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시간을 형상화한 남미 예술가의 ‘수행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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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시간을 미술품의 재료로 쓴다면? 과연 어떤 형상과 이미지가 나타날까.
퍼포머의 몸 사진을 확대한 이미지 위에 모래와 천연 안료를 섞어 만든 여러 색깔의 물감을 오직 작가의 손만으로 휘휘 저어 조각 그림을 만들고 이 조각 그림들을 다시 붙여 대형의 그림벽을 만든 페인팅 작품이다.
미국의 볼리비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독일 프랑크푸르트 예술대에서 수학한 작가는 이처럼 과거와 현재 시간의 흔적들을 집요하게 붙잡고 기록하는 수행미술의 노작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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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시간을 미술품의 재료로 쓴다면? 과연 어떤 형상과 이미지가 나타날까.
서울 마곡동 서울수목원 부근에 자리한 스페이스케이 서울 전시장에서 이런 궁금증에 응답하는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지난달부터 열리고 있는 볼리비아계 미국인 작가 도나 후앙카(43)의 개인전 ‘블리스 풀’(행복한 연못)은 회화와 조형물이 곡면의 공간에서 소리와 향을 발산하면서 서로 스며들고 조응하는 총체적 예술의 시각 무대를 내보이고 있다. 작가가 자연과 사회에서 과거와 현재를 겪으며 느낀 감각과 인상들을 퍼포머들이 몸을 움직인 퍼포먼스의 다기한 흔적들로 표현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조형성을 표출하는 방식과 경로가 신선하고 독창적이다.
전시장 들머리에 놓여 관객을 맞는 조형물은 <긍정적인 일기>란 제목의 작품이다. 푸른빛 안료를 군데군데 칠한 사람 형상의 알루미늄 덩어리에 피어싱 모양의 금속고리 조형물과 남미 나스카 평원의 기하학적 무늬 등을 형상화한 판 등을 붙여놓았다. 좌대는 정원석으로 쓰이는 한국의 온양석 돌덩어리를 썼다. 배경의 곡면 벽에 보이는 푸른빛 무늬 같은 이미지들은 개막날 안료를 몸에 칠한 퍼포머들이 몸을 문질러 생긴 것이다. 현실을 헤쳐나가는 몸의 감각과 지역성과 시간성을 반영한 종합의 개념이 투영된 셈이다.
중간 부분으로 들어가면, 관객의 얼굴과 몸이 투영되는 거울 같은 스테인리스 판의 조각들과 옷가지, 비닐 포대 등을 걸친 철제 조형물이 거대한 원형 무대에 놓여 있다. 이 원형 무대를 작가의 손으로 칠한 추상적 화면이 입혀진 거대한 두 벽들이 감싼다. 이 추상적 화면은 몸의 기를 표현한 것이다. 퍼포머의 몸 사진을 확대한 이미지 위에 모래와 천연 안료를 섞어 만든 여러 색깔의 물감을 오직 작가의 손만으로 휘휘 저어 조각 그림을 만들고 이 조각 그림들을 다시 붙여 대형의 그림벽을 만든 페인팅 작품이다. 작가와 퍼포머의 몸이 만들어낸 이 조형물과 거대 화폭의 벽 사이를 관객들은 다시 왔다 갔다 하면서 투명하게 반짝거리는 무대의 바닥과 스테인리스 조각물에 거울처럼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고 작가와는 다른 상념을 품게 된다.
미국의 볼리비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독일 프랑크푸르트 예술대에서 수학한 작가는 이처럼 과거와 현재 시간의 흔적들을 집요하게 붙잡고 기록하는 수행미술의 노작들을 보여준다. 벽에 몸 문질러 흔적 남기기, 신체를 크게 확대해 걸어두기 같은 ‘퍼포먼스+회화’ 구도의 독특한 작업 의식과 방법론으로 시간성의 한계를 초월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작가는 애초 여러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하며 언더그라운드 음악으로 먼저 예술가의 이력을 시작했지만, 보디페인팅을 시작하면서 고유의 자유로움과 즉흥성에 빠져 미술 작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현재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작가는 아트바젤 페어의 언리미티드 특별전 등에서 주목을 받으면서 세계 미술계에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6월8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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