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짝퉁' 불렀던 히트상품의 탄생…'127년' 韓 최장수 기업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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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해남군에서 관직 생활을 그만둔 뒤 서울로 상경했다.
한국기네스협회에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인정한 두산그룹의 시작이다.
그 옆에 전시된 '직원록'에는 박승직 상점이 도입했던 선진적인 기업 운영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후 두산그룹이 본격적인 현대 기업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48년 동양맥주를 인수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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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역사관 '두산 헤리티지 1896' 개관…'4세' 박정원 회장 "대한민국 근현대 산업 발전상 담겨"
(성남=뉴스1) 배지윤 기자 = 전남 해남군에서 관직 생활을 그만둔 뒤 서울로 상경했다. 1896년 종로4가에 자신의 이름을 딴 '박승직 상점'을 세웠다. 한국기네스협회에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인정한 두산그룹의 시작이다. 박승직 두산그룹 창업주는 그곳에서 주로 베와 무명 등 포목을 취급하면서 국내 최초의 화장품인 '박가분'을 만들어 팔았다. 지난달 말 경기 성남시 분당두산타워 4층에 문을 연 두산그룹 역사관인 '두산 헤리티지 1896'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상표가 등록된 화장품인 '박가분'이 전시돼 있다. 전성기 시절 하루 5만개나 팔릴 정도로 인기가 높아 '촌가분'이라는 '짝퉁'(모조품)이 성행할 정도였다고 한다. 특허청에서도 지금까지 모조품 관련 교육자료로 쓰이고 있다.
그 옆에 전시된 '직원록'에는 박승직 상점이 도입했던 선진적인 기업 운영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박승직 창업주의 장남 박두병 초대회장은 상점을 물려받은 뒤 1936년 직원록과 출근부 등을 도입했다. 이런 객관화된 자료를 기반으로 직원들의 업무평가를 하고 상여금을 차등 지급하기까지 했다.
1946년에는 두산상회로 상호를 바꿨다. 두산이란 상호는 창업주 박승직이 아들 두병의 이름 첫자인 말 '두'(斗)자에 뫼 '산'(山)자를 붙여 만든 이름이다. 한 말 한 말 차근차근 쉬지 않고 쌓아 올려 산같이 커져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의 역사를 담고 있기에 이 역사관에서 만나는 두산그룹의 역사는 곧 한국 근현대 산업의 발전사이기도 하다. 박승직 상점에서 사용하던 현판과 주판·열쇠·도장 등 100여년 전 물품이 복원된 모습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후 두산그룹이 본격적인 현대 기업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48년 동양맥주를 인수하면서다. 소화기린 맥주 관리인이었던 박두병 초대회장이 동양맥주 주식회사를 불하받아 국내 주류 사업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이후 사명을 OB맥주로 변경해 지금의 두산그룹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88올림픽 로고와 한글 라벨이 부착된 맥주병이 이채로웠다.
1990년대 소비재 중심으로 사업을 키웠다. 박두병 초대회장의 장남인 고(故) 박용곤 명예회장이 세계적 브랜드인 코카콜라를 들여와 처음 생산할 당시 기뻐하는 모습이 생생하다.
2000년대 들어 소비재 기업 이미지를 벗어나 인프라 사업에 뛰어들었다. 옛 한국중공업을 인수해 두산중공업(現 두산에너빌리티)를 설립한 게 그 시작이다. 역사관에 나열된 계열사 성과와 가스터빈·굴착기 모형은 현재의 두산그룹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이 밖에 프로야구 두산베어스의 우승반지와 트로피·각종 기념품 등도 흥미롭다. 두산 헤리티지 1896은 일반에도 공개가 돼 있어 한국 근현대 산업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도 찾을 만했다.
현재 두산그룹은 중공업과 에너지·건설기계 등 굵직한 업종을 중심으로 두산에너빌리티·두산밥캣 등 22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차세대 에너지와 반도체·로봇 같은 신사업에도 진출하며 미래 성장 동력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해 사업보고서 기준 매출 17조원을 올린 굴지의 대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최근에는 '4세 경영시대'에 접어들었다. 박두병 초대회장의 5남인 박용만 회장이 2016년 큰 조카 박정원(박용곤 명예회장 장남) 두산 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기면서다. 박용만 회장과 두 아들은 지난해 보유 주식을 모두 처분하며 지난해 그룹에서 완전히 떠났다.
지난달 말 두산 헤리티지 1896 개소식에 참석한 박정원 회장은 "이곳은 두산만의 역사를 기념하는 공간이 아니라 대한민국 근현대 기업사와 산업의 발전사를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jiyounba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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