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그래도 변호사는 선임해야 한다

구창모 대전지법 부장판사 2023. 4. 17. 07: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구창모 대전지법 부장판사

재판기일에 불출석해 소송을 취하시킨 어떤 변호사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다. 더구나 그 사건은 학교 폭력으로 딸을 잃은 유족이 어렵게 교육청과 학교법인, 가해자 등 20여 명을 상대로 간신히 1심에서 일부 승소판결을 받은 사건인데, 쌍방이 항소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1심판결 선고 이전이라면, 다시 소장을 내고 기왕의 절차를 반복하면 된다. 이때는 앞서 진행된 것들을 재활용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항소심 소취하는 문제가 다르다. 소취하는 소송계속을 소급적으로 소멸시키므로 종국 판결 선고 후에 소를 취하하면 이미 행한 판결이라도 당연히 실효된다. 판결을 하는 데 들인 법원의 노력을 무위로 돌려놓게 된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그 재판에 쏟아부은 사법자산(司法資産)을 낭비하는 것이고, 다른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이에 법은 무분별하거나 악의적인 소취하로 판결이 농락될 염려를 방지하기 위한 제재적 조치로, 본안에 관해 판결이 있은 뒤엔 취하한 소와 같은 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다. 이를 재소금지(再訴禁止)라고 하는데, 앞에서 말한 그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 대해 바로 이러한 제재가 따르게 된다. 유족은 이미 판결을 받았으니 패소한 상대방은 물론이고 일부 승소한 상대방에 대해서도 청구와 판결은 실효(失效)됐고, 다시는 소송을 제기할 수 없게 됐다.

이런 일이 알려지고 나서 여기저기서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제보가 잇따르는 모양이다. 언론매체는 연일 불성실한 변호사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럴 거라면 차라리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는 게 낫다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판사인 필자가 보기에도 그러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의료사고가 발생하였다는 소식이 아무리 지면을 가득 채워도 아픈 이가 병원을 찾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변호사 없이 재판을 받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기본적으로 변호사 아닌 사람이 재판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지식의 부족으로 인해 위태롭다. 충분한 법률 지식 없이 판사와 검사, 다른 변호사를 상대하는 것은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 법률 전문가들이 대수롭지 않게 내뱉는 말들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들이고, 그들에게 제대로 말하려면 그들의 언어인 '법'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가지고 있는 재료 중에서 그 사건에 필요하거나 의미가 있는 것들을 추려내지 못하면, 그리고 그것을 잘 정리하고 제출해서 최종 판단자인 판사를 설득하지 못하면 재판에서 패배한다. 더 중요한 것은 '객관화 실패'라는 문제다. 즉, 당사자 본인은 자신의 일에 대해 절대로 객관적일 수 없다. 자신의 일은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아도 주관적이다. 그러면 재판에서 패배한다. 그래서 법조인도 항상 변호사를 선임해 자신의 일을 맡긴다.

필자도 종종 이런 문의를 받는다. 직업이 판사라 직접 누구를 소개하지는 못하지만 다음과 같은 정도의 조언(?)은 해 준다. '김&장'인지 '태평양'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전관인지, 어제 변호사시험을 통과한 신입인지도 아무 상관이 없다.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성실한 변호사면 된다. 한 번이라도 더 만나고 조금이라도 솔직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변호사여야 한다. 이메일이나 전화가 아니라 직접 낯을 맞대고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메일과 문자로는 용건과 사실을 전할 수 있을지언정 감정과 마음에 기반을 둔 '진실'을 전할 수 없다. 그리고 돈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타인의 시간과 능력을 돈으로 구입할 수밖에 없으니 치를 수 있는 최대한의 비용을 치르고 시쳇말로 가성비 좋은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

며칠 전 어떤 드라마에서 같은 말을 들었다. '더 글로리'의 주인공 중 한 명이 드라마의 최대 악인인 아내를 옥중으로 찾아와 이혼서류에 도장을 받아 가면서 내뱉듯이 한 말이다. 그는 나가면서 면회실 유리 건너편을 향해 "변호인단 잘 꾸려. 살면서 절대 아끼면 안 되는 돈이 변호사 비용이야"라고 말한다. 나도 그의 말에 '대체로' 동의한다. 100%가 아닌 대체로라고 하는 것은 '단(團)'을 꾸릴 필요는 전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단을 꾸려도 실제 일처리는 한 사람이 한다. 중요한 것은 그 한 사람과 얼마나 강한 라뽀(Rapport)를 형성하느냐이다. 별반 부자가 아닌 나로서는 쓸 수 있는 최대한의 비용을 그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Copyright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