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두고 갈라진 유럽 보여준 독일의 탈원전 '마이웨이' [뒷북 글로벌]

獨, 62년만에 가동 전면 중단
원전·러 천연가스 공급 없이
에너지 안정 공급 최대 과제
英 등은 연장·신규건설 추진

16일 가동을 중단한 독일 네카르베스트하임2 원전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서울경제]

독일이 2011년 탈원전법을 제정하며 공언했던 탈(脫)원전을 15일(현지 시간) 원전 3곳의 가동 중단을 끝으로 공식 실천했다. 1961년 원전을 가동하기 시작한 지 62년 만이다. 독일의 행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프랑스·영국 등 많은 유럽 국가들이 원전 가동을 확대하는 가운데 나온 결정으로, 유럽 내에서 원전을 바라보는 갈라진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독일 내부에서도 위험하고 지속 가능하지 않은 원전 대신 재생에너지 확대에 박차를 가할 기회라는 반응과 더불어 에너지 수급 불안을 우려하는 반대의견이 부딪히며 큰 논란을 남기고 있다.

독일 정부는 이날 자정을 기해 엠슬란트·네카르베스트하임2·이자르2 등 원전 3곳의 가동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당초 지난해까지 모든 원전은 가동을 멈출 예정이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유럽에 에너지난 우려가 커지면서 기한을 이날까지 연장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독일의 탈원전에 대해 “원전을 대신할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독일의 전력 수요를 충족시킬지는 확실하지 않다”며 “원전과 러시아산 천연가스 없이 에너지 공급을 안정시켜야 하는 전례 없는 과제를 안게 됐다”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탈원전을 공식 실천한 국가는 독일이 유일하다. 독일은 1961년부터 최대 37개의 원전을 가동했으며 전체 전력의 최대 3분의 1가량을 원전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앙겔라 메르켈 당시 총리가 전격적으로 탈원전을 결정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이날 가동을 멈춘 원전 3기가 독일 전체 전력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6%에 그쳤다.

슈테피 렘케 독일 환경장관은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과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원전 사고를 언급하며 “탈원전은 독일을 더욱 안전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전의 방사능 누출 위험성은 두 사고가 역사적으로 극명하게 보여준 바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발생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이곳의 오염수를 방류할지 여부가 일본과 주변국 간 여전한 논쟁거리다.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문제도 고민거리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여론도 만만치 않다. 독일 ARD방송이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독일 시민의 59%가 원전 가동 중단에 반대한다고 답했으며 찬성한다는 의견은 전체의 34%에 그쳤다. 2011년 탈원전법 제정 당시 여당 의원임에도 의회에서 반대 의견을 냈던 아르놀트 바츠 전 의원은 로이터통신에 “정부 수립 이래 여당이 경제적 면에서 진행했던 가장 어리석은 결정이었다”고 주장했다.

일부 환경단체에서는 독일이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충분히 갖출 때까지 에너지 수급을 위해 석탄, 석유 발전소를 가동함으로써 탄소중립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도 편다.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도 비슷한 취지로 독일 탈원전을 비판한 바 있다.

독일의 탈원전 행보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상반된다는 점에서도 논란을 남기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2021년 원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다는 정책 기조를 뒤집고 신규 원자로 건설을 재개한다고 선언했으며 2035년까지 원전 6기를 건설하는 등 원전을 계속 사용한다는 입장이다. 벨기에는 2003년 탈원전을 선언하고 2025년까지 모든 원전 가동을 단계적으로 중단할 계획이었지만 지난해 이를 번복하며 원전을 10년 더 가동하기로 했다. 독일에 앞서 2010년 탈원전을 계획했던 스웨덴은 신규 원전 건설을 검토 중이다. 영국도 원전 9기를 가동 중이고 2050년까지 최대 8기를 더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력 생산에서 원전의 비중을 15%에서 25%로 상향하기로 했다.

박준호 기자 violato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