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와인 한 잔] 새옹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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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영화를 다시 본다.
예상치 못한 일로 난관에 부딪혀 당황스러운 마음을 와인냉장고 깊숙이 숨겨둔 와인 한잔으로 잊을 심산이다.
매일 경험하지 못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매년 마셔보지 못한 많은 와인들이 만들어진다.
때론 억울하고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이겨내기엔 지난 세월이 느껴지는 숙성된 와인 한잔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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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영화를 다시 본다.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을 이겨내기 위한 방편이지만 가끔 삶의 교훈을 배우는 행복을 누린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주연배우 메릴 스트립의 메소드 연기와 화면 가득 펼쳐진 아프리카의 광활한 초원과 산, 바다의 풍경과 함께 울려 퍼진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 빛나는 영화다.
모차르트가 살았던 18세기 중반은 비이성적인 제도나 관습을 타파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옹호하는 계몽주의 사상이 자리 잡는 시기였다. 고용된 음악가에서 독립된 예술가로 자리 잡는 변혁의 시기, 프리랜서 예술가로서의 삶을 선택한 그에게 자유의 대가는 참담했다.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밤낮 없이 곡을 쓰지만 항상 빚에 쪼들리면서 살아야 했다. 하지만 자신의 생애를 통틀어 가장 극심한 고통 속에 살았던 시기, 그의 창조성은 더욱 찬란하게 타올랐다. 이때 만들어진 클라리넷 협주곡은 목동의 피리소리처럼 평화롭고, 수채화처럼 맑고 우아하다. 클라리넷 특유의 독특한 애수가 아련하게 깔리지만 결코 비탄으로 흐르지 않고 고통의 흔적도 없다.
지난 책을 다시 꺼낸다. 만물이 소생하는 새봄의 흥겨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까닭 모를 불안한 마음을 잊을 요량이다. ‘안나 카레니나’는 19세기 귀족사회에서 남성에 비해 사회적 제약이 많았던 여성이 자기 자신의 감정을 발견하는, 당시로는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주제를 다룬 사회소설이다.
미모의 귀족부인 안나의 부정한 사랑을 중심으로 1870년대 러시아 사회의 갖가지 양상을 묘사하고 있지만 안나 한 사람의 비극으로 한정시키지 않고 위선으로 가득 찬 귀족들의 도시생활과 당시 러시아 사회의 현실을 모든 면에서 조명하고 있다. 러시아의 소설가 안톤 체호프는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바르게 설명하는 것이다”고 했다. 안나 카레니나에는 어떤 문제도 해명돼 있지 않지만 모든 문제가 그곳에 정확하게 설명돼 있다. 레프 톨스토이의 수많은 소설 중에서 전체적인 구성부터 세부적인 마무리까지 예술적 완성도가 가장 높은 작품으로 꼽히는 이유다.
오랜 와인을 다시 마신다. 예상치 못한 일로 난관에 부딪혀 당황스러운 마음을 와인냉장고 깊숙이 숨겨둔 와인 한잔으로 잊을 심산이다. 인생사 새옹지마,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미리 판단하기 어렵고 항상 바뀌기 마련이다.
매일 경험하지 못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매년 마셔보지 못한 많은 와인들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자신의 입장과 위치에서 사물과 사건을 보게 된다. 그 반대편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실체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짧은 단편적 판단이 진실이고 전부인 양 착각을 한다. 때론 억울하고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이겨내기엔 지난 세월이 느껴지는 숙성된 와인 한잔으로 족하다.
역사는 늘 승자의 얼굴 표정을 담는다. 하지만 매일 바쁘고 매월 해야 할 여러 일들을 마무리하며 살아가는 일반인의 일상으로 승자의 삶을 누리기는 쉽지 않다. 우리를 승자로 만들어 주는 힘은 무엇일까?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데니스(로버트 레드포드)는 카렌(메릴 스트립)에게 “우리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해요.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지”라고 말한다. 인생은 상실의 연속이고 내 소유인 것은 없다. 우리를 승자로 만들어 주는 특별한 힘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가장 큰 매력은 현실을 뛰어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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