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인권운동가 윤여상 "북한도 국제사회 일원, 지적하면 바뀐다"

박수윤 2023. 4. 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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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 윤여상(56)의 삶은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었다.

2003년 사단법인 북한인권정보센터(NKDB)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탈북자들의 증언을 수집해 북한인권백서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13일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에서 만난 윤여상은 "북한인권은 한국 사회의 보수 진보 양측에서 모두 고립된 주제"라며 "일부 진보진영에서는 나를 보수꼴통이라고, 일부 보수진영에서는 빨갱이라고 한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인권을 유독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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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모두 '물 들어올 때 노젓기' 안돼…꾸준해야 바뀐다"
30년간 북한인권 실태 기록한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소장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소장이 13일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 사옥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2023.4.13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 윤여상(56)의 삶은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었다.

전북 무주 덕유산 자락에서 태어나 '보수의 심장'인 대구 영남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할 때까지만 해도, 북한이란 활자 속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다 군 생활 3년 내내 최북단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에서 대북방송을 하게 됐다. 그의 목소리가 휴전선 너머까지 닿고, 북의 대남방송이 그가 머무는 초소를 울릴 때면 북한이란 존재가 피와 살을 가진 생생한 인간의 형태로 느껴졌다.

제대 후 동료 대부분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와 같은 국가기관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그는 대학원으로 향했다. 탈북민 정착 과정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며 만난 탈북자만 600여명. 2003년 사단법인 북한인권정보센터(NKDB)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탈북자들의 증언을 수집해 북한인권백서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13일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에서 만난 윤여상은 "북한인권은 한국 사회의 보수 진보 양측에서 모두 고립된 주제"라며 "일부 진보진영에서는 나를 보수꼴통이라고, 일부 보수진영에서는 빨갱이라고 한다"고 했다.

--어떤 계기로 북한 문제에 관여하게 됐나.

▲ 내가 대학에 다닐 때는 1987년 6·29선언이 나올 때다. 대학가에서 민족과 민주화가 최대의 화두였던 시절이다. 개인적으로 민족문제 중에서도 빨치산에 관심이 있었다. 지리산 인근 덕유산 자락에서 자라면서 6·25전쟁 시기 좌우학살에 대해 보고 들어 알고 있었다. '북한총람'이라는 책을 늘 갖고 다니면서 봤다.

--군 이력이 독특하다.

▲ 1989∼1991년 비무장지대 내 GP에서 '대면병'으로 복무했다. 남북은 온종일 서로를 상대로 방송하는데, 그게 동시에 멈추는 시간이 있다. 그 틈이 대면병이 활동하는 시간이다. 나는 배우 '최민수', '최재성'이라는 가명으로 북한을 향해 온갖 이야기를 했다. 마이클 잭슨이 월드투어 때 쓰는 스피커보다 더 출력이 좋은 확성기를 써서 넓게는 개성 지역까지 내 목소리가 닿았다. 남한사회나 국제정세에 대해 주로 설명했다.

--북한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텐데.

▲ 우리는 사병급이 했지만 그쪽에선 장교급이 동일한 형태로 방송을 했다. 최고의 베테랑들이 나오다 보니 초반엔 우리가 밀렸다. 성경, 불경, 브리태니커 사전을 줄줄 외우고 정말 박식하더라. 하지만 그 상태로 6개월만 지나도 고작 사병인 남한 병사들이 그들을 압도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익힌 것들, 예를 들어 친구와 한 싱거운 농담이나 시내버스 라디오에서 들은 광고 문구, 이런 콘텐츠를 그들은 갖고 있지 않았다. 나중에는 우리에게 대화에서 밀려 쩔쩔맸다. 폐쇄된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현안 이야기를 해보겠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인권을 유독 강조한다. 체감되나.

▲ 북한인권을 강조하는 것은 평가할 부분이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인권이란 멈추지 않고 계속 노를 저어야 개선되지, 노를 저었다 멈췄다 하면 오히려 (가해자 측이) 내성이 생긴다. 이러다 정권이 바뀌어서 들어왔던 물이 싹 빠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통일부 공무원들에게 보직 몇 개 더 만들어준 것밖에 안 된다. 그렇게 만들어준 보직이 북한인권 개선이 아니라 오히려 인권운동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걸 이미 겪어봤다.

--그럼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하나.

