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바다로 통하는 길을 허하라
높은 규제 장벽 철거해서 보는 바다서 즐기는 바다로
부산은 대한민국 해양수도다. 참으로 많이 들었던 말이다. 그럴싸하게 포장됐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알맹이가 없다. 해양수도는 아무런 실권이 없는 선언적 의미에 불과하다. 그래서 부산시는 2017년 부산을 해양특별시로 만드는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다 여러 사정으로 중단했다. 멈췄지만 얻은 것도 있었다. 실익이 없는 해양수도보다 해양특별시가 특별법에 따라 법적 지위를 보장받고, 자체적으로 정책을 수립·실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느닷없이 해양수도와 해양특별시를 꺼낸 건 바다에 대한 전향적인 인식 변화를 주장하기 위해서다. 바다는 가까이 있지만, 결코 가깝지 않은 존재다. 그동안 바다는 바라만 보는 대상이어서 해양수도처럼 추상적이다. 때로는 그림의 떡이기도 하다. 바다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꿔보자.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친숙한 공간으로.
이런 주장을 하는 건 시대와 트렌드가 변했기 때문이다. 예전 바다는 항만물류와 조선업의 무대였다. 사람들은 여름철 두 달 동안 해수욕장을 통해 겨우 바다를 접할 수 있었다. 한여름 하루 100만 명의 관광객이 그 넓은 바다를 지척에 두고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과 그 주변에서 콩나물시루 같은 풍경을 연출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세상은 달라졌다. 사람들은 해외에 나가 바다를 어떻게 즐기는지 직접 보고 경험하면서 눈을 떴다. 물론 부산시도 그런 분위기를 간파했다. 2009년 ‘부산 해양레포츠 활성화 기본 계획’을 만들어 바다로 나가려고 했다. 해양레저, 해양레포츠, 해양스포츠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 정책과 사업이 등장했다.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해양레저 관련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했고 공무원들의 행정 경험도 일천했다. 그동안 바다를 얼마나 몰랐는지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그 결과 추진하는 사업마다 제동이 걸렸다. 대표적인 것이 부산 해양레저 사업의 핵심인 수영만 요트경기장 재개발이다. 2008년 시작했지만 사업자와의 법적 분쟁과 주민 반대 등이 겹쳐 지지부진하다. 또 10년 전부터 송정해수욕장과 수영강 등에 해양레저거점이 설치됐지만 아직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해상택시 등 새로운 해양레저 콘텐츠 개발 차원에서 추진하는 사업도 난항을 겪는다.
여기에 규제 장벽은 여전히 높다. 바다로 통하는 길에 규제라는 보이지 않은 철책이 세워져 사람들의 출입을 막는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장벽이 얼마나 높은지 간단하게 살펴보자. 동력이든 무동력이든 해양레저 기구를 이용하려면 바다에 계류장이 필요하다. 이를 지으려면 ‘수산업법’과 관련된 어민들의 어장인지 살펴보고, 피해가 예상되면 관련 기관이나 단체의 사전 동의를 구해야 한다. 또한 ‘공유수면 관리 및 매립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점·사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해수욕장은 괜찮은가. 그렇지 않다. ‘수상레저안전법’에 따라 금지구역이 정해져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
주민들의 반대도 만만찮다. 국내 서핑 성지로 꼽히는 송정해수욕장을 예로 들면 초기에 주민들과 마찰이 적지 않았다. 주민들은 여름철에 서핑을 위한 레저구역을 확대하고 수영구역을 축소하면 해수욕객이 줄어 수입에 타격을 받는다고 반대했다. 지금은 서퍼들과 주민들의 노력으로 서로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해수욕장에서는 여전히 레저구역 확대를 놓고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이 정도면 바다로 나가는 게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 칼럼을 쓸 필요가 없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부산 요트 관광이 꽃을 피우고 있다. 평일이나 주말 관계 없이 수영만 요트경기장에 가보면 안다. 요트를 타려는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모습은 달라진 현실을 보여준다. 2015년 시작한 요트 관광은 10년도 안 돼 한 해 50만~80만 명의 관광객이 즐기는 부산 해양관광 산업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수영만 요트경기장은 요트 관광의 핫플레이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고무적인 점은 민간 주도로 요트 관광 붐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들은 요트 관광뿐만 아니라 해양과 관련한 다양한 관광 산업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말한다. 계류장 같은 인프라가 확대된다면 부산이 바다로 나가는 길은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한다.
이제 부산시와 정부가 답을 할 차례다. 한해 수십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산업을 일으키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 것이다. 민간이 힘겹게 일궈 놓은 산업을 행정 기관의 관심과 지원 부족으로 살리지 못한다면 바다로 나가는 길은 예전처럼 막혀서 열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민관이 모여 앞서 열거한 과제를 해결해야 할 시간이다.
더 이상 지켜보기만 하는 바다는 사양한다. 누구나 제약 없이 바다로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길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김희국 편집국 부국장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