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불의 시대’를 넘어서
봄 내내 산불이 일어나더니 지난 11일에는 강릉에서 다시 타올랐다. 바람이 이상하게 강하게 분 날이었다. 바람은 종잡을 수가 없었고 내리는 비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점심을 먹으려고 사무실을 나섰다가 아미타브 고시가 쓴 <대혼란의 시대>의 어떤 구절이 떠올랐다. 저자가 델리대학에서 문학 석사 과정을 공부하던 때 만난 사이클론에 대한 술회였는데, 버스가 뒤집히고 스쿠터들이 나무 위에 걸려 있는 폐허에 대해 아미타브 고시는 “시각적으로 접촉 가능한, 볼 수 있고 보여지는 하나의 종(species)처럼 여겨졌다”고 썼다. 이때의 충격적인 경험이 아마도 자신의 책에 “폭풍우·홍수 같은 기상 이변”이 자주 등장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괜한 예민함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지난 11일 분 봄날의 돌풍에서 나는 뭔가 섬뜩한 느낌을 받았는데, 강릉에 산불이 났다는 소식을 식당에 앉아서야 알게 됐다.
툭하면 심판을 들먹이고 지옥을 팔아먹는 것은 기독교의 고질이다. 고대의 대홍수 이후로 세계는 불이 심판할 것이라는 무서운 예언도 역시 기독교의 것이다. 기독교의 허황된 심판론을 믿지는 않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불로 뒤덮인 세계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불로 뒤덮인 마당에 불이 언젠가 우리를 습격할지 모른다는 상상은 그렇게 터무니없는 게 아니다. 몇년 전엔 호주를 태운 산불이 있었다. 비단 호주뿐 아니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도 대형 산불은 자주 있었다. 우리에겐 울진에서 대규모 산불이 났었는데, 점점 매해 봄에 일어나는 산불은 이제 일상이 된 듯하다. 그런데 이런 산불이 단순한 화재 사고가 아닐 수 있다는 게 문제다.
불이 근대화되며 세상이 변해
근대 산업 문명은 사실 불의 문명이다. 불과 더불어 인간의 문명이 시작된 것은 사실이지만 불이 인간을 지배한 문명은 근대에 들어와서일 것이다. 인력이나 축력, 혹은 풍차나 물레방아를 이용해 자연의 운동을 에너지로 바꾸어 쓰다가 불을 이용한 에너지가 근대 산업 문명을 촉진시킨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특히 전기의 발명은 사태를 급진전시켰다. 그리고 지금은 그 전기를 위해서 핵폭탄을 천천히 터트리는 방식인 원자력발전소가 지구를 뒤덮고 있다. 소년 지구에는 방사능 물질 때문에 생명체가 나타날 수 없었는데 기나긴 시간 동안 방사능 물질이 걷히면서 생명이 시작됐다고 한다. 이 장구한 세월에 대해 이 이상 말할 능력은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지금 불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우리의 생명과 문명 자체가 불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 모든 사물은 그림자를 갖는다. 이것을 거창하게 ‘사물의 운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불은 음식을 익혀 주고 차가운 것을 데워 주며 추위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지만 그 반대로 날것의 생생함을 앗아가고 차가움이 주는 명료함을 흐리게 하며 추위라는 원초적 조건을 우리의 감각에서 지워 버린다. 문제는 불의 근대화다. 불이 근대화되면서 불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물질적 부를 증대시키는 데에 이용되기 시작했다. 불이 생명을 위한 힘이 아니라 산업을 위한 에너지로 변하면서 세계도 변한 것이다. 불의 근대화가 지금껏 어떤 일을 일으켰는지 돌아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불에 대한 이런 인식 변화는 결국 불에 대한 권리를 소수의 손에 집중시켜 민주적인 공유를 벗어나게 했다. 공유해야 할 것이 공유되지 않으면 욕망의 바이러스가 번식하기 마련인데 소수가 움켜쥔 것에 대한 욕망을 다수가 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불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은 망각되고 만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우주가 물, 불, 흙, 공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인식이 꼭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만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구에 사는 생명에게 이 네 가지가 얼마나 기초적이고 근원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제 더 이상 사유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에게 4원소로 알려진 물, 불, 흙, 공기의 오염 혹은 타락은 지구에 사는 목숨 자체를 위험에 빠뜨린다. 실제로, 물의 오염이나 불의 남용, 흙의 유실이나 공기의 변질은 여러 질병을 일으키거나 지금 당장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현대 병적 현상 심층 원인일지도
그리고 인간의 정신과 영혼도 붕괴시킨다. 현대 사회에서 보이는 갖가지 병적인 현상들은 어쩌면 물, 불, 흙, 공기가 심층적인 원인일지도 모른다. 당연히 이런 사태는 근대 자본주의가 일으킨 것이지만, 자본주의를 넘어서겠다면서도 물, 불, 흙, 공기를 사유하지 않는 경제주의적, 물질주의적 사고 또한 그 책임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실질적인 평등과 정신의 자유와 영혼의 우애는 물, 불, 흙, 공기의 건강한 순환 속에서만 가능할 것인데, 나는 물, 불, 흙, 공기가 건강한 사회를 ‘고르게 가난한 사회’라고 불러 본다.
강릉 산불은 불의 남용(전선의 단락으로 추정) 때문에 벌어졌지만, 물(비)이 찾아와 그나마 막힌 숨을 내쉬게 해줬다.
황규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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