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 곳곳마다 공사비 ‘잡음’… 조합원 불안만 커진다
관처 미뤄지고 본계약 다시 요구 등 시공사 ‘버티기’
“의도적 회피는 계약사항 위반인지 확인해야”
최근 전국 곳곳에서 시공사와 조합 간 공사비 갈등으로 인해 사업 진행이 지연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아직 착공하지 않은 지역에서도 공사비 문제로 관리처분인가가 미뤄지거나 사업비 대여가 중지되는 등 사업 진행이 원활하게 되지 않으면서 조합원들의 불안만 커지고 있다. 조합은 울며 겨자먹기로 공사비 증액 협상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지만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1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 ‘방배5구역’은 한국부동산원 공사비 검증에 들어가면서 이번달로 계획됐던 관리처분계획 변경 인가가 예상보다 늦어지게 됐다. 빠르면 연내 일반분양을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공사비 검증 걸차에 최소한 4~5개월 이상이 걸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관리처분계획 변경 인가는 이르면 9월쯤 진행될 전망이다.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사업 진행이 더뎌지는 것에 대한 불만이 크다. 방배5구역의 한 조합원은 “공사비를 조금이라도 낮춰보려는 시도겠지만 시공사인 현대건설에서 그 가격에 못하겠다고 하면 둔촌처럼 시간만 지연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하루하루가 돈인데 빨리 관리처분인가를 받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대우건설과 공사비 증액 내용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의왕시 오전다구역 역시 시공사를 향한 조합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대우건설이 공사비 증가를 이유로 조합원들의 이주 직전 공사도급본계약서에 날인을 거부하면서 사업비 대여를 중지했기 때문이다. 오전다구역의 한 조합원은 “사업을 지연시켜서 시공사의 리스크를 관리하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울산에서 대우가 시공권을 포기한 것을 보면 최근 부동산 상황이 좋지 않으니 버티기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시공사의 요구대로 공사비도 증액했지만 계속 착공이 미뤄지는 현장도 있다. 서울 마포구 ‘공덕1구역’은 6개월이 넘는 공사비 인상 협상 끝에 지난 2월 3.3㎡당 공사비를 613만원으로 증액하기로 합의했지만 아직까지 착공 일정이 정해지지 않고 있다. 조합은 ‘GS건설·현대건설 컨소시엄인 시공단이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시공사들도 할 말은 있다. 최근 금리 인상과 원자재값 인상 등으로 인해 사업비와 공사비 등 부담이 커지면서 공사비를 확정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는 설명이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서 건설사들의 자금 사정도 악화돼 착공 방침이 엄격해진 상황”이라며 “공사비도 계약 금액을 확정하지 못하고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뒤로 미루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시공사들의 ‘버티기’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조합원들의 불안이 점점 더 커진다는 것이다. 사업이 지연될수록 금융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커지고, 공사비와 분양가는 더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부담은 조합원들 몫이다. 건설사들이 버티다 보면 결국 어쩔 수 없이 공사비를 증액해주지 않고 못버티는 사례들이 늘어나면서 조합원들의 불안감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상황은 이렇지만 딱히 해법이 없다는 점도 답답할 노릇이다. 조합 입장에서는 이제 와 새로운 시공사를 구하기도 어렵고, 최근 정비사업에 시공사들이 나서지 않는 분위기가 커지면서 ‘갑’이 된 기존 시공사만 바라보고 있는 처지가 됐다.
박합수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이는 사인간 거래기 때문에 정부에서 어떻게 중재할 수도 없고, 금융비용 늘어나지 않게 서로 최대한 빨리 합의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다만 계약서대로 이행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시공사에 따져 물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공사비 인상 이슈로 인한 피해는 조합원 잘못보다는 건설사들의 갑질이 크게 작용한다”며 “본계약이나 관리처분인가, 공사비 재협상 등 계약서에 나와있는 사항을 의도적으로 늦추고 회피하려 한다면 그 건설사는 시장의 신용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계약 사항을 꼼꼼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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