본인이 경계선 지능인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씨는 살아오면서 힘겹게 겪어내야 했던 많은 불리함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장애인 등록을 신청했다. 현행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은 그러나 지능지수 70을 초과하면 ‘장애 정도 심사용 진단서’조차 발급받기가 어렵다. 이에 김씨는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의 도움을 받아 해당 지자체를 상대로 장애인등록신청반려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김씨의 소송을 대리하는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경계선 지능인도 장애인으로 인정해 장애인복지법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장애인 유형을 정해 놓고 그 유형에 해당이 되면 장애인 등록을 해주고 해당이 안 되면 등록을 안 해준다. 그러나 투레트증후군, 복합통증증후군(CRPS) 등 장애가 아닌 질병으로만 여겨졌던 유형도 최근 법원 판결을 통해 장애로 인정받게 됐다”며 “경계선 지능도 현행법상으로는 장애인 등록이 안 되지만, 소송을 통해서 충분히 바꿔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2019년 대법원은 투레트증후군 당사자가 지자체를 상대로 제기한 장애인 등록신청 반려처분 취소소송에서 시행령 조항에 해당 장애가 없더라도 행정 당국이 가장 유사한 장애 유형에 대한 규정을 찾아 이를 유추 적용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최 변호사는 “지능지수가 70이면 장애인으로 등록이 되고 71이면 등록이 안 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나”며 “지체장애는 ‘심한 장애’에서 ‘심하지 않은 장애’까지 포괄하는데 유독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는 ‘심한 장애’만 장애로 인정한다”고 말했다. 지적 장애의 범주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다.

2022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국내 장애인 정책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79개의 권고사항을 제시했다. 이중에는 장애의 개념을 확대하는 안도 포함돼 있다. 조인영 공익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를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개념’으로 보고 장애 자체가 ‘사회참여를 가로막는 태도 및 환경’이라는 ‘사회적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이러한 ‘사회적 모델’의 관점에서 한국의 장애인복지법이 최근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학적 모델’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표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모든 장애를 아우르는 장애개념을 채택하도록 하고 그들의 특성과 요구가 인정되도록 보장해야 하며, 장애인에 대한 법적·환경적 장벽을 파악하고 자립생활 및 완전한 통합 증진을 위해 필요한 지원의 제공을 지향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장애판정제도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라”고 권고했다. 조 변호사는 장애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유럽 등 선진국의 사례를 들었다. “유럽에서는 면밀한 개별 조사를 벌이고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으면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폭넓게 장애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사회적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도 사회적 모델에 입각해 장애개념을 넓게 파악해 인정한다. 2008년 미국장애인개정법률(ADAAA)은 ‘일시적 혹은 경감된 손상이 주요 일상생활 유지에 심각하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장애로 인정’하기로 하면서 사회적 모델을 적극적으로 채택했다고 평가된다. 이러한 장애개념의 변화는 복지서비스에서 개별 맞춤형 지원서비스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국회에서 ‘경계선지능인지원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 허영 의원 블로그

‘경계선 지능인 지원법’ 발의

장애인복지법이 아닌 별도의 입법을 통해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지원 체계를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다. 지난 4월 3일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계선 지능인의 생애주기별 지원을 위한 ‘경계선 지능인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제정안은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내리고, 이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실상을 파악하여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또한 생애주기별 특성과 수요에 따른 지원 근거를 마련하고 경계선 지능인 지원센터를 통한 통합적이고도 체계적인 지원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허영 의원실 관계자는 발의 배경에 대해 “지역구 지자체에서 상위법이 없다는 이유로 조례를 부결시키는 상황을 보고 입법 준비를 하게 됐다”며 “21대 국회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지원 체계가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대부분 학령기 아동에 대한 발달치료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지자체 조례로만 시행되고 있어 제한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16년 초·중등교육법이 개정되면서 학습이 부진한 경계선 지능 아동을 지원하는 법적 근거를 만들었다. 2020년 10월 서울시를 시작으로 광주광역시, 경기도 등이 잇따라 관련 조례를 만들었다. 교육법이 개정되고 관련 조례가 제정됐지만, 이에 기반을 둔 뚜렷한 지원책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2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경계선 지능인법 입법 준비 토론회’에서 박진우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보는 “초·중등교육법 제28조에 따른 학습부진아 등에 대한 교육 정책 및 실태조사 등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특히 실태조사의 미실시로 인해 조기개입 및 제도적 지원 마련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경계선 지능인과 유사한 발달장애의 경우,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따라 제도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지만, 경계선 지능인들을 위한 고용지원제도는 없는 상황”이라며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국가 차원의 실태조사와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폭력·사기 피해자 될 가능성 높아

경계선 지능인이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으면서 폭력이나 사기 등 범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 국가적인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2020년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은 <경계성 지능 장애 여성의 성폭력-성매매 피해 예방방안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경계성 지능인은 의사소통은 가능하나 상황인식이나 판단능력이 낮아 범죄의 피해자가 될 개연성이 높다”고 분석하며 “경계선 지능 여성은 상황의 판단과 의사표현 능력이 부족해 성폭력 피해를 당하기 쉽고 성폭력을 당해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향이 강해 피해사실이 쉽게 노출되지 않고 자기비하와 죄책감, 두려움 등으로 사건이 폭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범죄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경계선 지능에 대한 법적 근거를 확보하는 게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경계선 지능을 가진 사람 모두가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거나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나 사회적 적응이 어렵고 인식의 왜곡이나 정서장애 등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힘들 경우, 성범죄의 표적이 된다거나 성범죄가 발생해도 인지하지 못해서 제2, 제3의 피해가 연쇄적으로 발생한다면 이는 장애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법·제도적 범주 자체를 개선하는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장애인복지법 개정과 별도의 지원법 마련 사이에서 국가적인 정책 방향을 어떻게 가져갈지를 두고선 견해가 갈리고 있다. 허영 의원실 관계자는 “장애인복지법 안으로 포괄하게 되면 사회적 합의가 쉽게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또 발달장애인은 성년후견인 제도 등 장애인의 의사를 대리하는 법 조항들이 있는데, 경계선 지능인도 스펙트럼이 넓어 지속적인 도움만 있으면 생활이 완전히 불가능한 상황은 아닌 당사자도 많다”고 말했다. 조인영 변호사는 “지원법이 통과되면 지금보다는 더 안정적이고 확실하게 지원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나, 경계선 지능인이지만 이번 소송의 당사자처럼 발달장애인과 동일한 정도의 생활지원이 필요한 경우에는 경계선 지능인 지원법만으로 충분히 지원이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또 장애인복지법이 있음에도 복지서비스가 온전하게 필요한 만큼 제공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법률 개정만으로는 경계선 지능인에게 필요한 지원들이 포괄적으로 지원된다고 보기 어렵다. 현재 발달장애인지원센터의 예산도 충분하지 않아 예산 확보 방안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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