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CPTPP 가입 추진 ‘걱정되네’
일본, 후쿠시마산 수입 요구 가능성
1년 전 정부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농어민들이 거세게 반발했으나, 정부는 “가입 신청을 하지 않으면 급변하는 글로벌 정세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회마저 잃을 수 있다”고 했다. CPTPP 가입을 위해선 일본의 동의가 필요하다. 일본은 후쿠시마산 식품 수입 허용을 가입 조건으로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이유로 과거사 문제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문제 등 현안 대응에 적극적이지 않은 윤석열 정부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까.
‘가입 추진’ 선언 후 1년
일본 주도로 2018년 12월 말 출범한 CPTPP는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11개국이 결성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다. 2020년 기준 글로벌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10조7000억달러(전 세계의 12.7%), 교역 규모는 5조2000억달러(14.9%), 인구는 5억1000만명(6.6%)이다. 2021년 2월 영국이 신규 가입을 신청한 이후 중국(9월), 대만(9월), 에콰도르(12월) 등도 가입을 신청했다. 최종 가입은 회원국 모두가 동의해야 한다.
우리 정부의 CPTPP 가입 방침은 문재인 정부에서 본격화됐다. 다만 국내 농수산업계가 피해를 볼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속도가 붙진 않았다. 부처별로 입장도 달랐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등은 CPTPP 가입이 필요하다는 반면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는 사실상 반대 입장을 유지했다.
대선 직후인 지난해 4월 15일 정부는 가입을 공식 의결했다. 정부는 “수출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역내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시장 개방에 따른 교역 확대와 생산·투자·고용 증가 등 여러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된다고 했다. 한국의 수출과 수입에서 전체 CPTPP 회원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3.2%, 24.8%로 큰 편이다.
CPTPP 가입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다. 역내 통상질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되 우려되는 농축수산업계 피해에 대해서는 종합적이고 충분한 대책을 마련해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현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5월 19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CPTPP 가입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CPTPP에 가입하게 되면 우리가 새로운 무역 질서에 들어가면서 경제 전체에 소위 말하는 긍정적 효과가 상당히 큰 것이 사실이다. 다만 피해가 예상되는 부분이나 피해가 실제 발생하는 부분에 대해서 충분한 보상을 하면서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의 가입 추진 의지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간 CPTPP 가입 논의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가입 신청을 하려면 이해 관계자를 대상으로 공청회를 열고 국회 상임위 보고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가입 신청을 하더라도 가입 협상 개시 여부에 대한 회원국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본격적인 협상을 진행하는데 또 시간이 걸린다.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국내 국회 비준 동의 과정을 거쳐야 최종적으로 절차가 완료돼 발효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대략 가입 신청 후 가입까지 1∼2년이 소요될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해 가입 의결 이후 절차에 따라 국회 소관 상임위(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보고를 준비했는데, 안건 상정 등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보고를 하지 못한 상태”라며 “(2022년 1월 중국 주도로 출범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2022년 5월 미국 주도로 출범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등 거대 경제 협의체들이 등장하면서 국제 통상환경이 급변하고 있지만 현 정부의 CPTPP 가입 의지는 여전히 확고하다”고 말했다.
여전한 경제효과 논란과 반대 여론
CPTPP 회원국의 평균 관세 철폐율은 96.3%에 달한다. 사실상 완전 개방에 가깝다. 시장 개방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그에 따른 피해가 불가피하다. 지난해 3월 25일 산업부의 CPTPP 가입 관련 공청회에서 제시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자료집을 보면, CPTPP 가입 시 시장 개방에 따른 교역 확대와 생산·투자·고용 증가로 실질 GDP가 0.33~0.35%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 후생 규모는 30억달러(약 3조7000억원) 증가했다.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15년간 연평균 6억~9억달러(약 7321억~1조981억원) 규모의 순수출이 증가하고. 1조1800억~1조8200억원 규모의 생산 증대 효과가 나타났다.
반대로 국내 농수산업계의 피해는 크다. 농업 분야에서 15년간 연평균 853억~4400억원의 생산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추정됐다. 예컨대 축산물의 경우 호주(쇠고기), 멕시코(쇠고기와 돼지고기), 캐나다(돼지고기와 닭고기) 등에서의 수입 증가로 국내 생산이 감소하고, 과수는 호주·칠레·멕시코·페루 등에서의 오렌지·포도 수입이 크게 늘어 국내 감귤·포도 시장 피해가 불가피해진다.
