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재난참사 피해자의 존엄 회복을 위해
세월이 참 빨리 흘러간다고 느끼는 요즘이지만 매년 4월16일이 오면 어느덧 이렇게나 시간이 지났나를 느끼곤 한다. 누구도 잊지 못할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9년의 시간이 흘렀다. 9년의 시간 동안 누구나 안전하게 살고 일하며 만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유가족과 피해자, 시민들은 계속해서 ‘기억, 약속, 책임’을 이야기해 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10·29 이태원 참사라는 또 다른 재난참사의 고통을 마주하고 있다.
한편 개인적으론 2015년 4월16일에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아 서울광장에서 개최된 추모제에 참여했다. 이후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광화문 분향소로 이동했으나 그때 마주한 것은 경찰의 펜스와 차벽이었다. 경찰의 벽을 뚫고 어찌어찌 광화문에 왔으나, 그 후 모든 출입구가 막혀 광화문광장에서 수시간 갇혀 있어야 했다. 그렇게 이른바 ‘불법집회’를 막겠다는 경찰의 조치에 진실을 요구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차단되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도 추모와 애도 앞에 차가운 법을 들이대는 공권력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지난 10일 서울시는 서울광장에 설치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 대한 행정대집행을 이야기하며 변상금 2900만원을 부과했다.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위원회가 이를 규탄하는 입장을 내자 서울시는 반박 설명자료까지 내며 변상금 부과는 ‘공유재산법’에 따른 것이므로 정당하다고 했다.
지금 여기서 서울시와 경찰의 조치들이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그들이 근거로 이야기하는 집시법과 공유재산법 규정 자체가 기본권으로서의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인 부분이 있다는 점을 길게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그보다는 재난참사 피해자는 국제인권규범과 헌법에 따라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가 있고, 공권력의 위 조치들은 모두 이러한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2005년 유엔이 발표한 인권침해 피해 배상 권리장전을 비롯한 국제인권규범들은 피해자는 정의, 진실, 피해 회복에 대한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를 보장할 적극적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이러한 피해자의 권리는 부상에 대해 치료받고 생활비를 지원받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재난참사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고 진상을 알 권리, 차별과 혐오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기억·추모·애도를 받거나 할 권리, 추모사업·공동체 회복에 참여할 권리, 정당한 배상과 보상을 받을 권리. 이러한 모든 권리들은 희생자가 온전히 추모받으며 피해자가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동시에 이처럼 재난참사 피해자가 권리의 주체라는 것은 피해자가 단지 운 나쁘게 현장에 있다 휘말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재난참사, 특히 사회적 재난은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고도 아니고 책임자 개인 하나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니며, 사회구조 전반의 문제에서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재난참사를 일으킨 사회구조의 문제를 직시하고 피해자가 온전한 권리를 보장받도록 하는 것이 재난참사 시 국가와 사회가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조치이다.
그렇기에, 앞서 시민들의 추모 행렬을 가로막고 분향소에 변상금을 부과하며 법을 운운하는 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국가는 추모와 애도, 진실과 정의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9년이 넘도록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외쳐야 하고, 또다시 안타까운 재난참사를 마주한 이 현실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 차가운 법을 들이밀기 전에 국가와 지자체가 먼저 해야 할 역할이 아니겠는가.
세월호 참사와 10·29 이태원 참사를 비롯해 모든 재난참사 희생자와 피해자들을 기억하며 추모와 애도를 표한다. 재난참사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적어도 또 다른 비극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이제는 정말 사회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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