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건지 말 건지 나도 몰라, 그냥 해” 장기하는 별일 하며 산다
“재밌는 놀이터 마련했으니
많이들 신나게 놀아봅시다”
지난해만 해도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 했던 가수 장기하가 이젠 “해” 한다. 그러더니 곧바로 또 “할 건지 말 건지 나도 몰라” 한다. 대체 뭔 의식의 흐름인가.
장기하는 지난 5일 싱글 <해 / 할건지말건지>를 툭 내놓았다. ‘해’와 ‘할건지말건지’ 두 곡을 연작처럼 담았다. 첫 곡 ‘해’에서 “해”를 무려 26번이나 외치더니, 다음 곡 ‘할건지말건지’에선 “할 건지 말 건지 나도 몰라 잘 몰라/ 맞는지 틀린지 물어보지 마”라고 노래한다. 물어보지 말라고 했지만, 물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인터뷰를 청했다. 다행히 그는 “할 건지 말 건지 나도 몰라” 하지는 않았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자리한 소속사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사무실에서 장기하를 만났다.
“이렇게 직접 만나서 인터뷰하는 거 오랜만이네요. 인터뷰하면 제 생각을 알리는 것도 알리는 거지만 말하면서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거든요. 요청받고 ‘할 건지 말 건지’ 고민하진 않았어요. 그냥 ‘해’ 했죠.”
대중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장기하의 모습은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시절일 것이다. 2008년 ‘싸구려 커피’로 혜성처럼 떠오르더니 ‘달이 차오른다, 가자’, ‘별일 없이 산다’, ‘그렇고 그런 사이’ 등 히트곡을 잇따라 내며 한국 록음악계를 휘저었다. 그러다 2018년 갑자기 밴드 해체를 선언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정규 5집 <모노> 발매와 연말 공연을 끝으로 밴드는 꼭 10년 만에 흩어졌다.
“지금도 후회는 전혀 없어요. 장기하와 얼굴들 6명 조합으로 할 수 있는 건 <모노>가 정점이었어요. 그 음반 만들면서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 이젠 밴드를 마무리해도 좋겠다고 멤버들끼리 중지를 모았죠. 몇년 더 했으면 다른 밴드에서 종종 그렇듯 멤버들끼리 틀어져 깨졌을지도 모를 일이죠. 우린 지금까지도 사이가 정말 좋으니 더더욱 그때 끝내길 잘했다는 생각이에요.”
이 때문만이 아니다. 장기하는 이후 휴지기를 가지면서 새로운 뭔가를 느끼고 배웠다고 했다. 그는 2019년 1월1일부터 아무 계획 없이 무작정 쉬기 시작했다. 여행도 다니고 하다 갑자기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사의 함축적 언어만으로 표현하기엔 한계가 있는 생각들이 쌓이다 보니 책으로 써보고 싶었죠.” 그래서 2020년 9월 내놓은 책이 <상관없는 거 아닌가?>(문학동네 펴냄)다. 음악가로서, 또 평범한 생활인으로서 느끼는 일상다반사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솔직·담백·유쾌하게 풀어낸 첫 산문집이다.
책을 내고 나니 싹 잊고 있었던 음악에 대한 고민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장기하라는 음악가의 가장 핵심적인 정체성은 뭘까?’ 고민 끝에 다다른 결론은 ‘우리말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록 음악을 잘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지만, 우리말을 다루는 방식에선 저만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김창완·배철수·송창식 선배님 노래를 바이블 삼아 우리말을 우리말스럽게 노래하는 방법을 부단히 고민하고 연구했거든요. 이를 바탕으로 다른 요소 다 빼고 내 말만 있는 노래를 만든 뒤 누구나 쉽게 쓰는 소프트웨어로 소리를 입혀봤어요. 그 결과물이 <공중부양>이에요.”
<공중부양>은 그가 지난해 2월 발표한 솔로 미니앨범이다. 오롯이 혼자 컴퓨터로 만들었다. ‘부럽지가 않어’,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 등 5곡을 담았다. 말인지 노래인지 경계가 흐릿한 특유의 창법이 극대화된, 그저 장기하의 노래들이다. 공연 또한 밴드 형태로 하고 싶지 않아 녹음한 반주(MR)를 틀고 노래했다. 그래도 재밌는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현대무용가 윤대란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무용과 스탠드업 코미디 요소도 있고, 말이 노래가 됐다가 노래가 다시 말이 되고, 책도 읽었다가 갑자기 암흑 속에서 노래하는 등 온갖 걸 다 시도해봤어요. 생전 처음 해보는 방식의 공연이라 준비도 열심히 하고 떨기도 많이 떨었죠. 앙코르 공연까지 20여회 하고 나니 지평을 넓힌 기분이었어요.”
