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라는 차별과 배제, 당신은 괜찮나요
장애인·노인 등 “갈 곳 없어진다”
[주간경향] 지체장애인 A씨는 최근 같은 장애를 가진 지인과 함께 시내 식당을 찾았다가 불편을 겪었다. 해당 식당이 무인정보단말기(키오스크)로만 주문을 받는 식당이었기 때문이다. 휠체어에서는 키오스크를 조작하는 터치스크린이 너무 높아 닿지 않았다. 음식을 나르던 한 직원에게 “주문을 받아달라”고 요청했지만, “키오스크에서만 주문이 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인과 다시 다른 식당을 찾아가기도 마땅찮던 A씨는 재차 사정을 설명하며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해 겨우 주문을 할 수 있었다. A씨는 “똑같이 비용을 지불하면서 사정사정해야 하는 현실에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며 “키오스크가 늘면서 점점 장애인이 갈 수 있는 식당이나 커피전문점도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122㎝. 장애인이 휠체어에 앉아 힘껏 팔을 뻗었을 때 닿을 수 있는 최대 높이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의 평균 키 정도인 이 높이가 키오스크 앞에 선 장애인들에겐 거대한 장벽처럼 다가온다. 한국소비자원의 2022년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키오스크의 85%가 122㎝보다 높게 설치돼 지체장애인의 접근이 아예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체장애인뿐만이 아니다. 시각장애인, 지적 장애인들이 자력으로 이용 가능한 키오스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65세 이상 고령층 10명 중 6명 이상은 키오스크 조작 자체에 어려움을 느낀다.
코로나19 확산 시기를 거치면서 전국적으로 키오스크가 급속하게 보급되는 추세다. 위생과 안전, 효율과 편리를 추구하는 동안 키오스크는 장애인과 고령층 등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고 차별의 또 다른 상징이 됐다. 정부는 문제점을 개선하겠다며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대부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용절감, 편의성에 키오스크 ‘폭증’
지난 4월 5일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공공·민간부문에 설치된 키오스크 수(추정)는 2019년 18만9951대에서 지난해 45만4741대로 2.4배가량 늘었다. 여기에는 2019년에는 키오스크 대상에 포함되지 않던 주유소, 빨래방, 무인상점 등의 키오스크(약 17만7000대)가 포함된 이유가 크지만 주목할 곳은 요식업계다. 장애 여부나 연령대와 관계없이 일상에서 키오스크 이용이 가장 빈번한 부문이기 때문이다.
요식업계의 키오스크는 같은 기간 5479대에서 8만7341대로 3년새 16배가량 늘었다. 말 그대로 ‘폭증’이다. 요식업계에서 키오스크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비대면 서비스’ 제공 차원에서 최초 주목받았다. 패스트푸드점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먼저 키오스크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후 대여(렌털)방식을 이용하면 “비용 절감 효과가 높다”는 입소문이 자영업자 사이에서 돌면서 소규모 골목상권까지 키오스크가 진출했다.
한 요식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최저임금 기준으로 하면 직원 1명을 고용할 경우 월 230만원가량 인건비로 지출을 해야 한다”며 “반면 키오스크는 3년 렌털 조건으로 월 10만~15만원이면 도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건비 절감 효과가 월등하다”고 말했다.
키오스크 확산에는 1인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국내 특성도 작용한다. 통계청의 2020년 경제활동인구 조사를 보면 전체 553만1000명의 자영업자 중 1인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75%(415만9000명)에 달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식당을 혼자 운영하는 B씨도 지난해 말 키오스크를 설치했다. 그는 “주문을 받아 조리하는 동시에 손님을 응대하거나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며 “키오스크를 설치하니 바쁠 때 주문이나 계산을 위해 사람을 따로 고용하지 않아도 되고, 조리에만 집중할 수 있어 일의 효율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물가와 인건비 상승 등으로 원가 절감 수요가 계속 늘고 있기 때문에 키오스크 보급 확산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추세라고 요식업계는 전망한다.
장애인·노인들 이용 어려워, “사회적 문제”
정부가 ‘장애인·고령자 등의 정보 접근 및 이용 편의 증진을 위한 고시’를 통해 분류한 키오스크를 보면 무인발권, 결제, 주문, 체크인 등 모두 16종에 달한다. 여기에 각 분류별로 업종 특성에 따라 키오스크가 많게는 수십여 종으로 다시 나뉜다. 이미 일상생활에서 워낙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키오스크가 쓰이고 있는 탓에 일일이 숫자를 헤아리기도 어렵다.
키오스크의 확산 추세에 비해 장애인과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속도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은 2022년 ‘키오스크 이용 실태조사’를 벌이면서 요식업(패스트푸드점), 영화관, 주차장 등에 설치된 키오스크 20대를 대상으로 약자층에 대한 정보 접근성 보장 여부를 심층조사했다.
