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도시 사무실 텅텅…상업용 부동산에 은행 또다시 위기 올 것"
"파월 더 빨리 움직였어야…다만 위기 본질은 QE"
"무보험 예금 암묵적 보장, 여러 문제 야기할 것"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우리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매우 기이한 상황(very funny situation)에 놓여 있습니다.”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전 인도중앙은행 총재)는 최근 이데일리와 화상 인터뷰에서 ‘연방준비제도(Fed)의 최종금리를 어느 정도로 예상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후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아직 정말 말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했다.
라잔 교수는 △연준이 물가·성장 속도를 늦추기 위해 최선을 다해도 미국 경제는 호조를 보인다는 점 △갑자기 중소형 은행에서 혼란을 겪으며 얼마나 강력할지 알 수 없는 압박감을 준다는 점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의 증산 요구와 달리) 예상 밖 원유 감산을 결정한 점 △기대인플레이션을 점점 통제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 등을 들면서 “연준은 정말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예컨대 이번달 미시건대가 발표한 미국의 1년 기대인플레이션은 4.6%로 전월(3.6%) 대비 급등했다. 물가 지표들이 점차 둔화하는 듯했지만, 돌연 인플레이션 공포를 키운 것이다.
라잔 교수는 국제적으로 가장 저명한 이코노미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국제결제은행(BIS) 부의장, 미국 재무학회장 등을 역임했고, 모국에서 인도중앙은행(RBI) 총재로 일한 경험도 있다. 그런 그조차 ‘초불확실성의 시대’를 토로한 것이다.
“양적완화 중독이 위기의 본질”
-현재 인플레이션은 어떻게 진단하는가.
△물가가 (정점을 찍고) 하락하고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제조업 등의 임금은 인플레이션을 따라가지 못하고 점차 하락하는 고무적인 징후들이 있다. 빅테크에서 많은 해고가 있었고, 이는 노동시장 조정이 이뤄지고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문제는 서비스업 노동시장이 너무 빡빡하다는(타이트하다는) 점이다. 여가·접대업 분야에서는 고용주들이 계속 노동자들을 찾고 있고 임금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 디스인플레이션을 볼 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이다.
-연준은 금리를 얼마나 더 올릴까.
△정말 말하기 어려운 문제다.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은 전에 가본 적이 없는 곳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가 어떻게 흘러갈지) 말 그대로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 연준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제롬 파월 의장에게 조언을 한다면.
△그가 최대한 모든 데이터를 활용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미래에서 지금을 본다면, 연준이 (통화 긴축을 하는데 있어) 더 빨리 움직였어야 했다고 말할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현재 문제는 그보다 더 광범위하다. 파월 의장을 넘어서 중앙은행 자체의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는 중앙은행이 (양적완화(QE) 등을 통해) 공격적으로 돈을 풀면 금융 불안 문제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있다. 이번 은행권 붕괴는 문제가 더 시스템적일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QE는 어떻게 은행에 영향을 미치나.
△연준은 QE를 통해 시장에서 채권을 사들여 대차대조표를 확대한다. 시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 채권을 판 돈을 은행에 예금한다. 이를 시중은행 입장에서 보면 (대차대조표에서 자산 항목의 대출채권과 부채 항목의 예금잔고가 늘어나는 식으로) 연준처럼 대차대조표가 커진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시중은행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문제가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고 수익을 더 높이기 위해 장기 유가증권(채권 등)에 투자한다는 점이다. 물론 시중은행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유동성 위험을 더 많이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이런 시중은행들의 행동(의사결정) 때문에 금융 시스템은 중앙은행의 QE에 더 의존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번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처럼 연준이 긴축에 나설 때 (은행 자산 가치가 급감하는 식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연준 긴축이 너무 빨라서 은행 위기가 커졌다는 의견이 있는데.
△연준이 더 일찍 금리를 올렸다면 금융권 스트레스가 조금 더 작아졌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본질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연준의 QE 이후 시중은행들이 대거 장기 유가증권 투자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모든 우려는 중앙은행의 손쉬운 유동성에 중독돼 있고, 그만큼 금융 시스템이 취약해졌다는 점이다.
-무보험 예금을 모두 보장하기로 한 정책은 어떻게 보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하나의 패턴이 됐다. 명시적으로는 모든 예금이 보험에 든 것은 아니지만, 이제 암묵적으로는 모두 보험에 든 것 같다. 이로 인해 투자자들은 그들이 감수해야 할 위험에 대해 덜 경계하게 됐다. 이것은 큰 문제다. 모든 사람들이 ‘리먼 모먼트’(Lehman moment·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처럼 하나의 대형기관 혹은 국가에서 나타난 위기가 전이될 수 있다는 두려움)를 무서워하기 때문에 일단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도덕적 해이는 당장 걱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고통을 견디지 않는 사이 납세자들이 부담을 지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이 다음 뇌관이라는 우려가 있다.
△그렇다. 요즘 대도시 사무실들을 보라. (최근 정리해고 등의 여파로) 꽉 차 있지 않고 많은 고객들이 떠났다. 문제는 이런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상당 부분은 중소형 은행들이 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중소형 은행들이 불안해진 만큼 같은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 기간을 연장하거나 다른 은행으로 대출을 갈아타려 할 때 그 실행 가능성이 불확실해졌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지역 중소형 은행들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 중 70%가량은 향후 5년 안에 만기가 도래한다.) 현재 상업용 부동산 대출 문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정도 수준은 아니라고 보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문제가 있다.
-경기 침체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보는가.
△은행권 신용 경색으로 인한 대출 감소는 경기 침체에 있어 상당한 요인이다. 연말이 되기 전에 침체를 볼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판단한다면 경기 연착륙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으로 본다. (서비스업 임금 상승세 등) 인플레이션을 지탱하는 몇몇 요인들이 있어서 연준이 결국 (긴축을 지속하는 식으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수 있다. 다만 (침체의 정도로 보면) 완만한 침체와 더 깊은 침체 등이 모두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에 아직 말하는 것은 어렵다.
-중장기적으로 저금리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릴 수 있는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탈세계화라고 생각한다. (세계화 시대와는 다르게) 세계 각국에서 노동자들을 둘러싼 경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정과 통화 측면에서) 각종 경기 부양책들을 사용하면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실질금리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견해 역시 있다. 우리 모두 토론이 필요한 문제다. 아직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라구람 라잔 교수는…
△1963년생 △인도델리공과대 전기공학과 △아마다바드 인도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미국 MIT 경제학 박사 △노스웨스턴대 초빙교수 △MIT 초빙교수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미국 재무학회장 △제23대 인도중앙은행(RBI) 총재 △국제결제은행(BIS) 부의장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
김정남 (jungki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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