<공중부양> 앨범과 공연으로 한판 재밌게 놀고 나니 문득 밴드 공연이 하고 싶어졌다. 지난해 10월 현대카드 ‘다빈치모텔’ 페스티벌에서 약식 밴드 편성으로 공연했던 것도 방아쇠를 당겼다. “그때 내가 밴드 공연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이 밀물처럼 밀려오더라고요. ‘내년에 무조건 밴드 공연을 해야겠다. 우선 밴드 음악 신곡부터 내자’고 마음먹었죠.”
그래서 이번에 내놓은 것이 <해 / 할건지말건지>다. 장기하와 얼굴들 드러머였던 전일준, 혁오의 기타리스트 임현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베이시스트 지윤해와 녹음했다. “스튜디오 한방에 다 함께 들어가서 중간에 끊지 않고 원테이크로 녹음했어요. 메트로놈도 안 써서 속도가 빨라졌다 느려졌다 하는데, 그 순간이 얼마나 재밌던지요.” 첫 곡 ‘해’의 건반 파트는 나중에 일렉트로니카 밴드 이디오테잎의 제제가 연주해 추가했다.
가사를 만든 과정도 별나다. “작년에 발표한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를 참 좋아했어요. 그걸 자꾸 듣다 보니 문득 ‘아니, 할 수도 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즈음 ‘하다’라는 동사에 꽂히기도 했고요. 그래서 만든 노래가 ‘하다’의 파생어들로 만든 ‘해’였어요. 이 노래도 맘에 들어서 자꾸 듣다 보니 ‘해, 해, 해, 해’ 강요하는 것 같더라고요. 거기에 또 반발심이 들었죠. 그래서 “할 건지 말 건지 나도 몰라” 하며 만든 노래가 ‘할건지말건지’예요. 연작이 된 셈인데, 각각 음원은 따로 냈지만 뮤직비디오는 두 곡을 하나로 붙여서 찍었어요.”
그는 장기적 계획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했다. 절대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란다. “앞장서는 사람도 사실은 잘 모른다고 생각해요. 단호하게 ‘해’ 하지만, 사실은 할 건지 말 건지 잘 모르는 게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들이 가사에 반영된 셈이죠. 군대 시절 막막했던 기분을 담아 만든 노래가 ‘싸구려 커피’였는데, 지금도 미래에 대한 막막함은 여전해요. 술이 덜 깬 채 아침에 일어나면 ‘인생, 뭐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거죠.”
말은 이래도 나름 여러 일을 하며 지낸다. 그는 지난해 서체 디자이너 채희준과 협업해 자신의 이름을 딴 ‘기하’체를 만들었다. 특유의 구렁이 담 넘어가듯 노래하는 느낌을 반영했다. <공중부양> 음반 속지부터 이 서체를 적용했다. 더 밥 스튜디오와 함께 유튜브 콘텐츠 <낮술의 기하핰>도 만들어 올리는 중이다. 경남 밀양, 강원 고성 등을 다니며 현지 음식에 낮술을 걸치고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는 콘텐츠다. “유튜브는 재밌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편하게 하고 있어요. 일인데도 제가 힐링되는 기분이죠.” ‘혼밥·혼술’ 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고정 팬이 제법 생겼다. 올여름 개봉 예정인 류승완 감독의 신작 <밀수> 음악 작업도 했다. 영화음악 감독 데뷔작이다. 작년엔 이래저래 뭐가 많아 죽는 줄 알았단다.
이제는 설렘으로 가득하다. 신나게 밴드 공연하는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21~23일, 28~30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무신사 개러지에서 단독공연 ‘해!’를 여섯차례 한다. 신곡은 물론 장기하와 얼굴들 곡들도 연주한다. 5월 말 서울재즈페스티벌 야외무대에도 선다. 여름 록페스티벌 무대도 논의 중이다. “재밌는 놀이터를 마련했으니 많이들 오셔서 신나게 놀아봅시다.” 올 한해 실컷 놀고는 내년에 앨범 작업도 할 생각이다. 어쨌거나 장기하는 별일 없는 듯 별일 하며 살고 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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