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방공망 마비·교란' 조용한 승리의 마법사, 전자전 항공기[밀리터리 월드]
방위사업청 1조8500억원 투입... 2032년까지 국내 개발
본격적인 전쟁을 치르기 전에 승패를 결정하는 전자전의 중요성은 1991년과 2003년 1·2차 걸프전 때 이미 입증됐다.
작전명 '사막의 폭풍'으로 일컫는 걸프전 첫날 이라크는 방공 레이더 100여기를 가동했지만 미국의 EF-111, EA-6B. EC-130 같은 전자전기가 동원돼 레이더를 기만·교란해 이라크의 방공 레이더는 거의 파괴됐다.
한국도 오랜 숙원 사업인 전자전 항공기(전자전기) 자체 개발에 나선다는 소식이 들린다.
지난 2019년부터 진행 중이던 전자전기 개발사업은 2020년엔 선행연구로 2조50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오는 2031년까지 전자전기를 도입한다는 구체적 목표까지 제시됐다.
그러다 2021년 2월 중순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수행하는 소요검증 끝에 ‘도입 불가’ 통보를 받았다. 우리 군은 전자전기가 없어 한미연합훈련 때마다 미군 지원을 받는 상황에서 KIDA는 한반도 유사시 전장에서 전자전기의 효용성이 낮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당시 공군과 국내 방산업계도 충격적 소식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방위사업청은 이달 13일 제152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유사시 북한 방공망과 무선지휘통신체계를 마비시키는 전자전기를 국내에서 개발하는 사업이 내년에 시작된다고 밝혔다.
이번 사업은 국방과학연구소(ADD)와 방산기업이 공동으로 추진하며 투입되는 예상 사업비는 내년부터 2032년까지 1조8500억원 규모다.
방사청은 이번 사업으로 전시에 공중전력 생존성을 향상하고 전자전 핵심기술 확보로 미래 전자전 대응체계 기반 조성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전자전기 사업은 유사시 북한 통합방공망과 무선지휘통신체계를 마비·교란하며 주변국 위협 신호(시긴트)를 수집·분석해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는 역할을 통해 우리 공중 전력의 생존성과 합동작전수행 능력을 향상하는 목적으로 국내 연구개발로 진행된다.
전자전기 사업추진기본전략에 따라 개발하는 전자전기는 전투기를 개조한 '그라울러' 같은 '에스코트형'이 아니라 수송기나 상용 제트기를 개조한 '컴패스콜'처럼 '스탠드오프형(장거리)'으로 알려졌다. 방사청 관계자는 "장거리 작전이 가능하고 평시에 활용도가 크다는 게 스탠드오프형 전자전기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전자전은 적의 전자파는 효과적으로 쓰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아군은 이를 효과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하는 군사 활동을 말한다.
전자전은 땅, 바다, 하늘 같은 모든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있으며, 항공기를 이용한 전자전은 적 방공망을 제압하기 위한 공격, 항공기 자체보호를 위한 조종사 경고, 전파 방해(jamming)나 채프(chaff) 살포, 대방공 미사일 발사, 작전 지역 감시나 조기 경보, 통신이나 전자신호 정보 수집 같은 형태로 수행한다.
EA-18G는 FA-18F 슈퍼 호넷을 베이스로 개발한 기종이다. 애칭 그라울러(Growler)는 '으르렁거리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스텔스기 한대보다 높은 전술적 가치를 갖는다.
2010년대 F-35의 등장으로 스텔스기 보유국은 대거 늘어났으나 전자전기 운용국은 여전히 손에 꼽는다.
미국은 전·평시 세계 각 지역에서 RC-135V/W/U 등 ‘전자 정찰기’를 띄워 각 국의 모든 전투기와 항공기, 지상 레이더와 통신장비 등의 전파 정보를 수집해 복제·분석한다. 축적한 전파 정보는 전자전기 포드와 운용 소프트웨어에 담기고 하드웨어 개발에 반영함은 물론이다.
실전에선 적 전투기와 조우하거나 적진에 들어가 상대방 레이더 전파를 감지하면 기체에 장착된 재머(jammer)로 전파를 쏴 정보를 왜곡, 무력화한다.
전자전기는 공중에서 단순히 전자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우월한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일종의 지휘관기로써 전투기와 수송기 등 아군 기체의 전술 결정을 담당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2007년 2월 F-22A 랩터와 치른 모의 공중전에서 전자방해로 랩터의 레이더를 피해 접근했고 F-22가 AIM-120을 발사했지만 전파방해로 미사일을 무력화시키고 CATM-120 훈련탄을 사용해 F-22를 격추했다.
EA-18G 그라울러 개발 사업은 2001년부터 시작돼 2003년 12월 미 해군이 보잉사와 EA-18G의 개발·생산 계약을 체결하면서 본격적으로 착수한다.
2008년 테스트 비행을 마지막으로 2009년부터 미 해군 전자전기 조종사 양성 비행대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그라울러 전자전기는 전자전 능력을 갖춘 AN/APG-79 AESA 레이더를 사용하지만 전자전 체계 핵심은 ALQ-218(V)2 윙팁 리시버와 특히 AN/ALQ-99F(V) 재밍 포드다.
