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기자의 초강수] 낮다고 깔봤다간 큰일…"지리산 종주 못지 않아"
커다란 배낭을 메고 걷고 싶었다. 이왕이면 먼 곳으로. 산과 바다 사람도 보고 싶었다. "드르륵… 탁…오오?!" 인터넷을 서핑하다 만난 한 문장에 시선이 꽂힌다.
'여수 돌산대교에서 시작해 수많은 산을 지나… 금오산 향일암에서 마무리 짓는 32km 종주 코스!'
오예! 이거다!
돌산종주를 하는 대부분은 가벼운 배낭을 메고 새벽부터 산행을 시작해 당일치기로 다녀온다. 누군가는 지리산 종주보다 힘들다고 했으며, 누군가는 생각보다 훨씬 쉽다고 한다. 어느 쪽이 맞는지 모르겠다. 걸어보면 알겠지~
당일치기 코스를 1박2일 백패킹으로 계획한다. 박 배낭 메고 평지 32km 걷는 것도 쉽지 않은데 왜? 굳이? 믿을 만한 구석이 있었다. 정보에 의하면 돌산종주는 몇 개의 마을을 지난다. 중간중간 보급할 곳이 있고 탈출할 곳도 많다. 이제 탐험대를 꾸리자.
지난번 아쉽게도 함께하지 못했던 한국외대 산악부 혁준군에게 연락한다.
"혁준님 저 기억하시죠? 이번에는 32km 여수 돌산종주 갈 거예요. 산에서 하루 잘 거고 어쩌구… 지리산 종주보다 쉽대요^^ 꼭 같이 가요."
"아 네네… 생각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갑작스러운 연락에 당황한 기색이었다.
다행히 그는 동료 한 명을 데리고 탐험 의사를 밝혔다. 돌산도 섬신령(?)이 초대장을 보내주신 게 분명하다. 한국외대 산악부 고혁준(25), 박지민(25)군과 함께 새벽부터 차를 몰아 여수로 향한다. 그런데! 앞쪽에서 달리던 화물차에서 철판이 떨어져 위험한 상황이 연출된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핸들을 돌린다.
"휴우~ 이거이거… 시작이 좋지 않은데?"
어? 생각보다 쉽다!
여수의 관문 해상케이블카를 지나 돌산공원에 도착. 곧바로 배낭을 정비한다. '우리 또래 대부분은 포장마차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장군도의 야경을 안주 삼아 낭만적인 시간을 보낼 텐데…'라는 혼잣말을 내뱉고 미련 없이 돌산도의 심장부로 향한다.
백초초교를 지나 군부대가 있는 산을 넘어간다. 중간에 이르러 표지판의 안내를 따라 임도 길로 우회한다. 잠시 뒤 군복을 입은 한 남성이 다가와 말을 건다.
"아까 올라오던 길에 지나쳤던 친구들이군요? 저 젊은 시절이 생각나네요."
그는 성공을 빈다며 과자를 선물로 준다. 오랜만에 보는 뻑뻑한 군용건빵이다.
벌거숭이 산길을 지나 왼편으로 진목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바위에 올라서니 동쪽의 남해도가 선명하다. 꾸불꾸불 해안선과 소박한 마을들이 여기가 남해라고 말하는 듯하다. 여유가 있다면 매트 깔고 한숨 잤겠지만, 지금은 러시아워다. 비켜라 비켜!
뜬금없는 공사장과 야외용 테이블을 마주하자 괴짜 기질이 발동한다.
"나름 우리 탐험대인데, 뭔가 발견한 듯한 사진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새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호기심 가득한 사진과 위풍당당한 출정식 사진 한 장 찍죠."
"좋습니다. 저 위로 올라 갈게요!"
고맙게도 두 사람은 모델로 변신해 포즈를 취해 준다. 찰칵, 찰칵, 찰칵.
