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까지 빠지는 눈, GPS 없인 조난…일본서 맛본 파우더 보딩의 진수
한국인 최초 ‘알래스카 테일게이트’ 도전 앞두고 日 아사히다케 전지훈련
한국 파우더보드팀 PB크루가 한국인 최초로 알래스카 백컨트리 투어 페스티벌인 테일게이트에 참가한다. 구성원은 권오송, 최진희, 홍주호, 최준규, 박진영. 이번호에서는 테일게이트 출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떠난 아사히다케 전지훈련을 싣는다. 이번 훈련에는 권오송을 제외한 5명과 김상준 포토그래퍼가 동행했다. -편집자
파우더&백컨트리 시장은 지난 몇 년 동안 엄청나게 성장했다. 국제스키연맹은FIS은 프리라이드월드투어Freeride World Tour(FWT)를 인수했다. 또한 전설적인 라이더인 트래비스 라이스Travis rice가 설계한 백컨트리 파우더 대회인 Natural Selection Tour(NST)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전 세계 스노스포츠 시장은 점점 백컨트리, 파우더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폐쇄적인 산림정책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이 매우 한정적이다. 게다가 기후변화로 인해 겨울 적설량도 점점 적어지고 있다. 이건 한국만의 일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스노 스포츠 동호인들은 지속가능한 자연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전설적인 스노보더인 제레미 존스는 동계 스포츠 커뮤니티를 하나로 모아 기후 변화에 대한 통합된 목소리를 내자며 2007년에 Protect Our Winters를 설립하기도 했다.
PB크루 역시 이러한 변화에 동참하며 올바른 파우더&백컨트리 문화를 국내에 전파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제대로 된 백컨트리 문화를 배우려고 알래스카 테일게이트로 떠난다.
알래스카 테일게이트는 알래스카 발데스의 톰슨패스라는 곳에서 열리는 백컨트리와 프리라이딩 축제다. 매년 3월 말부터 열흘간 진행되며 알래스카 산악지대를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알리는 것이 목표다. 전 세계에서 오는 테일게이트 참가자들은 각기 다른 레벨을 가지고 있지만 세계 최고의 산을 타고자 하는 목표는 같다.
자연 그대로에서 보드 타는 것!
먼저 파우더와 백컨트리에 대해 알아보자. 파우더powder는 정설된groomed 슬로프가 아닌 신설을 말한다. 매우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백컨트리Backcountry는 일반적인 리조트가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산간오지를 말한다. 즉 백컨트리 보드라고 하면 스플릿보드splitboard(보드가 반으로 갈라져서 스키처럼 이용할 수 있는 하이크업 장비)와 설피, 스노모빌 등을 사용해 리조트가 아닌 자연에서 보드를 타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파우더 보딩이라는 큰 틀 안에 백컨트리, 사이드 컨트리 등의 개념이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파우더 백컨트리 스노보드는 손대지 않은 눈을 타고, 새로운 지형을 탐험하며 자연과 더 깊게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물론 통제되지 않은 자연 환경은 눈사태 등으로 인한 예상치 못한 사고 위험이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왜 아사히다케인가?
일본은 파우더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많다. 그중 홋카이도의 아사히다케(2,291m)는 엄청난 적설량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파우더 성지다. 대사면, 트리런, 쿨와르, 수직절벽 등 다양한 지형도 경험할 수 있다. 알래스카에 가기 전 파우더 설질에 적응하고 등반 장비도 연습해야 하는데 한국은 눈도 많이 오지 않고 마땅한 장소가 없어 아사히다케로 향했다.
아사히다케의 날씨는 변화무쌍한데 오전에 맑은 날을 유지하다가도 순식간에 구름이 몰려와 눈이 오고 화이트아웃이 발생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화이트 아웃이 오면 한치 앞이 안 보이기 때문에 위험하다. 그럴 때면 나무가 있는 지역에서 꼭 동료들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
우리는 날씨가 맑은 날은 산 정상 쪽으로 스플릿보드와 설피를 이용해 등반 훈련을 했고, 눈이 오고 흐린 날엔 파우더라이딩 훈련을 주로 했다. 아사히다케는 일반적인 리조트가 아닌 만큼 길을 잃으면 조난사고 당할 위험이 높다. 코스 숙지가 필수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GPS 장비와 지도 앱을 통해 지형을 익혔다.
또한 이번 전지훈련은 캠프도 겸했다. 우리 크루 전원은 많은 파우더 성지를 경험했고 AST(Avalanche Skill Tranning Lv.1)도 수료해 마운틴가이드 자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주일은 파우더라이딩 훈련을 하고, 남은 일주일 중 오전엔 가이드 라이딩, 오후엔 훈련을 하는 일정으로 진행했다.
첫날부터 나무에 얼굴 부딪치는 사고
이번 일정은 정말 하늘이 도운 것처럼 지금껏 아사히다케 원정 중 눈이 가장 많이 왔다. 파우더 보더에게 눈이 많이 온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로프웨이 승강장부터 밖이 보이지 않을 만큼 눈이 내리면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첫날부터 그랬다. 로프웨이를 타고 산 정상에 도착하니 엄청난 양의 눈이 우리를 반겼다. 반가움도 잠시 활주를 시작하자마자 폭설과 함께 앞이 보이지 않았고, 허리까지 빠지는 신설로 인해 보드가 가라앉았다. 화이트아웃으로 경사도가 구분되지 않아 눈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비틀며 동료들과 숲으로 향했다. 500m쯤 내려오자 나무들이 듬성듬성 보이기 시작하며 시야도 조금씩 확보할 수 있었다.
