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 헨더슨 평전』 “한국 현대사 목격자이자 연구자 헨더슨의 삶과 사상 담았다” [김용출의 한권의책]
”우리의 해방을 기념하는 동시에 우리 민국이 새로 탄생한 것을 겸하는 것입니다. 이 날에 동양의 한 고대국인 대한민국 정부가 회복되어서 40여 년을 두고 바라며 꿈꾸며 투쟁하여 온 결실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1948년 8월15일, 옛 중앙청 광장에서 많은 시민들과 신정부 관계자, 주한 외교사절들이 운집한 가운데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연단 아래에는 군인들의 삼엄한 경비 아래 밴드가 자리했고, 큰 태극기를 배경으로 연단 위에선 한복을 입은 이승만 대통령과 군복을 더글라스 맥아더 총사령관, 선글라스를 쓴 존 하지 장군을 비롯해 새 정부 수반과 내외빈, 내외신 기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여순 사건, 국회프락치사건과 김구 암살, 한국전쟁, 4·19혁명, 5·16쿠데타⋯. 그는 두 차례에 걸쳐 7년 동안 주한미대사관 소속 외교관으로서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현장에서 목격한 증인이었고,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정치에 대한 고전이 된 책 『회오리의 한국 정치』를 저술한 저명한 연구자였으며, ‘한대선’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한국 문화와 사상의 애호가였다.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증인이자 연구자인 미국인 그레고리 헨더슨의 일대기와 사상을 다룬 책 『그레고리 헨더슨 평전』(한울엠플러스)이 최근 김정기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부 명예교수에 의해 출간됐다. 모두 3부로 이뤄진 책은 헨더슨의 삶의 궤적과 한국과의 인연, 그가 본 한국 정치의 현실과 대안, 그의 사상과 실천을 종합적으로 조명한다.
“마리아, 말이야.” 헨더슨이 이상한 소리를 내는 낯선 사람들과 조우한 것은 1944년 통역장교로 참여한 사이판 전투 이후였다. 처음에는 가톨릭 의식을 하는 줄 알았지만, 곧 이들이 일본군이 아닌 조선인 노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1922년 미국 보스턴에서 철도회사 부사장의 아들로 태어나서 하버드대에서 수학한 엘리트 출신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에 적의를 갖고 참전한 그였다. 그는 군 본부에 조선인 노동자를 일본군 포로와 구별해 대응해야 한다고, 부당하게 처우해선 안된다고 탄원서를 제출했다. 한국인과의 첫 조우였다.
1997년 국무부에 들어간 뒤 조지 맥큔에게 한국어와 한국 역사를 배운 그는 이듬해 7월 겨우 26세의 나이로 주한미국대표부 부영사로 부임, 한국과의 인연을 시작했다. 이후 1948-1950년과 1958-1963년 두 차례 주한미대사관 소속 외교관으로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목도하게 된다.
키가 크고 균형 잡힌 체격을 갖고 있던 그는 사교적이어서 각계각층의 한국인들과 섞이길 좋아했다. 대한민국 정부 선포식과 여순 사건을 목도한 그는 이듬해 5월 발생한 국회프락치사건을 목격하고 재판 전 과정을 기록, 미 국무부로 보냈다.
1951년 말 독일로 전보되면서 한국을 떠났고, 1955년부터 국무부 본부의 외교연구소 극동문제 연구책임자로서 한국 문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이 시기, 한국어와 한국 역사를 공부하면서 논문 「정다산: 한국 지성사 연구」를 집필해 발표했다.
1958년 봄 주한미대사관으로 돌아온 헨더슨은 11월 정약용이 오랫동안 유배를 했던 전남 강진을 찾아서 그의 흔적을 답사했다. 곧이어 한국 현대사의 또 다른 변곡점이었던 1960년 4·19혁명과 박정희 그룹이 주도한 5·16쿠데타를 목도했다.
결국 그는 1963년 3월 이른바 ‘이영희 사건’을 빌미로 서울에서 ‘기피 인물’로 찍혀서 추방당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즉, 박정희의 군정 연장 선언 직후인 3월 18일 당시 합동통신사 기자 리영희와 정담을 나눴는데, 리영희가 ‘미 대사관 고위 당국자와의 단독 회견’을 근거로 미국 정부는 박정희와 군정 연장 제안에 대해 어떤 절충이나 흥정을 하지 않았고 군정 연장에 대해 며칠 안에 공식 의사를 밝힐 것이라고 보도하면서 버거 대사의 반발을 불렀다.
그해 말 국무부를 사직한 그는 이듬해부터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에서 한국 정치 및 한반도 문제 전문가의 길을 걷게 된다. 특히 1968년에는 자신의 주저이자 한국 정치에 대한 고전 『회오리의 한국정치』를 저술했다. 이 책은 오랫동안 해외에서 한국 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로 읽혀왔다.
그는 책에서 한국 사회와 정치가 응집력이 결여된 모래성 속성을 보인다며 ‘단극 자장의 회오리 정치’라고 비유했다. 전쟁과 과도한 보수주의, 과잉 이념 대립으로 중도파와 온건파를 비롯한 한국 정치의 중간지대가 상실된 것이야말로 ‘서울의 비극’이라고 지적했다.
“그들은 인내와 타협에 의해 다양성에 어울리는 사회의 미덕을 지향했는데, 이는 한국의 정치적 전통에는 맞지 않는 이질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중산층의 지지를 필요로 했었고, 아직도 1987년 현재 필요로 하지만 한국에는 사실상 계급이 없었고, 그나마 한국의 새로운 중산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층도 공산주의를 두려워해 우익 쪽으로 기울어지고 말았다. 온건파는 신문도 학교도 후원자도 없었고 의지할 수 있는 조직화된 충성심도 없었다. 재정적 지원도 실패했고 지방의 지지자들도 없었다.”
아울러 이미 국회프락치사건의 재판 기록을 남겼던 그는 1972년 서울 방문 및 1981년 북한 방문을 이어가면서 사건 관계자를 만나서 국회프락치 사건의 진실 규명에도 노력했다.
각종 언론 활동을 통해서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에 실질적으로 저항하기도 했다. 그는 박정희의 10월 유신을 비판했고, 박정희 시대 무소불위의 중앙정보부 행태를 비판했다. 박정희 정권도 그에게 ‘한국 문화재 밀반출꾼’이라는 부당한 이미지를 덧씌우려 시도했다.
전두환 신군부의 쿠데타와 정책에도 비판적이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선 주한미군사령관이 특전사의 광주 파견을 승인했다고 고발하기도 했다.
책은 1988년 자기 집 지붕에서 가지치기를 하다가 떨어져 68세의 나이에 돌연한 죽음을 맞기까지 한국인들에게 애정 어리면서도 냉철한 관찰과 조언을 멈추지 않았던 헨더슨이라는 인물로 우리를 이끈다. 본격적인 평전이 아닌, 평전과 논문 모음 중간 정도의 성격이어서 아쉽지만, 한국 현대사의 증언자 헨더슨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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