마상포에서 소미산까지 평범한 아스팔트길을 따라간다. 산행보다는 국토대장정하는 기분이다. 마주치는 마을 사람들과 버스 안 승객들의 의뭉스러운 눈빛이 뒤통수에 꽂힌다. '오늘밤 돌산도에 큰 배낭을 멘 세 청년의 이야기가 퍼지지 않을까?'란 자의식 가득한 걱정도 해본다.
굴의 성지라 불리는 안굴전마을을 지나 소미산 아래 여수예술랜드에 도착한다. 평일임에도 여수에 놀러 온 연인들이 곳곳에 보인다. 사이좋은 연인들의 수상한 눈빛을 뒤로 하고 다시 산길로 들어선다. 어렵진 않지만 지루한 오르막이다. 재미가 없으니 어깨에 멘 배낭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정상부 정자 지나 하산하는 길 뻥 뚫린 구역을 지나 동백나무 군락지로 진입한다. 커다란 돌덩이들 위로 동백꽃이 수북이 쌓여 있다. 눈 만난 강아지처럼 셋 다 상기된 얼굴로 저마다 말한다.
"올해 처음 보는 꽃이에요. 여수 하면 동백꽃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정말 동백꽃이 많네요. 추운 날씨에도 피는 게 신기해요!"
"멋지긴 멋지네요. (웃음)"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그러게요. 그리고 돌산도에는 상록수가 많은 것 같아요. 집 근처 청계산은 잎이 다 벗겨져 반질거리는데 여기는 겨울에도 초록빛이 우세하네요."
지민군이 땅바닥에 떨어진 동백꽃을 집어 손바닥에 올린다. 꽃잎 위로 든 햇살이 손바닥을 따뜻하게 덥힌다.
예상 시간보다 조금 늦게 무슬목해변에 도착하자 배꼽시계가 울린다. 간단히 밥을 먹기로 하고 편의점 의자에 앉아 조촐하게 식사를 한다.(그러기엔 너무 푸짐해 보인다!) 내일 먹을 아침까지 챙기고 무슬목해변에서 사진도 찍으며 늦장을 부려본다.
만만치 않은 돌산도. 작전 상 후퇴!
소미산보다 크다 해서 붙여진 대미산을 오른다. 누가 형제 아니랄까 봐 지루한 오르막이 판박이다. 평탄해질 즈음 수상한 동굴이 보인다. 박쥐 나오는 거 아냐?!
대미산의 얼굴마담 중 하나인 월암동굴이다. 일제가 군사용 관측소로 만든 이곳은 20m만 들어가면 반대편 입구로 나온다. 스피드라이트를 카메라에 장착하고 탐험대에게 또 다른 포즈를 주문한다. 내가 봐도 참 이상하다.
"동면을 방해받은 곰인 척 연기해 주세요. 실제로 반짝거리니 눈이 부실 거예요."
동면 중이던 곰 두 마리를 포착한다. 실제였으면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
대미산 정상부에 있는 약수터와 월암산성을 구경한다. 아쉽게도 약수터의 물은 말랐고 고인 물 위로는 이끼가 떠다닌다. 월암산성에 올라서니 돌산도 전경이 펼쳐진다. 정오보다 내려온 햇빛에 혁준군이 눈살을 찌푸린다.
그때! 지민군이 조심스레 말한다.
"여기 뭔가 기운이 안 좋아요… 빨리 벗어나는 게 어때요?"
지난번 명지산에 이어 또 귀신인가?! 짧은 눈빛을 교환하고 36계 줄행랑을 친다. 미끄러운 낙엽길에 헛발질하며 허겁지겁 내려온다.
산 넘어 산이다. 185봉을 지나 계동고개에 도착하니 마그네슘 부족으로 허벅지가 떨리기 시작한다. 쥐나기 일보 직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본산과 작곡재가 우리 앞을 막아선다.
"저걸 또 넘어야 하나요?!"
이런, 속마음이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모두가 동요하는 눈치. 해는 봉수산 능선에 걸쳐 일몰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계획 변경이 불가피했다. (원래는 봉황산 정상데크에서 잘 예정이었다) 천천히 본산을 오르며 텐트 칠 곳을 물색한다.