▲ 북한인권은 한국사회 진보, 보수 양측에서 고립된 주제다. 그 프레임을 해체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통령과 여당이 진보진영, 대북지원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이들을 더욱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북한인권이 '우리만의 리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와 여당은 북한인권 문제와 관련해 야당과 대화가 여의찮다는 입장이다. 북한인권법에 따라 북한인권재단을 설립해야 하지만 야당 몫 재단 이사가 추천되지 않고 있다는데.

▲ 그럴수록 야당과 진솔한 입장을 교환하고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난달 통일부가 출범한 '북한인권증진위원회'에도 야당 성향의 인사는 없었다. 그런 식으로 하면 무슨 야당의 협조를 받을 수 있겠나. 야당도 그러면 안 된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에 있는 분들은 1980년대 경제성장보다 인권이 먼저라고 싸운 분들 아닌가. 그런데 북한에는 왜 다른 잣대를 들이대나. 남북 평화와 화해를 위해서라는데, 그건 권력자 간의 평화일 뿐이다.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소장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소장이 13일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 사옥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2023.4.13

--통일부가 올해 처음으로 공개한 '2023 북한인권보고서'를 평가해달라.

▲ 통계적 의미도 없고 기록적 가치도 없다. 인권보고서란 결국 훗날 가능해졌을 때 가해자를 처벌하고 인권 유린을 청산하기 위한 근거 자료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누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인권 침해를 벌였다는 내용은 빠지고 두루뭉술한 증언만 있다. 시계열로 특정 인권침해가 줄어들었는지 늘어났는지 경향성 분석도 없다. 코로나19 사태로 북한이 국경을 봉쇄한 이후 한국으로 들어오는 탈북민 수는 계속 줄고 있는데, 과연 내년에도 통일부가 북한인권보고서를 발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마 어려울 것이다.

--NKDB는 2007~2020년 북한인권백서를 냈지만 지난 3년간은 발간하지 않았다.

▲ NKDB는 통일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에서 꾸준히 탈북민을 인터뷰해 자료를 축적해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인터뷰 협조는 해줬지만 어떻게 협조해줬는지 기록은 남기지 않았다. 남북대화가 진행 중인데 북한인권 문제를 정부가 나서서 공식적인 업무로 다루기 예민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공식 위탁계약을 맺었는데, 2016년 북한인권법이 통과되며 조사 협조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2020년 1월부터 어떤 협조도 받을 수 없었다.

--지금은 어떤 상황인가.

▲ 통일부에서 지난 3월부터 하나원 조사를 다시 허용해줬다. 이번 정부 들어 달라진 부분이다. 다만 형식적 협조가 아닌 실질적 협조를 해주면 좋겠다. 그래야만 유의미한 백서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북한도 국제사회의 인권 지적을 신경 쓰는가.

▲그렇다. 물론 북한 인권은 암울하다. 그러나 북한도 일부러 욕을 먹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국제사회의 우리 시각에선 충분하지 않지만, 그들도 개선 노력을 한다. 구조적으로 독재 체제 유지가 1순위여도 '보여주기' 식으로나마 일부 조치를 하는 것이다. 북한도 국제사회의 명백한 일원이며 요구하면 반응한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

--한대성 주 제네바 북한대표부 대사 등은 북한에선 인권침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 않은가.

▲표면적 반응과 실질적 반응의 차이다. 국제기구에 파견된 북한 관료들은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에 따라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반응해야 한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받은 지적을 내부에 빠르게 전달한다. 예컨대 요즘은 공개처형, 영아살해 등이 과거보다 빈도가 줄었다는 관측이 많다. 꾸준한 지적의 결과다.

--NKDB가 올해 설립 20주년이다. 소회가 있다면.

▲북한인권운동을 해온 분들이 모여 내부평가를 해본 적이 있다. 성과가 없지는 않았으나 많은 인권 피해자를 지켜보며 그 고통을 해결해주지 못했다는 좌절감과 무력감이 컸다. 하지만 이제 창의적으로 능력 있는 새로운 세대들이 이 일을 이어가고 있으니 희망이 있다. NKDB 연구원 가운데 폴란드, 영국, 미국, 프랑스 등 외국 국적이 여섯 분이나 있다. 이런 젊은 세대가 스크럼을 짜 국제무대에서 뭉친다면 김정은도 북한 인권을 개선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우리 정부와 정치권, 특히 야당이 힘을 합쳐준다면 더 개선 효과가 클 것이다. 인권은 원래 빠르게 개선되지 않고 더디게 더디게 나아진다. 현 정부 혼자 뛰지 말고 반대되는 입장의 분들과 함께 걸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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