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도원과 유토피아…동서양 넘는 사유의 여백

김여진 2023. 4. 1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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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내설악백공미술관 왕열 초대전
건립 13주년 ‘설악으로 부는…’
미술학 박사 1호 왕 화백 초청
500호 대작·입체 포함 30여점
수묵·팝아트 등 한국화에 실험
강렬한 색채 속 힘찬 붓 터치
“조형성 앞서 정신·사유 우선”

서양의 유토피아와 동양의 무릉도원. 당신이 떠올리는 이상향의 세계는 어떤 색채이고, 누가 살고 있나. 내설악 자락의 미술관에서 사유해 볼 수 있다.

인제 북면 용대리에 있는 내설악백공미술관(관장 박종용)이 왕열 작가 초대전을 전관에서 개막했다. 올해 미술관 개관 13주년을 맞아 마련한 이번 전시의 타이틀은 ‘설악으로 부는 바람-UTOPIA전’. 동·서양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해 온 왕열 작가의 작품 중 500호 대작 4점을 포함해 30여점이 걸렸다. 왕 작가는 전통적인 한국화의 표현을 이어가면서도 현대적인 실험을 작품 안에 녹여내고 있는 작가다.

그의 작품들은 동양화에서 많이 보이는 산수 풍경을 기본 소재로 삼고 있지만 메인 색채는 빨강, 파랑, 노랑 등으로 매우 강렬하다. 힘찬 붓의 움직임이 평면에서도 강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섬세한 수묵 표현을 통해 전통의 아름다움도 놓치지 않는다.

그의 작품 여러 곳에는 말이 나타난다. 실재하는 듯, 아닌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고독해 보이다가도 단단해 보여서 위안 삼고 싶어지기도 한다. 구름처럼 날아가는 새의 날갯짓은 신비감을 자아낸다. 이들 소재는 인간 실존을 나타내는 동시에 이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힘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작가의 설명을 차용하면 실존적 고통을 직시하면서도 낙관적으로 극복하려는 의지다. 새와 말은 혼자 있기도 하고, 모여 있기도 하며, 같은 곳을 향해 가기도 하고 마주보기도 한다. 어떤 풍경이 더 이상적인지는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다를 것이다.

작품들은 동양의 무릉도원을 테마로 한다. 자연 형태 그대로를 넘어 즐거운 상상과 작가의 비유 등을 덧입혀서 추상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붓이 남긴 자리가 그대로 남아 묵직한 안정감과 에너지를 주는 동시에 세밀하게 묘사된 산수 풍경은 관찰의 영역을 넓혀주는 듯 하다. 오세권 미술평론가의 평대로 수묵화와 채색화, 포스트모더니즘, 팝아트적 요소 등의 흐름을 고루 볼 수 있다. 한국화에서도 실험적 부류다. 오 평론가는 “하나의 주제나 표현에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함께 변화해 왔다. 대립적 개념의 전통과 현대를 융화시켜 두 개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표현을 위해 실험하고 연구한다”고 했다.

왕 작가는 “자연과 산수를 묘사하면서 형태나 조형성에 앞서 정신과 사유를 우선에 두고 있다”며 “무릉도원의 자연과 이를 관조하는 자아, 관람객의 관계적 설정은 옛 문인이 그리던 산수화의 전형적 심상”이라고 밝혔다.

왕 작가는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미술학 박사를 마쳤다. 우리나라 미술학 박사 1호다. 단국대 동양화과 교수를 지냈고 한국미술작가대상 등을 수상했다. 유럽, 아시아, 남미 등 여러 나라에서 65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이번 전시는 내설악백공미술관 관장을 맡고있는 박종용 화백이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장을 할 때 왕 작가와 함께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인연 등이 닿아 마련됐다. 박종용 관장은 “왕 작가의 자유로운 감성의 울림은 활력적인 붓의 유동성에서 들려오는 듯 하다”고 소개했다.

내설악백공미술관은 춘천지검 차장검사 등을 지낸 법조인이자 미술품 콜렉터인 고 정상림 전 이사장이 2011년 한국 근현대 작품을 테마로 세웠다. 고향이 북한 신의주인 그는 인제 군부대에서 법무관을 한 인연으로 고향 땅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지역에 미술관 부지를 마련했다. 2019년 별세 후 부인 방영자씨가 이사장을 맡았고, 미술관 건립 이전부터 오래 함께 해온 박 관장이 운영과 작품 관리 등을 이어가고 있다.

미술인과 지역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5일 열린 오프닝 행사에서는 전통명무 3호 김지립 교수의 한량무와 김희정 소프라노의 공연도 펼쳐졌다.

백담사 방문이나 44번 국도를 타고 인제·속초·양양 지역을 들를 계획이 있다면 산자락 아래 미술관에 잠시 들러 힘찬 붓으로 세운 다채로운 무릉도원들을 감상해 볼 법하다. 전시는 오는 6월 15일까지. 김여진 beatle@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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