잠시 후 꽤 넓고 평탄한 능선이 보인다. 더 이상 걸을 힘이 없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배낭을 땅바닥에 집어던진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 "아이고 어깨야…" 몸 곳곳이 쑤셔온다.
비화식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이야기꽃 피울 틈도 없이 각자의 보금자리로 들어간다. 따뜻한 날씨 덕에 뒤척임 없이 잠에 든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 쿨쿨…
돌산 종주에 레임덕은 없다
찌뿌둥한 몸을 비틀며 잠에서 깬다. 텐트를 정리하고 작전회의를 한다. 작곡재를 지나 수죽산 능선을 타고 봉양고개에서 봉황산에 오르는 것이 클래식 돌산종주지만 우리는 지쳤고 물도 필요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그럼 '죽포리를 관통하는 돌산종주 코스'를 개발하죠!"
혁준군이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제안한다. 마을도 구경하고, 물도 보급하고 종주도 성공한다라….
작곡재를 따라 내려와 마을을 둘러보는데 이른 아침이라 모두 문이 닫혀 있다. 지나가던 동네 주민께서 알려주신 곳으로 가보니 매점 한 곳이 유일하게 문을 열었다.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물통에 물을 퍼담는다. 가게 주인 할아버지가 흥미롭다는 눈빛을 보낸다.
"아침 줄 테니 먹고들 가."
아쉽게도 다들 아침에 먹은 샌드위치가 소화되지 않은 모양. 할아버님의 따뜻한 제안을 정중히 거절한다. 돌산도 갓김치가 그렇게 유명하다던데, 아쉽다.
봉황산 지독한 오르막을 올랐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정신이 아득해질 즈음 선두에 선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정상이다 정상!" "와 경치 끝내주네요. 근데 우리 어제 여기까지 절대 못 왔을 거예요. 왔으면 중간에 포기해 버렸을지도~?"
율림치로 내려서기 전 산불감시초소에서 햇빛에 구워지고 있는 담요를 발견한다. 마치 사냥한 멧돼지 가죽을 말리는 모양새다.
"멧돼지 사냥한 것처럼 사진 한 번 찍어볼까요?"
"그럼 만족스럽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야겠네요."
척하면 척. 합이 좋은 탐험대다.
율림치매점 그늘 밑 아스팔트에 몸을 맡긴다. 신발을 벗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무거운 눈꺼풀에 눈이 감길 때쯤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자동차 소리에 정신이 든다. 다시 출발이다!
국립공원은 국립공원이다. 잘 닦인 등산로가 탐험대의 발을,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뻔뻔한 이름의 '전망 좋은 곳'에 도착하니 북쪽으로는 우리가 걸어온 길이, 남쪽으로는 바다 너머 금오도가 보인다. 발아래로 테트리스처럼 놓인 각진 바위들이 보디빌더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바위들의 포즈쇼가 보이면 돌산종주의 끝이라던데…. 엄마 우리 성공했어!!!
은은한 목탁 소리에 맞춰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한 아주머니께서 주신 유자 막걸리를 한입에 털어 넣는다. 탄산음료 CF를 찍는 것처럼 상쾌한 표정이 절로 지어진다.
"서울서 돌산도까지 왔으면 유자 막걸리는 함 먹어봐야지~ 돈은 안 받을게. 대신 좋은 추억 가지고 돌아가거라~"
돌산도는 끝까지 유자같이 달콤한 선물을 내어준다.
어쩌다 마주친 장비!
클라터뮤젠 알기르 액세서리백Klattermusen Algir Accessory Bag
캐주얼한 느낌의 코드 스트링과 메시포켓이 인상적인 제품. 수납공간이 넉넉해 장거리 산행을 위한 다양한 물건을 보관할 수 있다. 지민군은 메시 포켓에 Labros 배지를 달아 디테일을 더했다. 탈부착할 수 있는 코드 스트링은 사코슈 혹은 일반적인 수납 파우치로 활용 가능. 멋과 실용성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탐나는 아이템!
스타일 탐구
- 돌산종주 탐험대는 뭘 입고 갔을까?
