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중독 빠지고 말실수 자주 한다면 성인 ADHD 의심을”

정진수 2023. 4. 17. 07: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반건호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양상 다른 소아·성인 ADHD
소아기 ADHD 절반이 성인기 이어져
성인은 부모 보호막 등 사라지며 발견
충동적 행동 많아 중대한 어려움 초래
ADHD 아는 자체로 큰 도움
잦은 실패 누적으로 자아 손상 안 받게
빠르게 ADHD 증상 파악하는 게 중요
약물 치료·인지행동 훈련 받으면 개선

“소아와 성인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증상은 과잉행동, 집중력 부족, 충동성이라는 큰 틀에서 유사합니다. 다만 부모와 학교 등 주변의 통제가 있는 소아청소년기와 달리 성인의 경우 ‘실수’가 초래하는 후유증이 너무 큽니다. 인터넷 게임을 하다가 취업 면접·상견례 등 중요한 행사에 늦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반건호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난 12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성인 ADHD는 인생이 뒤바뀌는 큰 실수와 연결되는 만큼 정확하고 빠른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건호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ADHD는 유전적 요소와 뇌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이 원인인 만큼 스스로 노력해서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며 “예방 관점보다는 진단을 빨리 받고 약물 치료·인지행동 훈련을 통해 실수를 줄여나가면서 긍정적인 습관을 쌓아나간다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희대병원 제공
ADHD는 오랜 기간 소아청소년기 질병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통계가 쌓이면서 20여년 전 소아기 ADHD의 절반 정도가 성인기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반 교수는 “소아기에 없다가 성인기에 생겨난 ADHD는 성인기 발병이라기보다는 뒤늦은 발견으로 보는 것이 맞다”며 “집, 학교만 오가며 부모·교사의 통제를 받다가 갑자기 ‘보호막’이 사라지면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증상이라도 성인과 소아청소년의 양상은 조금 다르다. 아이들은 교실을 돌아다니는 형태로 과잉행동이 나타나지만, 성인은 겉으로는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여도 볼펜을 돌리거나 안절부절못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또 소아청소년기 집중력 부족은 학습에 직결되지만, 성인은 기념일이나 상사의 지시를 잊어 결혼·사회생활에 영향을 준다. 성인의 충동적 행동은 쇼핑 중독, 주식 손실 등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ADHD 환자가 인간관계 형성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을 하기 전에 생각을 깊이 하지 않고 먼저 내뱉다 보니 말실수가 잦은 거죠. ‘너무 살쪘네’, ‘오늘 얼굴이 왜 그래’ 등으로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떠나가죠.”

성인 ADHD는 △양극성장애 등 우울장애 △범불안 장애, 공황장애, 강박 등 불안장애 △알코올 남용, 약물 남용, 도박 장애 등 물질 남용 △적대적 반항 장애와 반사회성 성격 장애 등 충동 조절 문제가 대부분 동반된다. 80% 이상의 환자가 1개 이상, 40% 이상의 환자가 3개 이상의 동반 장애를 가진다.

“뇌에는 ‘보상 회로’가 작동합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면 3년이 지나면 대리가 되고, 4년이 지나면 과장이 되고 이런 것들이 보상이죠. 이런 보상은 ‘쾌락’과 연결되는데 ADHD는 이런 장기적으로 노력해서 얻는 쾌락에 대해 자기 통제가 안 된다고 보면 됩니다. 빠르고, 강하게 보상되는 알코올과 마약, 주식, 도박, 게임, 쇼핑 등에 빠져들게 되죠.”

반 교수는 “우울증이나 알코올 중독 등의 증상으로 병원을 방문했다가 이후에 ADHD를 발견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때 원인이 되는 ADHD를 발견하지 못하고 겉으로 보이는 우울증 치료로만 끝나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반 교수는 △항상 안절부절못하고 △행동을 먼저하고 생각은 나중에 하거나 △집중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면 ADHD를 의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ADHD는 소아에서는 남아가 여아보다 4∼5배 많게 나타난다. 그러나 성인기에는 성비가 거의 비슷하게 나타난다. 기존에는 ‘성차’로 바라봤지만, 최근 ADHD 연구가 진행되면서 이제는 ADHD 진단에 남아의 특성에만 집중해 말실수가 잦은 여아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관점이 우세하다.

반 교수는 “가령 여성의 경우 임신 준비로 생리 전 첫 2주는 에스트로겐이, 다음 2주는 프로게스테론 분비가 늘어난다”며 “에스트로겐은 주의 집중에 유익한 호르몬이고 프로게스테론은 그 반대다. 이렇게 여성에 대한 기준을 좀 더 세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반 교수는 ADHD로 잦은 실수와 실패가 누적돼 ‘부정적인 자아상’이 만들어지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인이 ADHD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됩니다. ADHD가 원인이라는 것을 알면 주변의 부정적인 피드백이 줄어들고, 스스로도 크게 자책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죠. 약물 치료와 인지행동 훈련을 통해 큰 실수를 줄여나가면 대부분 좋은 결과로 이어집니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