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이후 9년,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들

임지영 기자 2023. 4. 1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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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9주기를 앞두고 참사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들의 지난 9년과 현재를 기록한 책과 영화가 연이어 나왔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에 관한 얘기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문득 식판이 기울어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커브를 도는가 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객실에 돌아와 쉬는 동안 누워 있기 힘들 정도로 몸이 기울었다. 불안한 마음에 복도로 나왔다. 걸어서 객실 사이를 다닐 수 없을 정도였지만 한 친구가 필사적으로 돌아다니며 구명조끼를 꺼내 나누어주었다.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가만히 계세요. 움직이면 위험합니다.”

이후 상황은 모두 아는 대로다.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에는 단원고 학생 325명을 포함해 476명이 타고 있었다. ‘생존 학생’ 75명 중 유가영씨가 있었다. 방송에서 안내한 대로 가만히 있는데 어디선가 헬기를 타고 나갈 사람은 나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친한 친구가 머뭇거리는 유씨를 객실에서 복도로 끌어올렸다. 나오기 전, 남겨진 친구들의 얼굴을 돌아봤던 것 같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 한구석이 쿡쿡 아리는 느낌이다. ‘친구들은 나를 어떤 얼굴로 보고 있었을까, 먼저 떠나는 나를 원망했을까.’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를 쓴 세월호 생존 학생 유가영씨. ⓒ다른 출판사 제공

9년이 지났다. 진도체육관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던 ‘생존 학생’ 유가영 양은 스물여섯 살이 되었다. 최근 지난 9년을 회고한 책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를 출간했다. 쓰다 울고 잠시 멈췄다가 다시 쓰길 반복했다. 주변에서는 그가 괜찮을까 염려했다. 가족을 비롯해 책을 받아든 지인들의 반응이 좋았다. “어떻게 힘든지도 모르고 지났는데 되돌아보니 이렇게 힘들었고, 발버둥쳐서 나아질 수 있었구나 알게 됐다. 몇십 년이 지나면 희미해질 수 있는 기억인데 책으로 남겨놓아 끝까지 잊지 않을 것 같다.” 경기도 안산 본가에서 전화를 받은 유가영씨가 말했다.

단원고 교실로 돌아온 뒤, 그는 어디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이상하리만치 잠을 자는 친구도, 공부를 해보려고 지나치게 애쓰는 친구도 있었다. 고3이 되자 세월호 특별법을 놓고 유언비어가 퍼졌다.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이 터무니없는 보상안을 요구한다는 말이 나왔고 대입 특례 이야기도 들렸다. 참사를 대가로 그런 혜택을 생각해본 적 없는데 갑자기 온갖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 아직도 마음에 깊이 박힌 댓글이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세월호 탈걸 ㅋㅋㅋ.’ 여론은 잠잠해졌지만 마음이 죽어가는 걸 느꼈다. 작은 칼로 몸에 상처를 냈다.

“방이 기울어진 것 같아요.” 대학교 때, 상담실에 들어가며 했던 말이다. 방은 문제가 없었다. 나중에야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라는 걸 알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병든 마음이 깊어졌다.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하기도 했다. 언제든 일이 닥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침대에서 바라보는 천장도 위협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단원고 스쿨닥터 김은지 선생의 영향으로 심리학을 전공한 유씨는 씨랜드 참사 등 재난을 겪은 유가족을 접하며 ‘인간은 상처를 받아 주저앉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가 겪은 일을 또 겪지 않도록 무언가 하고 싶어졌다. ‘그날’ 이후 처음 목표가 생겼다.

“나는 더 멋지게 살고 싶을 때도 있다”

2018년 또 다른 생존 학생들과 비영리단체 ‘운디드 힐러’를 만들었다. 갑작스러운 재난이나 재해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돕고 위로한다. 현재는 생존 학생뿐만 아니라 트라우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단체를 대표해 동해시 산불 피해 현장을 찾아 피해 입은 어르신을 도왔다. 잿더미가 된 집에서 가족사진을 꺼내는 할머니들을 보며 세월호에 두고 온 핸드폰을 생각했다. 앞으로 재난 구호와 관련된 NGO에서 일하고 싶다. “재난이 발생하면 여러 가지 지원이 뒤따르는데 발생 직후에는 피해자 케어를 해주지 못한다. 그때가 가장 힘들 때니까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다.”