이 재밍 포드는 EA-18G 그라울러의 주익 아래 좌우에 3개씩의 하드 포인트 중에서 아웃보드 스테이션을 제외한 4개의 하드 포인트와 동체 아래 센터 스테이션을 포함해 최대 5개의 재밍 포드를 탑재할 수 있다.
미 해군은 2009년까지 총 85대 도입을 결정한 후 2014년 12대 추가를 마지막으로 135대의 EA-18G 그라울러 전자 공격기를 도입했다. 스트라이크 패키지 즉 다수의 전투기로 편성된 공격편대군의 생존에 필수적인 항공기로 보통 2대의 EA-18G 전자전기가 동원된다.
전자전기의 공격 장비는 전투기와 적의 재밍 대상 레이더와의 거리에 따라 재밍 방법과 재밍 출력 세기가 매우 차이가 난다.
전자전기들이 먼 거리에서 적 방공망을 전자적으로 방해하는 스탠드 오브 재밍(Stand Off Jamming) 즉 원격지원재밍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반면 EA-18G 전자전기는 △'원격지원재밍'방식뿐만 아니라 △적진 깊숙이 침투해 근접해서 실시하는 '전방지원재밍' △'호위지원재밍'이 모두 가능하다. 즉 근거리·중거리·장거리 레이더 방공망 재밍이 가능하다.
전자전 장비는 상대국 무기체계의 전파 정보를 알아야 방해전파를 효과적으로 방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안에는 장비를 개발한 국가의 첨단 감시, 정찰 능력이 모두 들어가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장비다.
EA-18G 그라울러 전자전기에 들어간 재밍 포드엔 그간 미국이 수집해온 세계 각국 레이더·통신 장비의 전파 특성 정보가 모두 담겨있다.
하드웨어는 당대 미국의 최첨단 전자기술력이 집약되었을 뿐 아니라 탑재된 소프트웨어는 극히 민감한 전략자산급 대외비가 담긴 정보의 집약체로 미국의 땀과 노력 희생이 축적돼있는 결정체로 평가된다.
현재까지 다운그레이드한 EA-18G 그라울러의 유일한 구매국은 호주다. 그것도 평시에 핵심 장비 재머 포드는 미군이 보관하다 호주군이 필요로 할 때만 미군 측 관계자의 통제하에 제공한다는 미국의 보안통제 준수(위반 시 미국법을 적용받는다는 의미) 조건으로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미국은 전자전 항공기 장비를 업그레이드해 2020년대 중반부터 실전 배치를 목표로 첨단 차세대 NGJ-MB(Next Generation Jammer-Mid Band)장비 개발 프로젝트에 박가를 가하고 있다.
전 세계 전자전 시장은 지속적인 투자의 경향을 보이며 각국은 전자전의 연구개발에 대해 지속적인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2차세계대전 중에 영국첩보기관은 독일의 비밀암호해독법을 알아내 독일외무성이 재외대사관에 보내는 전문을 모두 감청하고 해독할 수 있었지만 당시 동맹국인 미국에도 비밀로 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전자전기에 담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어떠한 이유에서든 상대국에 노출되면 상당 부분 무력화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동맹국이라 해도 장비의 판매가 제한되는 이유로 해석된다.
북한도 지속적인 전자전 능력을 개발하고 있으며 우리의 주요 훈련 기간 중 GPS 교란을 실시하는 등 전자전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다.
2015년 국가안보전략 학술회의에서 당시 호주의 사이버정책센터장 토비아스 피킨은 북한이 외국 무기전시회에 전자전 장비에 대한 홍보 팸플릿을 통해 전자전 장비의 판매를 추진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현대전에서 전자전 능력은 폭탄 같은 무기보다 더 결정적으로 승패를 결정짓는 현대전의 핵심 전력으로 평가를 받는다. 그 보유 여부가 선진 항공 전력의 조건이 될 정도다.
하지만 전자전기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우위를 점하는 것은 아니며, 많은 정보 수집 노하우 및 분석기술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우리 공군도 항공통제기 'E-737 피스아이' 4대와 백두정찰기 6대, 고고도 무인정찰기(HUAS) RQ-4 글로벌호크 4대 등을 운용하고 있다.
또한 군과 관련 공·사 기업들은 다양한 전자전 장비를 운용한 경험과 전자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우수한 인력과 조직을 구축하고 국산 ALQ-200K 전자전 포드 운영 노하우를 축적해 전자전기 개발에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러시아의 침공으로 발생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양상은 원격 제어 무인 항공기(UAV)의 사용 증가와 함께 적의 정보를 주고받는 신호체계, 통신을 제밍하는 등의 치열한 정보·전자전 능력이 전투의 결정적인 승패요소로 작용하는 측면을 엿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우여곡절 끝에 전자전기의 국내개발이 결정된 만큼 엄중한 안보환경과 국민의 관심, 성원 속에서 차질 없는 우리 공군의 선진 항공 전력이 구축되길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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