수산업은 베트남과 일본 등으로부터 어류와 갑각류 수입이 증가하면서 15년간 연평균 69억~724억원의 생산 감소가 우려된다. 김과 전복, 바지락 등 우리 대일 수출 품목이 중국산으로 대체되고, 과잉어획과 불법어업을 방지하기 위한 CPTPP 규범에 따라 어업인에게 지급되는 수산보조금 지급이 금지될 수 있다. 또 일본산 수산물 우회 수입이 늘면 먹거리 안전 우려가 커지면서 국내 수산물 소비가 위축될 수도 있다.
산업부는 당시 공청회에서 “추후 CPTPP 가입 신청을 하고 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농수산업의 민감성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며 향후 협상이 완료되면 협상 결과를 토대로 보다 구체적인 보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다만 주요 농산물 수출국인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에 대해서는 기존의 양자 FTA를 통해 약 85% 수준의 품목을 이미 개방한 상황이고, 과거 미국이나 유럽연합(EU)과의 FTA에서 96% 이상의 매우 높은 수준으로 농산물을 개방한 경험이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피해액이 축소됐다는 지적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해양수산특별위원장인 윤재갑 의원실은 최근 농업 분야는 중국이 CPTPP에 가입하고 식품동식물검역규제협정(SPS) 범위가 국가·지역에서 개별농장으로 축소돼 그간 미개방된 품목이 수입된다면 피해 수준이 2조원을 넘어서고, 수산업 분야는 수산보조금 금지와 중국의 가입변수를 고려하면 피해액이 1조원을 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후쿠시마산 수입 규제와 연계 가능성
일본은 CPTPP 가입을 원하는 한국에 후쿠시마산 식품 수입 허용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우리 정부가 CPTPP 가입 의결을 할 당시에도 일본이 한국 정부와 협상 과정에서 과거사 문제를 포함해 후쿠시마산 식품 수입 규제 등 자신들에게 불리한 현안들의 해결을 가입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한국은 현재 후쿠시마 등 8개 현의 모든 수산물과 후쿠시마 등 15개 현의 쌀과 차, 버섯류 등 27개 품목의 농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영국과 대만 사례를 보면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난해 5월 5일(현지시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런던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후쿠시마산 음식을 함께 먹었다. 존슨 총리는 이 자리에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유지해온 후쿠시마산 식품 수입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약속했다. 영국은 후쿠시마산 버섯류 등 주변 9개 현에서 나오는 23개 품목의 식품류에 대해 방사성 물질 검사증명서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수입을 규제해왔다. 정상회담 한 달 후 독일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기시다 총리를 또다시 만난 존슨 총리는 일본 후쿠시마산 식품 수입 규제 철폐를 공식 선언했다. 이후 영국의 CPTPP 가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전체 11개 회원국은 올해 3월 말 영국의 가입을 인정했다. 영국은 일본이 요구하는 후쿠시마산 식품 수입 규제 철폐 요구를 들어주고, 일본은 영국의 CPTPP 가입을 주도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만도 제1야당인 국민당 등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2월 후쿠시마 일대 수입 식품의 전량 통관 검사 등을 전제로 식품 수입을 허용했다. 대만은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후쿠시마 등 5개 현의 식품 수입을 전면 금지해왔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은 대만의 수입 규제 완화 조치가 나온 직후 “대만 사례가 한국과 중국의 (후쿠시마산) 수입 재개를 협의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은 일본 현지에서 이러한 보도가 나올 때마다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산 수입규제 문제를) CPTPP 가입과 연계해 생각하고 있지 않다”(문성혁 당시 해수부 장관)고 선을 그었지만, 일본은 협정 가입을 수입 재개의 지렛대로 삼을 공산이 크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한국의 CPTPP 가입에 부정적인 일본은 영국과 대만 사례처럼 한국에 비슷하거나 더 많은 요구를 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집착하는 윤석열 정부가 강제징용 등과 같은 과거사 문제와 오염수 해양 방류 문제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일본이 원하는 방식대로 끌려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분위기라면 후쿠시마산 식품 수입 규제 문제도 일본 요구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다만 국내 반대 여론 때문에 윤석열 정부가 (후쿠시마산 식품 수입 문제와 연계한) CPTPP 가입 추진에 적극 나서기 어려워 보이지만, 내년 총선 결과 여당이 다수 의석을 확보한다면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속도를 내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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