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두뇌가 뛴다]⑪ “우주산업은 시행착오 겪으며 크는 산업...실패해도 기회 줘야”
윤 대통령이 찾은 ‘과학기술 영리더 6인’에 선정
쎄트렉아이·플래닛 랩스에서 활동한 ‘위성 자세 제어’ 전문가
“우주공학은 ‘중공업’… 개발 기회 많이 제공돼야”
한국계 최초로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린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는 1983년생이다. 나이를 따지는 한국 사회에서 1980년대생은 아직 젊은 실무진 축에 속하지만, 과학계에선 위상이 남다르다.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는 연구자의 역량과 아이디어가 빛나는 시기로 불린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노벨상 과학 부문 수상자들이 자신의 핵심 연구를 처음 시작한 평균 연령이 37.9세로 나타났다. 조선비즈는 한국의 기초 과학과 공학을 이끌 차세대 리더들을 독자들께 소개하는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한다. 젊은 과학자들은 한국공학한림원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추천을 받아 선정했다. ‘제2의 허준이’를 넘어서 한국의 첫 노벨상 과학 부문 수상자, 그리고 한국 산업의 미래를 이끌어갈 핵심 인재가 이들에게서 나오기를 기대한다. [편집자주]
1996년 겨울 미 항공우주국(NASA)이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우주기지에서 화성탐사선 패스파인더호를 발사했다. 지구를 출발한 패스파인더호는 7개월 동안 1억9100만㎞를 날아 화성에 도착했다. 이 탐사선에는 화성 표면을 달리며 탐사 활동을 벌일 로봇 ‘소저너’가 타고 있었다. 화성 로봇 탐사 시대를 활짝 연 첫 시도였다.
패스파인더가 발사되는 순간,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는 우주공학의 꿈을 키우는 초등학생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도전을 목도하는 순간 우주에 매료됐다. 인공위성 전문가 윤효상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의 이야기다.
윤 교수는 인공위성의 자세를 제어하는 분야의 전문가로 통한다. 지난해 6월 발사에 성공한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Ⅱ)에 실린 성능검증위성의 자세 제어 코드를 반년도 안 되는 시간에 뚝딱 만들었다. 올해 1월 스위스 순방을 마치고 온 윤석열 대통령이 ‘과학기술 영리더’를 만나는 자리에도 참석했다. 1985년생으로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지만, 이미 인공위성 분야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전문가로 손꼽힌다.
윤 교수는 우주공학이 국가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실패의 경험이 필수라고 말한다. 윤 대통령이 자신을 찾은 이유에 대해 그는 “단지 우주공학을 실제로 경험해봤기 때문에 선정된 것”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조선비즈는 윤 교수가 그리는 우주공학의 미래가 무엇인지 듣기 위해 이달 3일 대전 유성구 KAIST 본원에서 그를 만났다.
-인공위성 중에서도 자세 제어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인가.
“인공위성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다만 X, Y, Z축으로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 건 익숙하지만, 제자리에서 자세를 바꾸는 건 공학도들에게 익숙한 개념이 아니다. 자세 제어는 위성이 회전하는 움직임을 묘사하고 수학적으로 풀어내는 분야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위성이 궤도에 한 번 안착하면 변경하기 어렵다. 그래서 만약 서울을 촬영하고 싶다고 가정하면, 최대한 서울을 바라볼 수 있게 움직임을 제어해야 한다. 궤적은 초기 운용으로 설정하지만, 자세 제어는 우주선(인공위성)을 운용할 때 계속해서 이뤄진다.”
인공위성은 올바른 궤도에 올려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목적에 맞게 자세를 제어하는 기술도 필수다. KAIST는 ‘이종(異種) 위성군 우주 감시정찰 기술 특화연구센터’를 설립하고, 다른 종류의 위성들이 서로 통신해 활용성을 높이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위성은 레이저 광통신을 이용하는데, 위성이 정교하게 레이저를 도달시킬 수 있도록 자세를 제어해야 한다. 기술 개발이 완료되면 같은 위성에서도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인공위성 자세 제어는 많은 사람이 선택하지 않는 분야 같다. 어떻게 접하게 됐나.