시야가 보이는 반가움도 잠시 유선근 프로가 파우더 안에 숨어 있던 나무에 걸려서 날아가 아래 있는 나무에 얼굴을 부딪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많은 눈 덕에 빠른 속도를 내지 못해 부상이 심하지 않아 라이딩을 이어갈 수 있었다. 파우더는 보더들에게 환상적인 경험을 안겨줌과 동시에 예상치 못한 사고도 안겨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새기는 순간이다.
속이 울렁거릴 만큼 화이트아웃이 심하게 왔지만 매 라이딩마다 새 파우더로 교체될 정도로 눈이 많이 와 파우더를 즐기기에 충분한 하루였다.
나만의 파우더 스팟 향해 하이크업!
둘째 날은 날씨요정이 온 듯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었다. 폭설이 온 뒤 맑은 날이 오는 소위 '에픽블루버드데이'였다.
우리는 업힐 장비를 챙겨 산 위로 향했다. 다운힐 시작지점까지 약 3km, 상승고도 120m의 거리를 한 시간 반 걸려 올랐다. 정상까지 가려면 5~6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우리는 최소한 이동하고도 가장 많은 눈을 즐길 수 있는 위한 루트를 사전에 조사하고 출발했다.
백컨트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그냥 별도 장비 없이 걸어서 올라가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만만하게 보고 장비 없이 발을 내밀면 허리까지 빠지는 눈에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부력을 줄 수 있는 스플릿보드나 설피를 신고 올라가야 한다. 또한 땀이 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 등산과 마찬가지로 여러 겹의 옷을 레이어링해 덥기 전에 벗고, 춥기 전에 입어 체온을 유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하이크업(스키나 보드, 장비를 이용해 눈 사면을 올라가는 것)은 고통스럽다. 재미도 없고, 걷는 것에 비해 훨씬 불편하며, 매우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이크업을 하는 이유는 나만의 파우더 스팟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만큼 달콤한 프레시 파우더라는 큰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다.
많은 거리를 걸은 건 아니지만 업힐은 많은 체력을 소모하기 때문에 바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아사히다케 명물이라고 하는 곱창라면(자판기 5번)을 로프웨이 스테이션에서 먹었는데 아사히다케 방문 예정인 사람이라면 꼭 먹어보길 추천한다.
마지막 담금질…이제 알래스카로
본격적인 캠프 시작 전 크루원끼리 탈 수 있는 마지막 날인 셋째 날이 밝았다. 어제 눈이 오지 않았고 맑은 날씨였기에 어제와 같은 루트로 업힐했다. 바람이 강한 날이어서 그런지 바람에 날린 눈으로 인해 미세하게 리셋이 된 상태였다. 같은 루트로 업힐했지만 다운힐을 시작하자마자 트래버스(대각선으로 비스듬히 가로질러 활강하는 것)를 하여 어제 탔던 코스에서 옆 능선으로 향했다.
업힐의 보상은 신선한 눈이라는 진리는 배신하지 않았다. 눈이 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타지 않은 프레시 파우더가 우리를 반겼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바람이 강한 날씨 탓이었을까 구름이 몰려와 삽시간에 흐린 날로 변했고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나무가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이라 화이트아웃 걱정은 없었지만 코스 바깥쪽이었기에 서둘러 진행했다. 팻맵으로 미리 경로를 그려 익혀 놨던 코스였기에 큰 어려움 없이 첫 런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런을 시작하러 출발점에 서자 방금 전 맑았던 날이 무색할 정도로 눈이 내렸고 화이트아웃이 왔다. 하지만 마지막 크루 라이딩인데 이틀 동안 지형도 숙지했고 팻맵과 GPS도 있으니 우리의 감각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신나게 리셋된 파우더를 가르며 라이딩했다. 이틀하고 절반 동안 훈련한 덕일까. 파우더 위에서의 모습이 한층 더 자연스러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사히다케 파우더의 경험이 알래스카에서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통
신치토세공항으로 입국한 다음 차량을 렌트해 아사히다케로 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5시간가량 눈길을 달려야 하기에 위험하고 피로도가 높다. 많은 눈이 내리게 되면 고속도로가 통제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JAL항공을 이용해 하네다공항을 경유해 아사히카와공항으로 가면 운전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아사히다케에 닿는 시간은 전자와 별 차이가 없다. 또한 JAL항공에서 수하물 이벤트를 하면 스노 보드백 23kg 하나를 무료로 보낼 수 있다.
아사히카와에서 아사히다케까지는 셔틀 버스가 많이 운행되며 렌터카 업체도 있다. 우리는 캠프를 같이 진행했기에 45인승 전세버스를 빌려 아사히다케로 이동했다.
숙소
아사히다케는 주변에 편의점, 마트 등 아무 편의 시설이 없기로 유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근처에 숙소를 잡고 도보로 이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로프웨이로 가는 길목에 많은 숙박업체들이 있다.
제일 대표적인 곳이 베어몬트호텔Hotel bearmonte이다. 도보로 5분 미만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고 보드를 타다가도 힘들면 언제든 숙소로 복귀가 가능한 곳이다. 최근에 시설 전체를 리모델링해 객실, 온천, 식당 등의 퀄리티도 훌륭해졌다.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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