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 그 사연] 부랴부랴 집어넣은 마지막 곡, 대히트 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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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현미가 4일 향년 85세로 별세했다.
현미 음악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무용수로서 장교클럽과 살롱에서 활동하던 중 당대 최고 악단장이자 작곡가인 이봉조를 만난 것이다.
이봉조는 테너색소폰을 불며 현미에게 구애했고 두 사람은 1962년 미국 가수 냇 킹 콜(Nat King Cole)이 불러 히트한 재즈곡 'It's A Lonesome Old Town(이츠 어 론섬 올드 타운)'을 번안한 '밤안개'를 녹음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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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현미가 4일 향년 85세로 별세했다. 그는 1938년 평양에서 태어나 일찍이 춤과 노래에 재능을 보였다. 평양보통학교 재학시절 학생 대표로 김일성에게 헌화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한국전쟁 때 남하해 덕성여자대학교에 다니며 ‘김진걸 무용연구소’에서 춤을 배웠다.
현미 음악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무용수로서 장교클럽과 살롱에서 활동하던 중 당대 최고 악단장이자 작곡가인 이봉조를 만난 것이다. 이봉조는 테너색소폰을 불며 현미에게 구애했고 두 사람은 1962년 미국 가수 냇 킹 콜(Nat King Cole)이 불러 히트한 재즈곡 ‘It's A Lonesome Old Town(이츠 어 론섬 올드 타운)’을 번안한 ‘밤안개’를 녹음하기에 이른다.
‘밤안개’는 이봉조가 원곡에 홀로 밤거리를 걷는 한 남자를 상상하며 현미와 함께 노랫말을 붙인 것이다. 당시 레코드판에 8곡을 수록해야 했는데 1곡이 모자라 쩔쩔매다가 마지막에 급하게 넣었던 곡이 바로 이 곡이다.
노래는 발표되자마자 대성공을 거뒀고 현미는 그해 곧바로 스타덤에 올랐다. 곡과 가수가 큰 인기를 끈 것은 현미의 창법 덕분이다. 그는 울림통이 커 성악가처럼 소리를 멀리 보낼 수 있으면서도 가요의 매력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줄 알았다.
현미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건은 이봉조의 죽음이다. 이봉조는 얼마 전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의 모티브가 된 정훈희 노래 ‘안개’를 작곡한 것으로 회자된 인물이다. 이봉조는 KBS경음악단 단장으로 재직하던 중 급작스럽게 쓰러져 56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사람들은 이봉조가 작곡하고 현미가 부른 노래 ‘떠날 때는 말없이’를 떠올리며 그를 두고 노래처럼 말없이 떠나갔다고 회고했다. 이 노래는 1964년에 제작된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동명 영화 주제가다. 이봉조가 이 영화의 음악감독을 맡았고 노래는 현미 독집에 수록됐다. 현미 또한 말없이 떠나갔으니 ‘가수가 제목 따라간다’는 속설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현미는 좌우명이 있었다고 한다. ‘무던하게 살기, 되도록 많이 이해하기, 남 앞에서 울지 않기’였다. 그야말로 도(道)를 근본으로 하는 노자와 같은 삶이다. 고생스럽고 참담했던 이봉조와의 결혼과 별거, 가요계 생활로 터득한 삶의 방식이었으리라.
노자가 쓴 <도덕경> 79장에 ‘천도무친 상여선인(天道無親 常與善人)’이라는 구절이 있다. ‘하늘의 길은 공평해 선한 사람을 돕는다’는 뜻이다. 현미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웃음을 보여줬던 가수였다. 내세에서 못다 한 천도의 빛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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