“처음 항공우주공학과로 진학할 때 우주선을 만들고 싶었다. 예전에는 대부분 항공 쪽으로 진학했는데, 인공위성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신 은사가 딱 한 분 계셨다. 지금도 KAIST 항공우주공학과에 있는 방효충 교수가 석사과정을 지도해줬는데, 그 연구실에 들어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세 제어를 연구하게 됐다.”
-운영하는 연구실 이름이 ‘스페이스크래프트 프로토타이핑 랩’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가 진행되고 있나.
“한글로 하면 우주선 원형 개발 연구실이다. 일반적으로 대학에서 연구의 최종 목적지는 논문이지만, 나는 논문 쓰는 사람이 아니다. 새로운 걸 만들고, 운용하고, 원하는 생산물이 나오는 걸 좋아한다. 물론 논문을 어느 정도 쓰긴 해야 하지만, 그걸 중점으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주선을 실제로 만들겠다는 의미에서 연구실 이름을 정했다. 지금 연구하는 분야는 크게 세 가지다. 우주 광통신과 초저궤도 인공위성, 각종 센서 개발이다.”
현재 위성 통신에는 무선주파수(RF)가 사용되고 있다. RF를 사용해 지상국으로 데이터를 보내는 속도는 600Mbps(1초 동안 전송할 수 있는 비트 수·Mbps는 1초당 100만 비트 전송)인데, 레이저를 이용해서 지상국에 데이터를 보내면 2Gbps 속도로 전송할 수 있다. 레이저로 통신하면 수십m에 달하는 수신 안테나를 10~30㎝ 수준의 망원경으로 대체할 수 있다.
레이저로 통신하기 위해선 정밀한 자세 제어가 동반해야 한다. ‘㎝' 단위의 레이저 도달면을 정확하게 망원경에 안착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지상국 통신에서 나아가 위성 간 통신으로 발전하려면 최첨단 수준의 자세 제어 정밀도가 필요하다.
-자세 제어와 우주 광통신은 어떤 연관성이 있나.
“레이저를 이용한 광통신은 위성 간 통신에서 주로 활용될 예정이다. 보통 인공위성이 여러 대 있으면 서로 통신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위성 데이터는 지상으로 내려와서 지상에서 다시 전송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현재 통신에 RF를 사용하는데, 안테나가 7~70m에 이른다. 이걸 위성에 실을 순 없기 때문에 그동안 위성 간 통신이 안 됐다.
광통신의 가장 큰 장점은 안테나 크기를 줄일 수가 있다는 점이다. 레이저를 받아들이는 망원경 구경이 10~30㎝ 정도다. 다만 레이저 통신을 실현하려면 위성을 정밀하게 움직여야 한다. 통신이라고 하면 움직임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광통신 분야에서는 ‘포인팅 제어’가 굉장히 중요하다.”
-초저궤도 위성도 개발하고 있다. 군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초저궤도 광학 위성 설계·핵심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다른 국가에선 초저궤도 인공위성을 띄워서 촬영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도 빨리 개발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시작됐다. 국방과학연구소(ADD) 겸임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국내 위성업체 쎄트렉아이와 같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일본에서는 위성 고도를 160㎞까지 내려서 띄우는 실험에 성공했다. 우리도 플라즈마를 만들어 추진하는 전기 추력기를 이용해 높은 효율로 초저궤도에 위성을 띄우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고도가 낮을수록 좋겠지만, 최적인 고도를 찾아야 한다.”
윤 교수는 KAIST에 교수로 부임하기 전 민간 기업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논문보다 실제 생산이 중요하다는 지론을 갖게 된 이유기도 하다. 민간 기업에서의 경험은 한국 우주산업에 대한 통찰력을 줬다.
그가 강조한 한국 우주산업의 발전 방향은 첫째도 경험, 둘째도 경험이다. 그는 윤 대통령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했던 말을 기자에게 들려줬다.
