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결권과 벤처 투자 활성화[전성인의 난세직필](12)
벤처창업주에게 복수의결권을 허용하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하 ‘벤처기업법’) 개정안의 통과와 저지를 둘러싸고 4월 20일 개최 예정으로 알려진 국회 법사위가 주목받고 있다. 1주 1의결권이라는 상법 원칙의 근간을 훼손하는 이 법은 산자위 심의 때부터 논란과 비판의 대상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엔테베 작전’하듯이 산자위를 통과한 후에도 상법의 취지를 근본적으로 훼손한다는 점 때문에 법사위에서 계류에 계류를 거듭해 오늘에 이르렀다.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은 통과를 위해 의원실을 찾고,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저지를 위해 의원실을 찾았다. 당연히 벤처협회 관계자도 의원실을 찾았다. 재벌 이익을 대변하는 전경련은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뒤에서 통과를 재촉하고 있다.
이 법의 통과와 저지를 둘러싼 대립은 첨예하지만, 논리적 대립은 의외로 빈약하다. 통과 쪽의 논리가 사실상 별것이 없기 때문이다. 왜 1주 1의결권이 주식회사 의사결정의 기본이 돼야 하는가에 대한 논리는 정립돼 있다. 이에 비해 왜 상법을 비틀어 가면서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주에게 1주당 최대 10배의 의결권을 허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리는 없다.
중기부의 공식적 설명은 딱 2가지다. 하나는 벤처기업의 투자 활성화를 위해서, 다른 하나는 다른 나라에도 복수의결권 제도가 있어서. 이게 전부다.
이중 두 번째 논거는 이번 벤처기업법 개정안 처리의 논거가 될 수 없다. 물론 ‘다른 나라도 하니까 우리도 하자’는 주장을 할 수는 있으나 그것은 상법 개정 때 해야 하는 주장이다. 실제로 재벌은 2011년 상법 개정 때 그런 주장을 열심히 했다. 그런 재계의 주장은 그러나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2012년 4월부터 시행된 개정 상법은 복수의결권은 허용하지 않고 그 대신 ‘무의결권 주식’을 허용했다. 그게 주식회사의 운영에 관한 우리 사회의 합의였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중기부의 주장은 재벌들이 써먹었지만 이미 실패한 주장을 뒤늦게 이어받아 또다시 나팔을 불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럼 중기부의 남은 논리는 ‘벤처 투자 활성화’뿐이다. 물론 이 주장도 당연히 말이 안 된다. 중기부의 주장이 말이 되려면 이 개정안에 따라 비상장 벤처기업에 최대 10배의 복수의결권을 허용해 주면 그동안 벤처기업을 외면하던 투자자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고, 번득이는 혁신 아이디어는 있으나 투자자금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대규모로 활성화돼야 한다. 애석하게도 한여름 밤의 꿈일 뿐이다. 왜 그런가.
이 법은 벤처기업에 투자자금을 공급하는 투자자의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창업주가 1000만원을 벤처 투자자가 9000만원을 투자한 벤처기업에 대해 창업주에게만 10배의 복수의결권을 허용한 경우를 생각해보자. 창업주는 총 설립자금 1억원 중 1000만원만 냈기 때문에 투자지분율은 10%에 불과하다. 회사 이익에 대한 재무적 청구권 역시 10%다. 이에 비해 벤처 투자자는 이 사례에서 전체 투자자금의 90%를 제공했다.
그렇다면 복수의결권을 감안한 의결권의 분포는 어떻게 될까? 편의상 1주의 가격을 1000만원이라고 하면 투자자의 의결권은 9주가 되지만 창업주의 의결권은 1주가 아니라 그 10배인 10주로 뻥튀기된다. 결국 창업주의 의결권 지분율은 총 19주의 의결권 중 10주의 비율이므로 대략 52.6%가 된다. 가뿐하게 과반수의 의결권을 확보하는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주식회사의 의사결정이 기본적으로 다수결에 의한다는 점을 상기하면 창업주는 위 사례에서 해당 벤처기업에 대한 100%의 통제권을 누릴 수 있다. 재무적 지분율과 실질적인 통제권의 강도를 대비해보면 창업주는 10%의 돈만 내고 100%의 통제권을 얻게 된다. 창업주의 입장에서 보면 ‘삼팔광땡’이 곱빼기로 찾아왔다고 좋아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괄목할 정도로 활성화될까? 아니다. 벤처 투자자의 입장에서 보면 쪽박도 이런 쪽박이 없기 때문이다. 위의 사례에서 벤처 투자자는 총 설립자금의 대부분인 90%를 지원했지만, 회사에 대한 통제권은 완전히 상실했다. 마치 채권자와 같아진 것이다. 아니 채권자보다 못할 수도 있다. 채권자는 회사의 재무 상황과 무관하게 따박따박 최우선적으로 이자를 받아가지만, 보통주에 투자한 벤처 투자자는 채권자와 우선주 주주들이 돈을 다 받아간 뒤에 가장 꼴찌로 얼마가 될지도 모르는 남는 돈을 받아가기 때문이다.
그래도 창업주를 믿고 투자하는 벤처 투자자가 있다면 그 용기를 칭찬해 주어야 할까? 거의 아니다. 왜냐하면 창업주의 도덕적 해이 가능성은 종전보다 크게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악덕 창업주가 회삿돈 2000만원을 빼돌려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었다고 가정해보자. 회사는 2000만원 손실을 입고, 투자지분율이 10%인 악덕 창업주는 200만원의 지분적 손실을 입는다. 그러나 이런 행위로 그가 얻은 직접적 이익은 자기 주머니에 있는 2000만원이다. 결국 전체적으로 악덕 창업주는 이런 행위를 통해 1800만원의 순이익을 얻게 된다. 이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벤처 투자자가 입은 같은 금액의 손실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모든 경우가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럴 가능성이 증가하고, 그 증가 가능성을 익히 알면서도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투자자는 많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더구나 투자 대상 기업이 일반 기업이 아니라 지금 한창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가고 있어서 적자 살림이 일상적이고, 부도와 파산을 밥 먹듯이 하는 벤처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투자 심리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 벤처 투자자가 고객의 돈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라면 이런 상황에서 투자하는 행위는 민사적으로 충실의무 위반에 형사적으로 업무상 배임의 혐의까지 걱정해야 한다.
필자는 우리나라 벤처 업계가 정상적으로 성장하기를 염원한다. 하지만 비상장 벤처기업의 창업주에게 복수의결권을 부여하는 이번 벤처특별법 개정안은 벤처 투자를 활성화하기보다는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 물론 아무도 안 나설 경우 정부가 눈을 질끈 감고 국민의 세금을 마구 퍼부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장차 국민의 손해로 다가온다면 그 뒷감당을 어찌할 것인가. 이 일을 자초한 민주당이 이제 매듭을 제대로 지을 차례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선택을 지켜본다. 그 단초가 20일로 예정된 법사위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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