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로봇 운전에 대한 인간 반란의 시작
2023. 4. 17. 07:40
-운행 중 멈춤 안전 조치, '로봇' 진입에 '인간' 반발
-미국 내 자율주행 대형트럭, 멈춤 시 경고등 허용 요구 높아
인간 운전과 로봇 운전이 사고 예방 행위에서 맞붙었다. 현행법에선 고장 등으로 차가 정지했을 때 운전자는 주변에 반사 삼각대 또는 조명탄을 배치해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로봇 운전은 사람이 아니어서 삼각대를 설치할 수 없다. 대신 설계자가 경고등을 사용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그리고 정부에 로봇의 경고등 점등을 처벌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인간 운전자 모임인 미국 운수 노조가 삼각대 설치 의무 면제는 로봇과 인간의 차별이라며 강력 반대하고 나섰다.
규제를 면제해 달라고 신청한 곳은 미국의 자율주행 기업 웨이모(WAYMO)와 오로라(AURORA)다. 양 사는 미국 연방 자동차안전청에 고장으로 멈춰 선 자율주행 트럭이 다른 운전자에게 비상 상황임을 알리는 방법으로 별도 경고등을 제안했다. 경고등을 삼각대 또는 조명탄 역할로 인정하자는 뜻이다. 하지만 인간 운전자 모임인 미국 운수노조는 자율주행 차가 다른 차 또는 사람에게 위험을 알리는 방법으로 경고등만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도로 안전을 약화시킨다며 신청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자 웨이모 등은 자율주행의 궁극은 운전자 배제인데 여전히 '관리자'가 차에 탑승하는 것은 인류가 지향하는 기술 발전 목표에 맞지 않다고 맞섰다. 한 마디로 로봇과 인간의 본격적인 일자리 주도권 싸움이 벌어지는 셈이다.
-자율주행 차, 사고 안전 조치 로봇용 필요
-인간, 로봇 안전 조치는 2차 사고 위험 낮출 수 없어
'운전'이라는 기능적 행위에 대한 인간과 로봇의 충돌은 사실 오래전에 시작됐다. 2017년 미국 내 자율주행 기업을 중심으로 비상시 운전자 안전 조치를 면제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인간 운전자 반대로 의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치 지도자에겐 유권자에 해당되는 사람 운전자 요구를 들어주는 게 당연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술 진보는 막을 수 없어 당시 총중량 4.5t 미만은 경고등의 대체 사용을 허락했다. 그리고 5년 후, 이번에는 대형 트럭도 안전조치 면제 대상에 포함시켜 달라는 게 자율주행 기업의 요청이다. 반대로 대형은 로봇에게 절대 시장을 내주지 않겠다는 것이 인간 운전자의 입장이다.
남의 나라 얘기 같지만 자율주행의 규제 관련으로 접근하면 한국도 마찬가지다. 로봇을 운전자로 규정하면 운전하다 사고를 냈을 때 사상자를 구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로교통법 54조 위반이다. 동시에 도로교통법 66조 및 시행규칙 40조는 사고 후 본인 및 타인의 안전을 위한 조치도 취하도록 돼 있다. 야간이라면 500m 지점에 식별 가능한 섬광신호, 전기제등 또는 불꽃신호를 해야 한다. 하지만 로봇은 할 수 없어 도로교통법 40조를 위반하게 된다. 이때 처벌은 로봇 자동차, 즉 자율주행차 소유자에게 부과된다.
자율주행 기업이 운전자 안전 조치 의무에 민감한 이유는 자율주행 자동차의 소유권이 대부분 제조사에 남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필요할 때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동'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데 굳이 고가의 자율주행 차를 개인 또는 법인이 소유할 이유가 없다. 또한 사람 운전이라면 근로시간, 근로여건, 근로자 건강 상태 등에 따라 운행 시간이 제한적이지만 로봇은 시간, 질병, 건강 등에 전혀 제약을 받지 않는다. 마치 과거 마차 시대에서 내연기관으로 전환된 것과 같다. 말(馬)이 아프거나 힘들면 마차 운행에 제약이 생겼지만 내연기관이 등장해 질병과 피로가 없는 동력을 구현했고 덕분에 운행 제약도 크게 줄었다.
그리고 이제는 또 하나 '제약'으로 남아 있는 '운전'이라는 인간 행위를 로봇이 대체하려 하는데 인간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과거 내연기관은 말보다 빠르고 지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업자와 이용자 모두에게 편의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지금의 로봇 운전이 '편의' 측면에서 인간 운전보다 낫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 운전의 대체 가능성에 '경제성' 개념이 들어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동 수단을 소유하지 않고도 이동 제약이 없을 때 이용자는 가급적 저렴한 비용을 투입하려는 게 속성이다. 말에서 내연기관으로 전환될 때도 초기에는 이용 가격보다 편의성이었지만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내연기관의 저렴한 이동이 부각되면서 마차 시대는 빠르게 저물었다. 마찬가지로 로봇 운전의 편의성이 떨어져도 이동 비용이 지금보다 내려간다면 인간이 밀릴 가능성은 매우 높다. 게다가 로봇은 교통사고 제로에 도전한다. 지금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로봇 만의 안전 조치 방법을 요구하지만 인간이 반대할수록 사고 없는 지능으로 발전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여기서 로봇의 거센 도전을 막아내는 것은 인간 만이 보유한 참정권이다. 정치는 미래보다 현실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지가 중요하다. 미국 내에서 벌어진 '인간 vs 로봇' 운전 대립에서 인간이 그나마 로봇을 막아낸(?) 것도 결국은 투표권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현실의 투표권이 인류의 미래 위기를 키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권용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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