항공우주는 중공업이다
간담회가 끝나고 나갈 때 윤 대통령이 윤 교수에게 다가와 ‘항공우주는 중공업’이라고 한 말만큼은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머리로 이론을 만들어서 해결책을 찾는 일반적인 과학과 달리 중공업 산업처럼 실제로 만들고, 문제가 있으면 수정하는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우주산업도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윤 교수는 우주 분야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선 실물을 만들 기회부터 줘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국에선 쎄트렉아이, 미국에선 구글이 대주주로 있는 플래닛 랩스에서 활동했다.
“쎄트렉아이는 KAIST에서 석사할 때, 플래닛 랩스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할 때 근무했다. 쎄트렉아이에는 2008년에 처음 출근했다. 지금에야 우주 분야 분위기가 좋지만, 당시에는 열악했다. 결혼을 일찍 했는데, 혼자 벌어서 먹고살기 쉽지 않았다. 유학이라도 가면 좀 나아질 거라는 생각에 미국으로 건너갔고, 박사하면서 플래닛 랩스에서 일하게 됐다. 플래닛 랩스는 인턴으로 일했지만 한 달에 천만원은 받았다. 국내에 있을 때와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었다.
플래닛 랩스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에 있다. 공학 분야는 능력치가 떨어지는 사람이 유독 티가 잘 난다. 국내에선 그런 부분이 잘 보였는데, 미국에선 경험하기 힘들었다. 그런 사람은 진작 잘리고 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 미국은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들이 합리적으로 돌아간다. 아직 한국이 부족한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자본 대비 노동력이 많은 상태라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지는 문제다.”
-한국에서도 ‘뉴스페이스’가 태동하고 있다. 정부에서 지원해야 할 부분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
“대통령 오찬에서 항공우주는 중공업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도 오찬이 끝나고 나가면서 이 말 하나는 기억하겠다고 했다. 책상에 앉아서 논문 쓴다고 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만들어보고 수정하는 작업을 많이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자본과 사람, 시간을 투자하면 결과가 무조건 나온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주 분야에서 영리더로 선정된 사람이 나 하나라는 것은 그만큼 인력이 없다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우주산업이 메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한 것 같다. 다만 이제는 기회를 늘려야 한다. 실패해도 좋다는 취지의 과제가 많이 나와야 한다. 더 나아가서 실패나 면책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 지금은 실패해도 면책하겠다는 식인데, 아예 실패할 걸 생각하고 처음부터 투자를 할 필요도 있다. 인력양성이라는 게 투자 대비 결과가 안 좋을 수 있다. 그런 부분도 감안해야 하지 않을까.”
-처음 과학을 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항공우주의 꿈을 갖게 된 계기는 NASA에서 실시한 화성탐사선 패스파인더 발사다. 초등학생이었는데, 패스파인더가 발사되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사실 학생들에게 많이 하는 얘기가 있는데, 인생은 운이라는 표현이다. 단순히 우주에 대한 꿈만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중학교 때 우연히 과학경시대회에 나가 최우수상을 받았다. 당시에는 과학경시대회에서 금상 이상을 받으면 과학고에 특채로 갈 수 있었다. 우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항공우주공학에 진학했다.”
-우주공학의 매력은 무엇인가.
“우주공학은 남들이 접하기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게 멋있다. 누구나 그런 로망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우주에 나가본 적도 없고, 나갈 일도 없는데, 그런 곳에서 위성을 제어하고 탐사선을 보낸다는 게 매력적이다.
여전히 어렸을 때 봤던 패스파인더 같은 탐사선을 만드는 게 공학자로서의 꿈이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 실질적으로 우주선을 만들기 위해 볼트를 조이진 않겠지만, 그런 프로젝트를 실현시키고 싶다.”
윤효상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2008년 KAIST 항공우주학과 학사
2010년 KAIST 항공우주학과 석사
2008~2014년 쎄트렉아이 자세 제어(AOCS) 연구원
2017년 매사추세츠공대(MIT) 항공우주공학과 박사
2017~2019년 미국 플래닛 랩스 유도항법제어(GNC) 엔지니어
2019년 KAIST 항공우주공학과 조교수
주요 연구 성과
The Journal of the Astronautical Sciences, DOI: https://doi.org/10.1007/s40295-023-00376-w
ARC, DOI: https://doi.org/10.2514/1.G005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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