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복지 소비자 요구 커져”…“속도 조절 필요”
산란계 사육면적
2025년 9월 전까지 환경 개선
마릿수 감소해 경영 부담 증가
임신돈 스톨 사용 제한
교배 후 6주까지만 허용 방침
무리사육 땐 유산 위험 등 우려
동물복지 축산물에 대한 소비자 요구가 커지면서 산업동물 관련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당장 2025년부터 산란계농장에선 1마리당 사육면적이 늘어나고 2030년부터는 돼지 임신사의 스톨(금속틀) 사용 규제가 적용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규제 내용과 쟁점을 살펴봤다.
◆ 산란계 사육면적 확대, 동물복지에 기여 vs 농가 부담 확대=2025년 9월1일부터 산란계 사육면적이 마리당 0.05㎡에서 0.075㎡로 1.5배 확대된다. 2018년 9월 ‘축산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동물복지 차원에서 상향 조정된 것으로, 기존 농장에 대해서는 7년간 유예기간이 적용됐다. 기존 농가들은 2025년 9월1일 전까지 사육환경을 개선해야 하는데 대다수 농가들은 사육마릿수 감소로 농가경영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했다.
산란계농가에서 주로 사용하는 직립식 케이지는 1칸당 평균 7∼10마리의 산란계가 사육된다. 2025년 사육면적 규제를 적용하면 1칸당 사육마릿수는 30% 이상 감소하게 된다. 1칸당 2마리를 사육하는 A형 케이지를 사용하는 농가는 사육규모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산란계농가들은 당장 뾰족한 지원책이 없다면 2025년까지 해당 규제에 맞추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전남 나주의 한 산란계농가는 “이미 수억원대 빚을 내 현대식 시설을 갖춰놨는데 새로운 규제가 적용되면 농가 매출이 크게 줄어들 것이 뻔한 상황”이라면서 “아무 대책도 없이 농가에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 “임신돈 스톨 사육 제한, 동물복지에 반할 수 있어”=2020년 개정한 축산법이 시행됨에 따라 스톨은 교배 후 6주까지만 허용하는 방식으로 양돈장의 스톨 사육이 제한됐다. 교배 후 6주가 지난 임신돈은 군사공간(무리로 사육하는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다만 기존 농가는 2029년까지 10년의 유예기간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현장 전문가들은 해당 조치가 오히려 임신돈의 스트레스를 증가시켜 동물복지에 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성훈 한돈미래연구소장은 “군사사육 때 임신돈이 서열싸움 등으로 스톨을 사용할 때보다 스트레스를 더 받게 돼 유산 등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며 “어떤 방식이 동물복지에 기여하는지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해당 규제가 강화되는지 모르는 농가들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대한한돈협회가 진행한 한돈농가 경영실태조사에 따르면 2030년부터 시행하는 임신돈 군사사육시설 전환 의무에 대해 ‘모른다’는 답변이 54.6%로 절반 이상이다. 군사사육시설 전환에도 86%가 부정적으로 답변했다.
김유용 서울대학교 식품·동물생명공학부 교수는 “동물복지로 잘 알려진 네덜란드에서도 스톨 규제 도입 시기를 2030년에서 2035년으로 늦춘 바 있다”며 “한국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비자값 상승, 자급률 하락 우려=때 이른 동물복지가 소비자물가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산란계업계는 달걀 공급 감소로 달걀값이 폭등할 것으로 예측했다. 안두영 대한산란계협회장은 “달걀값이 7000원만 돼도 수입하는 형국인데, 규제로 사육마릿수가 줄어 달걀값이 상승하면 정부가 또 수입카드를 꺼내들 것으로 본다”면서 “결국 국내 농가들만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사료값·인건비 등 축산농가 생산비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시설비까지 더하면 국내산 축산물의 소비자값은 인상돼 자급률이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허재승 한국엘랑코동물약품 수의사는 “생산성과 생산자의 편익을 고려하지 않는 동물복지는 유지·발전이 어렵다”며 “동물복지와 생산성 향상을 같이 이룰 수 있는 한국형 동물복지 정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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