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터치] 매일 죽었다 깨나도
곰의 후예답게 겨울에는 잠이 많아져서 이불 밖을 잘 나서질 않는다. 매서운 바람이 불수록 내 몸은 뜨끈한 방 한가운데서 멈춘다. 나는 멈추지만 시간은 계속 흘러가므로 집에는 많은 것이 쌓인다. 설거짓거리가 쌓이고 빨래가 쌓이고 먼지가 쌓이고… 체지방이 쌓인다. 곰은 겨울잠을 자는 동안 살이 많이 빠진다는데 나는 왜 이런가?
그래도 봄이 오면 곰의 후예답게 기지개를 켜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335m쯤 쌓인 설거짓거리를 하루에 1m씩 해결하고 (335m를 겨우 다 해결하면 바로 겨울이 와서 쌓이기 시작하므로 우리 집 싱크볼은 하루도 빈 적이 없다.) 옥상에 나가 빨래를 널면서 바람에 실린 꽃 냄새를 찾는다. 17세 고양이, 고래와 나란히 앉아 햇볕에 피를 데우면서 건강히 잘 살자는 다짐도 한다. (그런 점에서 새해는 3월이 시작이어야 겠다.)
겨우내 찌운 살과 이별해보자고 구립 체육센터에 가서 아침 요가를 등록했다. 한 달에 5만 원을 내고 주 5일 50분짜리 요가수업을 들으며 생각했다. ‘오만 원을 내고 벌 받으러 왔구나!’ 오그라든 근육을 펼칠 때마다,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근육에 일을 시킬 때마다 아팠다. 내 몸인데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매번 당황했다. 건강하자고 시작한 운동인데 골병드는 것 아니냐, 그런 생각으로 꾸역꾸역 나갔고 3월이 지나 4월이 되었다.
오늘, 요가 선생님은 수업 시작부터 매트에 누우라고 했다. 누우려는데 뒷줄 아주머니가 “에휴” 한숨을 쉬었다. 그 소릴 들은 사람들은 웃어버렸다. 누워서 시작하는 날은 대체로 힘든 동작이 많았기 때문이다. 역시, 땀이 솟구치고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마지막 10분을 남기고 가장 집중이 필요한 동작을 했다. 팔에 다리 하나를 걸친 채 등 뒤로 손을 맞잡고 나머지 한 다리로 일어서는 동작이었는데 시도하다 손이 풀리거나 주저앉기 일쑤였다. 그래도 우리는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를 썼고 선생님은 애를 쓰는 사람 옆에서 요령을 알려주며 격려했고 나머지 사람은 끝내 해낸 사람을 향해 환호를 보냈다.
요가 선생님이 수업 마지막에 매트에 누우라고 했다. 우리는 모두 “아휴”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는 오늘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의 한숨이었다. ‘사바사나’ 자세만 하면 되니까. ‘사바’는 산스크리트어로 송장, 시체라는 뜻이다. 생명이 다한 주검처럼 가만히 누워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이완시킨다.
나는 가로 약 70㎝, 세로 약 180㎝의 작은 매트에 누워 봄날의 새가 찌르찌르 우는 소리를 들었다. 죽은 채로 누워있으니 조금 전의 격렬함은 전생의 일이 되어버렸다. 조금 있다가 선생님이 싱잉볼을 치면 나는 눈을 뜨고 다시 태어나겠지. 이렇게 힘든데도 꾸역꾸역 나오게 되는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50분 동안 오직 내 몸 하나만 생각하고 몸에 매달려 끙끙거리다가 지금까지 했던 끙끙거림을 지우는 사바사나를 하는 과정은 글쓰기와 매우 닮아있었다.
인물이 겪은 일, 특히 고통스러운 일의 속까지 들여다보려고 애를 쓰다가 글을 쓸 때는 그 일과 거리를 두고 관찰하듯 쓰면서 이 일을 한 사람의 특별한 일이 아닌, 모두에게 있을 수 있는 일 중의 하나로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사바사나를 하면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글쓰기를 끝내면 내 고통의 이야기는 이미 저만치 흘러갔다.
아헹가 요가의 창시자인 B.K.S. 아헹가는 ‘사바사나는 에고를 조심스럽게 포기하는 것이다. 자기를 잊으면 자기를 찾는다’고 했다 한다. 나를 잊으면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싱잉볼 소리가 들린다. 오늘도 잡생각에 사바사나는 실패했다. 나를 잊지 못했으니까. 그래서겠지. 매일 죽었다 깨나도 요가와 글쓰기는 어려운 것이. 그래도 나는 곰의 후예니까 백일동안 시도하면 뭐가 돼도 되지 않겠는가. 매일 다시 태어나면 ‘삶’을 조금은 ‘알’게 되는 ‘사람’에 가까워지겠지. 일단 오늘은 1m짜리 설거지 산을 해결하고 내일 다시 태어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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