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이 땅을 더는 아프게 놔둘 수 없다

김재태 편집위원 2023. 4. 17.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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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갈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1986년 산불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100ha 이상 규모의 대형 산불이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이 발생했다는 기록을 남긴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산불을 예방하고 진화하는 데 필요한 전문인력과 장비가 예전보다 훨씬 강화됐을 텐데도 이런 참사가 연이어 발생한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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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김재태 편집위원)

멀리 갈 것도 없었다. 남녘 도시 진해나 서울 여의도가 아니면 어떠랴. 봄은 집 앞 도로변에도 활짝 피었다. 짧게 늘어선 그 몇 그루 벚꽃나무만으로도 화사함은 충분했다. 거기서 환하게 차올랐던 봄은, 그러나 한낮의 꿈처럼 짧았다. 애태우며 간절히 기다려왔던 비가 내렸고, 꽃들은 우르르 길 위에서 졌다. 비록 찬란했던 봄꽃의 눈부심을 거두어 가긴 했지만, 그 비는 오래 타들어가던 많은 사람의 가슴을 시원하게 적신 축복 같은 단비였다. 

비가 내리기 전까지 이 땅은 조금 과장해 표현하자면 곳곳이 '불의 지옥'이었다.  크고 작은 산불이 도미노처럼 일어나 나무와 집들을 태우며 우리의 삶을 위협했다. 산림청에 따르면, 식목일 이전인 4월2일부터 4일까지 3일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산불은 무려 53건이었다. 서울도 무사하지는 않았다. 대부분 바위와 돌로 뒤덮여 나무가 그다지 많지 않은 인왕산에서도 불길이 솟아올랐다. 인근 주민들은 불이 바람을 타고 민가로 내려올까봐 내내 마음을 졸였다. 동네 이발소에서 만난 한 주민은 그 불을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이 동네에 오래 살았지만, 이런 산불은 처음이야. 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는데 길을 막아 걸어서 지나갈 수밖에 없었어.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리고…. 난리도 그런 난리라니!"

11일 오전 강릉시 난곡동에서 산불이 발생해 오후 3시30분까지 산림 226㏊가 소실됐으며 주택과 펜션 등 71채가 불에 탄 것으로 집계됐다. ⓒ연합뉴스

이번 산불들은 충분히 예상됐던 재앙이다. 오랜 기간 비가 내리지 않아 땅이 말라 있던 데다 건조한 날씨가 계속돼 어디서든 불씨만 던져지면 화마에 휩싸일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1986년 산불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100ha 이상 규모의 대형 산불이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이 발생했다는 기록을 남긴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산불을 예방하고 진화하는 데 필요한 전문인력과 장비가 예전보다 훨씬 강화됐을 텐데도 이런 참사가 연이어 발생한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이처럼 대규모 산불이 늘어난 이유로 지역 소멸에 따른 인구 감소를 들기도 한다. 예전에는 산골 마을에 그래도 젊은 인력이 있어 산불을 초동 진화하는 데 힘을 쓸 수 있었지만, 현재는 노령 인구만 남아 조기 진압이 여의치 않다는 얘기다. 현재 마을을 지키고 있는 고령자들은 불을 끌 주체가 아니라 대피가 우선돼야 할 대상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이제는 산불 위험이 큰 지역들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시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산림청에서는 국내 1호 국립공원인 지리산 산불을 예로 들어 화재 진화를 용이하게 해줄 임도를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그것으로 대책이 끝나서는 안 된다. 이참에 좀 더 면밀한 산불 예방·대응 매뉴얼을 세워 앞으로의 재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인 우리나라에서 산불은 늘 예고 없이 찾아들 수 있는 재난이다. 그리고 그 재난을 맨 앞줄에서 견디고 피해를 보는 사람은 취약계층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울진·삼척 산불이 그러했듯 땅 위에, 사람의 마음 위에 남겨지는 상흔이나 트라우마도 더없이 크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도 안타깝게 방송에서는 강원도 강릉 지역에 대형 산불이 일어나 주택·펜션 수십 채를 태우고 주민들이 대피 중이라는 뉴스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산불 사태로 인해 소중한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은 이제 우리 모두의 몫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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