고혁준
상의는 베르그하우스Berghaus, 하의는 Simond, 신발은 블랙야크, 스틱은 레키LEKI, 배낭은 마운틴하드웨어Mountain Hard Wear. 그의 애장품은 등산스틱이다. 손잡이 부분이 길어 다양한 방법으로 스틱을 움켜쥘 수 있고 가볍고 튼튼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 또한 발목이 안 좋은 그에게 날개가 되어주기도 한다.
박지민
상하의 모두 아크테릭스Arc'teryx, 선글라스는 오클리Oakely, 신발은 로바Lowa, 배낭은 툴레Thule, 스틱은 블랙다이아몬드Black Diamond. 무채색 계열의 옷을 좋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제품이 많은 편이다. 그가 착용한 로바 신발은 종주산행에서 힘을 발휘한다. 평지에서는 다소 불편하지만 발목을 안정감 있게 잡아줘 중장거리 산행에 있어서는 최고의 파트너다.
조경훈
상의는 케일CAYL, 하의는 나이키 ACG, 신발은 캠프라인, 배낭은 오스프리Osprey. 글과 사진을 겸하고 있어 Lowepro 탑로더 가방을 앞쪽에 달고 산행한다. 물을 많이 마시는 편이라 자전거 탈 때 쓰던 카멜백 물통을 오른쪽 가슴에 부착하고 다닌다. 백패킹 장비 외에도 드론, 망원렌즈가 있어 100L 배낭을 애용하는 편.
산행길잡이
돌산종주는 보통 돌산대교에서 시작해 임포에서 마무리한다. 능선을 타고 쭉 가는 것이 아니라 작은 산들을 오르내리는 코스라 도보여행과 산행을 섞은 느낌. 아름다운 남쪽바다와 산행을 즐기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중간중간 도로와 마을을 만나 본인의 취향과 상황에 맞게 코스를 커스텀할 수 있다. 탈출과 보급이 용이한 것도 큰 장점이다. 산길이 선명하고 합류하는 도로에도 이정표가 있어 길을 찾는 데 어려움이 없다. 그래도 갈림길이 많아 헷갈릴 수 있으니 정규 코스를 계획한다면 선답자의 GPX 트랙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대체로 산길이 잘 닦여 있으나 떨어진 낙엽이 많아 미끄러짐에 유의해야 한다. 금오산부터는 국립공원이라 등산로가 좋다. 금오산의 환상적인 풍경이 고된 여정의 마침표를 찍어준다.
교통
111번 버스는 오전 5회(4:00, 4:30, 5:00, 5:30, 6:10, 6:50), 109번 버스는 오전 3회(5:45, 6:20, 7:45) 여수엑스포역을 경유해 돌산대교 방향으로 운행한다. 여수엑스포역에서 돌산대교까지 택시비는 약 5,500원이다. 자차를 이용하면 돌산대교 주차장에 편하게 주차할 수 있다. 1일 최대 요금은 5,000원이다.
임포에서 돌산대교로 돌아올 땐 111번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버스는 약 30분 간격으로 하루 25회 운행한다. 택시비는 약 2만 원이다. 택시 문의 061-654-5500, 061-682-1515, 061-644-0044.
맛집 (지역번호 061)
향일암 아래에는 갓김치골목이 있어 하산 후 간단히 식사할 곳이 많다.
버스를 타고 여수 시내로 넘어오면 선택지가 많아진다. 바다김밥(664-9734)에서는 달걀이 돋보이는 김밥을 먹을 수 있다. 여수의 명물인 바게트버거를 먹고 싶다면 여수당(661-0222)을 추천한다.
여수 하면 게장과 장어탕을 빼먹을 수 없다. 여수연안 여객선터미널 근처에는 장어탕을 판매하는 식당이 여럿 있고, 봉산동 게장거리를 걸으며 맘에 드는 곳에서 게장정식을 먹어도 좋다.
선택지가 많아 고르기 어렵다면 로타리식당(642-2156)에서 깔끔한 백반을 즐길 수 있다.
등산지도
특별부록 지도 참조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