심층조사 결과를 보면 장애인 대상 정보 접근성은 ‘낙제점’에 가까웠다. 정부가 지난해 마련한 ‘키오스크 KS 표준’에서는 키오스크가 제공하는 모든 시청각 정보를 다른 감각을 통해 이용할 수 있는 대체 콘텐츠로 제공해야 하지만 조사대상 20대 모두 기준에 미달했다. 이 때문에 시각장애인의 경우 20대 모두 사용이 아예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각장애인의 경우 20대 중 15대는 일단 이용이 가능했지만 필요 시 ‘호출’을 통해 음성안내를 들어야 하는 5대의 경우 이용이 어려운 것으로 조사됐다. 지체장애인의 경우 조사대상 20대 중 17대가 휠체어를 탄 채 이용 가능한 최대 높이인 ‘122㎝’를 초과한 높이에 있어 대부분 이용이 불가능했다.
이들 키오스크는 고령층이 이용하기에도 불편한 점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층이 어려움을 겪는 ‘이용방법 안내’의 경우 20대 중 12대는 이용방법 안내가 아예 없었고, 2대는 안내가 부실했다. KS 표준에서는 키오스크 글자 크기로 ‘높이 12㎜ 이상’을 규정했지만 20대 중 14대는 이보다 글자 크기가 작았다. 20대 중 7대는 화면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70% 이상으로 너무 컸고, ‘품절’, ‘호출’ 등의 용어를 영어로 표시해 고령층에 혼선을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영문이 섞인 키오스크만으로 주문을 받는 모 대형 프렌차이즈점을 가리켜 ‘노(NO)인존’이라고 빗댄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9년 기준 국내 등록장애인 수는 261만8000명으로 전체인구의 5.1%를 차지했다. 통계청 추계에서 국내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2025년에 20.3%, 2050년에 39.8%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한 사회복지단체 관계자는 “예컨대 장애인과 고령층도 이용이 가능했던 식당이 키오스크 주문으로 바뀌면서 이용이 어렵게 됐다면 그 자체로 과거에는 없던 배제와 차별이 생긴 것”이라며 “지하철의 경우 장애인 이동권 보장 문제로 십수 년째 갈등과 논란을 반복 중인데, 키오스크 문제 역시 제때 대응하지 못하면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다림, 배려 등 사회적 인식 개선도 필요
정부도 키오스크 확산에 따른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2019년부터 과기부 등에 전담반을 꾸려 제도 및 키오스크 기기 개선 등에 나섰다. 지난해 7월에는 지능정보사회에서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국가기관의 역할 등을 명시한 ‘지능정보화 기본법’이 시행됐다. 앞선 작년 5월에는 기술 표준 등을 만들어 장애인·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키오스크를 공공기관이 우선 구매토록 하는 고시를 제정했다. 보건복지부도 ‘장애인차별 금지법’ 등 소관법률과 관련 시행령을 활용해 대책을 마련해 나가는 중이다. 소병훈 의원은 최근 고령층을 배려한 키오스크 보급을 명시한 노인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와 정치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노인 등의 키오스크 사용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키오스크 기술 표준의 경우 기기의 구조나 기능 등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표준이 마련됐지만, 현재 시급한 건 소프트웨어 표준을 마련하는 일이다. 키오스크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소프트웨어도 제각각이라 키오스크가 바뀔 때마다 사용법을 그때그때 즉석에서 다시 익혀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가뜩이나 키오스크 사용이 어려운 장애인·노인 등에겐 ‘이중고’다. 이성훈 과기부 디지털포용정책팀장은 “지난해부터 키오스크의 사용환경(UI)과 사용경험(UX) 표준화를 목표로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라며 “가급적 연내 소프트웨어 표준을 마련해 민간부문 등에 공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올 1월에는 장애인차별법 시행령 개정으로 공공·민간부문에서 키오스크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성을 보장하도록 의무화했다. 키오스크 설치 시 휠체어 접근성 보장, 점자블록 설치, 자막·점자 자료·그림 등 대체 콘텐츠 제공 등이 가능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도입하도록 한 내용이 골자다.
하지만 시행령의 적용 시기는 공공기관이 내년 1월부터다. 민간부문의 경우 사업장 규모 등에 따라 2025년까지 단계적 적용을 하도록 했다. 시행령 시행 이전 설치된 키오스크에는 기존 렌털 기간 등을 고려해 3년간 제도 적용을 유예했다. 50㎡ 이하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보조 인력(점주 포함)이 상주할 경우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의무가 사실상 면제됐다.
이승헌 장애인차별금지 추진연대 활동가는 “50㎡이면 장애인·노인 등이 일상생활에서 자주 이용하는 음식점·편의시설 등이 대부분 해당돼 시행령이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며 “이미 상위법인 장애인차별법에서 포괄적으로 ‘차별금지’를 규정하고 있는데, 하위법인 시행령에서 이를 유예하고 일부는 면제하는 조항을 둔 건 법체계의 모순”이라고 말했다.
제도와 기술의 개선과 함께 반드시 필요한 것이 사회적 인식 개선이다. 소비자원의 실태조사에서 ‘키오스크 이용 중 중단 사유’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60대 이상 연령대는 “뒷사람 눈치”(71.2%)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홍경순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수석은 “장애인·노인 등이 키오스크를 사용할 때는 좀더 기다려주고 배려하도록 사회인식이 전반적으로 개선돼야 한다”며 “키오스크 제조업체나 자영업자들도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등을 ‘비용 지출’보다는 잠재적인 고객 확보를 위한 투자로 인식해 법규제와 상관없이 도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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