세월호 생존자라고 하면 대개 ‘힘든 일을 겪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유씨는 말한다. “그보다는 한 인간이 자신에게 닥친 힘든 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는 점, 그걸 봐줬으면 좋겠다.” 그때 그 75명 중에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 친구도 있지만 취업을 하고 평범하게 지내는 친구도 있다. 유씨도 주변의 도움과 우연히 마주친 호의들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요즘도 가끔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본다. 신기하고 위로가 된다. “그날의 슬픔이 내 안에 있지만 굳이 멀리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어쨌든 나는 내 인생을 살아가야 하니까.”

세월호 희생, 생존 학생들의 엄마들로 구성된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의 연극 <장기자랑>이 5일 저녁 첫 공연을 열었다ⓒ시사IN 신선영

그날, 세월호 생존 학생 중 장애진 양도 있었다. 그의 엄마 김순덕씨는 현재 ‘노란리본’ 단원이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생존자 가족으로 구성된 단원 중 유일한 생존자 부모다. 4월5일 개봉한 영화 〈장기자랑〉에서 김씨는 여전히 오늘을 4월16일처럼 사는 친구들이 있다고 말한다. 생존자 엄마로서 희생자 엄마들과 연극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스태프든 단역이든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합류했다. 영화를 찍을 때도 ‘(영화에) 안 나와도 괜찮다, 그림자처럼 여겨달라’고 했다.

〈장기자랑〉은 극단 노란리본 단원들의 이야기다. 이들이 준비하는 연극 제목도 ‘장기자랑’이다. 수학여행을 앞두고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실제 2014년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은 제주도에서 선보일 공연을 열심히 준비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 아이들과 달리 ‘장기자랑’의 등장인물은 무사히 제주도에 도착해 공연을 한다. 노란리본 단원들도 제주도에서, 단원고 후배들 앞에서 공연을 한다. 이 영화에 대해 김현민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는 ‘피해자다움이라는 거대한 편견에의 저항처럼 여겨진다’고 평했다. 영화 속 엄마이자 단원인 7명은 의외로 끈끈하지 않다. 주인공 역할을 맡고 싶어서 신경전을 벌이고, 배역 선정에 대한 서운함 때문에 연습에 불참하기도 한다. ‘무대 맛’을 본 이들의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참사 이후 몇 편의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주로 그날의 증언, 진실, 트라우마를 담았다. 이소현 감독은 그런 방식의 서사가 참사 주기에 맞춰 유가족의 고통을 소모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고민이 이어졌다. “참사 피해자들을 타자화시켜서 관객과 세월호 참사를 더 멀어지게 하는 건 아닐까? 어떻게 하면 가까운 이웃으로서, 조금 더 내밀하게 관객들을 만날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극단 와해의 위기를 지나 다시 공연을 준비하면서 엄마들은 웃다가 운다. 울다가도 웃는다. “그냥 나는 더 멋지게 살고 싶을 때도 있다”라고 말하는 영만 엄마 이미경씨는 그러면서도 생각한다. ‘영만이는 엄마가 씩씩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할까, 우리 엄마는 나를 보내놓고도 뭐 저러냐고 생각할까.’

세월호 극단 노란리본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장기자랑>의 한 장면. ⓒ진진 영화사 제공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예진 엄마 박유신씨는 말했다. “예진이 얘기할 때는 (내가) 이렇게 항상 웃고 있었구나’라는 것을 화면을 보고 알게 됐다. 부탁이 하나 있다면 모든 분들이 우리 아이들을 너무 아프게만 기억하지 마시고, ‘맑았고 깨끗했고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를 시켰다’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세월호 9주기, 참사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들은 이렇게 지내고 있다. 조금씩 바뀌고 조금씩 바꾸면서 말이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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