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강하다더니"…역세권 중소형아파트의 배신?[박원갑의 집과 삶]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 2023. 4. 17.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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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속소비' 중소형 아파트값 대형 아파트값보다 더 급락
2030세대 영끌·중대형 공급감소 등 영향
견본주택 현장 /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 = "역세권 중소형은 불황에도 강할 줄 알았죠."

중소형 아파트는 주거의 실속소비를 상징한다. 반대로 대형 아파트는 알뜰 소비보다는 과소비에 더 가깝다. 대형 아파트가 중소형보다 더 비싸니 구매층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대체로 불황이 오면 대형 아파트는 수요가 더 위축돼 거래량이 줄어들고 가격도 더 내려간다. 슈퍼리치가 사는 ‘그들만의 리그’ 초대형 아파트는 제외하고 얘기하자. 소형 아파트는 수요가 많은 편이다. 국민주택 규모(전용면적 84㎡) 이하 아파트는 시장에서 찾는 사람이 많다. 일반적으로 첫 집을 살 때 역세권 중소형 아파트를 권한다. 수요층이 탄탄하니 부침이 덜해 비교적 안전하다는 이유에서다.

◇재테크 규칙 깨진 아파트값 하락기…"중소형 더 심한 급락"

하지만 이번 하락기에는 이런 부동산 재테크 규칙(rule)이 깨졌다. 대형보다 중소형 아파트에서 더 심한 급락이 온 것이다. 한동안 부동산시장에서 유행했던 대형 아파트 애물 단지론이 통하지 않게 된 셈이다. 즉 고령사회에 1~2인 가구가 늘면 대형 아파트의 수요가 크게 줄 것이라는 논리가 무색해진 것이다.

실제로 KB국민은행 부동산 시세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전국 중형(전용면적 85㎡ 초과~102㎡ 이하)과 중소형(60㎡ 초과~85㎡ 이하) 아파트값은 각각 3.4%, 3.6% 떨어졌다. 같은 기간 소형(60㎡ 이하)의 하락 폭도 2.3%에 달했다. 하지만 대형(135㎡ 초과)은 같은 기간 0.1% 하락에 그쳤다. 이 통계는 하락기에 대형이 얼마나 선전했는지를 보여준다.

중소형 아파트 급락 현상은 왜 일어났을까? 주택시장의 주역으로 급부상한 2030세대인 MZ세대의 '영끌' '빚투'나 갭투자의 표적이 된 것도 한 요인인 것 같다. 상대적으로 안전자산 성격이 강해도 자본이득을 위한 집단적인 우상향 기우제의 대상이 되면 '변동성 쇼크'가 심하게 나타난다. 오를 때는 많이 오를 수 있겠지만 내릴 때는 그만큼 많이 내린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도 투기적 수요가 몰려 가격거품이 발생하면 매수자에겐 또 다른 위험자산이 된다.

MZ세대는 사회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아놓은 자금이 부족했다. 당연히 대형 아파트는 사고 싶어도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적은 돈으로 투자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은 역세권 중소형 아파트였다. 재건축 아파트 역시 전세가 비율이 낮고 살기도 불편해 투자수요가 많이 몰리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중소형 가운데 신축 아파트에 쏠림현상이 심하게 나타난 것이다.

서울 용산구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2023.4.13/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2030세대 영끌·빚투·중대형 공급감소 등 원인

중대형 아파트의 선전은 공급 감소도 큰 요인이다. 부동산정보회사 부동산 R114에 따르면 2022년 전국에서 입주한 전용면적 85㎡ 초과 아파트는 전체의 5.4%에 그쳤다. 이 회사가 조사를 시작한 1990년 이래 최저 수준이다. 최고치를 찍었던 2010년(33.7%)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다.​ 아파트를 덜 지으니 대외충격에 덜 휘둘리는 것이다.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많아지면서 좀 넓은 집에 대한 수요도 대형 아파트의 하락 폭을 줄이는 데 한몫했다.

10년 전 대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집값이 급락하면서 찾아왔던 ‘하우스푸어’ 때와는 딴판이다. 당시 값싸고 작은 아파트를 사서 평수를 넓히면서 재산을 불리는 이른바 ‘아파트 사다리’가 무너졌다. 많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 이상 연령층에게 대형 아파트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아파트 평수 넓히기는 이렇다 할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재테크 방법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불안한 노후에 언덕을 만드는 것으로, 노후 준비의 완성을 해나가는 과정이었다. 대형 아파트 한 채만 있으면 노후가 보장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굳건한 믿음들이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하루아침에 산산조각이 났다.

이번에는 베이비붐 세대의 자식 세대인 MZ세대가 영끌푸어로 고통을 겪고 있다. 최근의 ‘중소형 급락과 대형 선전’에서 보듯이 우리가 알고 있는 부동산 상식은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니다. 통념은 언제든지 시장 상황에 따라 뒤집힐 수 있는 것이다.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이 이래서 무섭다. 앞으로도 중대형 아파트가 계속 선전한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한 가지 진리가 있다면, 바로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산고곡심(山高谷深)이다. 산고곡심의 이치는 세상사는 물론 부동산시장에서도 유효한 법칙이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h991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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