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대농을 흔드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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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농(大農)이 무너지고 있다."
농산물 수입 개방이 본격화된 1990년대말부터 우리 농업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부르던 규모화된 농가, 즉 대농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짧게는 25년, 길게는 40년가량 농사를 지으며 자신이 기르는 품목에서는 내로라하는 경쟁력을 갖춘 대농이다.
그러나 이제 인력난은 우리 농업, 그것도 대농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가장 강력한 '변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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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농(大農)이 무너지고 있다.”
요즘 경기지역 농촌에는 심상치 않은 소문이 돈다. 농산물 수입 개방이 본격화된 1990년대말부터 우리 농업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부르던 규모화된 농가, 즉 대농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실제 사례도 현장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경기 여주에서 16만5000㎡(5만평)에 고구마·감자 농사를 짓는 한 농가는 최근 학교급식을 납품하다 작업장으로 들이닥친 불법체류자 단속반에 2차례에 걸쳐 18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걸려 벌금 4500만원이 부과돼 올 농사를 접었다. 극단적인 선택까지 시도했던 그는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낙담했다.
이천과 여주에서 66만㎡(20만평) 인삼농사를 짓는 한 농가는 어렵게 아들을 설득해 농사 일부를 물려주고 규모를 줄이려 했다. 하지만 최근 벌어진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 단속으로 파종이 늦어지는 등 농사에 차질을 빚자 “매년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어떻게 인삼농사를 짓겠냐”며 아들이 결심을 바꿔 어찌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안성에서 5만㎡(1만5000평) 배농사를 지어 백화점과 대형 유통업체로 납품하는 농가는 지난해부터 어렵게 개척한 판로 몇곳을 포기하며 납품을 줄이고 농장 배나무 일부를 산지수집상에게 넘겼다. 수확 작업과 납품을 위해서는 시기에 맞게 매번 20여명의 인력이 필요한데 제대로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는 더 많은 배나무를 산지수집상에게 넘길 계획이다.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짧게는 25년, 길게는 40년가량 농사를 지으며 자신이 기르는 품목에서는 내로라하는 경쟁력을 갖춘 대농이다. 그 오랜 기간 온갖 역경을 극복해왔으나 최근 맞닥뜨린 인력난에는 속수무책으로 입지를 위협받고 있다.
농업 기계화가 진전됐지만 대부분의 밭농사는 아직도 사람 손으로 해야 하는 작업이 많아 제때 인력을 구하지 못하면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농사짓는 규모가 클수록 치명도도 높다. 정부 정책에 부응해 재배규모를 키워 경쟁력을 높였던 농가들이 인력난이라는 암초에 걸려 더이상 규모의 경제를 발휘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정부가 서둘러 농업분야 인력수급 지원대책을 내놨지만 농가 수요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그마저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그동안 농업에서 인력난은 걱정거리 정도의 ‘상수’로 여겼다. 그러나 이제 인력난은 우리 농업, 그것도 대농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가장 강력한 ‘변수’가 됐다.
“이대로라면 몇년 안에 대농이 먼저 사라질 것”이라는 한 농가의 자조 섞인 경고를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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