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용 영진위원장 “안일했던 영진위·영화계, 이젠 정말 큰 위기···정부 지원으로 투자 되살려야”[인터뷰]
OTT 파도에 적절한 대응 실패
작품 개봉도 막히며 ‘동맥경화’
“재정 확충·영화 개념 확장 최선”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는 영화와 극장의 현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영화의 질을 높이고 영화 산업의 진흥을 위해 설립된 영진위는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았지만 직원들 사기는 어느 때보다 저하돼 있다. 재원은 바닥났고 신뢰도 잃었다. 영화관 입장료의 3% 부과금으로 마련되는 영화발전기금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극장 관객이 줄면서 크게 감소했다. 지난해 정부는 기금 적자를 막기 위해 국고 800억원을 출연했다. 2007년 기금이 조성되고 처음 있는 일이다. 영화발전기금은 영화 제작을 지원하고 영화 인력을 양성하는 등 영화 산업을 육성하는 데 투입된다. 영진위는 한국 영화계의 위기가 심화하는 동안 제 역할을 못했다는 지탄도 받고 있다.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영진위 영화교육지원센터에서 만난 박기용 위원장은 “혜안이 부족했다. 뼈 아프게 반성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오기 전인) 2019년이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좋았던 해입니다. 2000년대 들어 영화계는 20년 동안 계속 좋았습니다. 성장만 했죠. 취해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계속 잘될 거라고 낙관한 겁니다. 코로나19는 일시적이라고, 방역 조치가 완화되면 영화의 위기도 끝나고 극장은 완전히 회복할 거라고 기대들을 했습니다. 엔데믹이 왔는데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정말 위기고, 큰일 났습니다.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박 위원장은 지금 한국 영화의 상황을 ‘총체적 위기’이자 ‘동맥경화’라고 표현했다. 팬데믹 기간 관객들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넘어갔고, 극장은 입장료를 올렸다. 영화 관람료가 상승하자 극장 문턱은 더 높아졌다. 관객을 기다리며 개봉을 미루던 영화들은 작아진 관객 규모에 여전히 개봉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팬데믹 기간에 제작된 100편의 영화 중 90편이 개봉을 못했다. 저예산 영화들이 아니고 수십억, 수백억원의 제작비가 투여된 영화들”이라며 “투자금 회수가 안 되니 투자사들이 새로운 영화에 투자할 자금이 없는 상태다. 신규 투자가 안 이뤄지니 새로운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극장이 막히니 그 뒤가 연쇄적으로 막혀 순환이 되지 않는 총체적 위기, ‘동맥경화’가 왔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영진위와 영화계의 실책을 시인했다. 그는 “관객들이 극장에 돌아오지 않는 데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영화계가 안일했던 점이 분명히 있다”며 “OTT도 팬데믹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주목하지 않았다. 영진위부터 미리 주목하고 연구해 대처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때도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지’ ‘좋아질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했지만 논의가 다시 극장으로 회귀했다”고 했다.
박 위원장은 이대로는 상황이 더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비관했다. 그는 “팬데믹 기간 만들어진 영화들은 안정을 추구한 영화들이다.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창작자들이 주눅 들었다. 새로운 도전을 하기보다는 손해를 보지 않을 영화를 만들었다”며 “이 영화들이 나와도 관객 입장에서는 새롭지 않고, 비슷한 영화들이 나온다고 느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주변의 경험 많은 제작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 영화 중에 ‘펀치’ 있는 영화가 없다고 한다. 다들 몸을 사린다”며 “중저예산 영화에서 에지 있는 시도들을 하면 블록버스터가 자극을 받아야 하는데 새로운 영화, 중저예산 영화는 만들면 무조건 망한다는 분위기다. 이대로는 물량공세 하는 할리우드 영화에 관객이 계속 몰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 영화의 개봉을 촉진하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박 위원장이 내놓은 해법이다. 그는 “개봉 촉진 지원금 같은 정부 조치가 필요하다. 미루기만 하면 더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며 “영화들이 어느 정도 수익을 보전할 수 있도록 지원해서 개봉을 하게끔 막힌 곳을 풀어줘야 나아질 것이다. 순환을 시키는 게 급선무”이라고 했다. 그는 “영화발전기금도 올해 고갈될 예정이다. 영진위는 예산을 확충해서 재정을 안정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영화의 개념을 재정립해 OTT 등 플랫폼의 영상물들도 영화로 포섭하기 위해 논의를 확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화계에서 ‘영진위 무용론’도 나오는 등 여러 비난을 듣고 있습니다. 신뢰도 많이 잃었습니다. 영화 업계를 선도해야 하는데 지금은 선도하기는커녕 끌려가고 있습니다. 혜안이 없었다는 자성을 하고 있습니다. 미래를 이야기하기 위해 앞장서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영진위는 다음달 한국 영화 산업 위기 극복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해 영화계 목소리를 모을 예정이다.
박 위원장은 <모텔 선인장> <낙타(들)> 등의 영화를 만들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아시아영화아카데미 등에서 영화인을 양성하는 데 힘썼다.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영화학과 주임교수를 지내다 지난해 1월 취임했다. 임기는 내년 1월까지다.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304170600001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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