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절판된 책

박정오 출판편집자 2023. 4. 1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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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오 출판편집자

얼마 전 꼭 필요한 책이 있어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했더니, ‘절판’으로 분류돼 있었다. 책이 출간된 지 10년이나 지나기도 했고, 최근 판매량이 적어 출판사에서 절판 처리를 하지 않았나 싶었다. 책 정가는 1만8000원이었는데, 중고도서는 그보다 비싸게 판매되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빌릴까 고민했지만 소장해서 두고두고 읽고 싶은 마음에, 결국 택배비까지 합쳐서 정가보다 무려 만 원이나 더 주고 구입했다. 비록 대중적인 책은 아니었지만 우리 사회에 필요한 내용을 다루었는데, 어쩌다 절판돼 중고시장에서 간간이 떠돌고 있을까 싶었다.

책을 사고 싶은 욕구는 다양한 형태로 유입된다. 가까운 지인이 책을 추천할 때도 있고, 책 소개 기사 혹은 저자 인터뷰를 볼 때도 있고, 유명한 작가들의 SNS를 참고하기도 한다. 정말 읽고 싶은 책이면 곧장 사기도 하지만, 보통은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담아두는 편이다. 가끔 100권이 넘어갈 때면 한 번씩 정리를 하는데, 1~2년 전에 담은 책들을 볼 때면 뜨끔하기도 한다. 이참에 몇 권 주문할까 고민하다가도, 사놓고 안 읽은 책이 가득한 책장을 보면 결국 책 구입을 또 미룬다. 1, 2년을 고민해도 사지 않은 책은 그냥 장바구니에서 삭제하면 되는데, 미련이 남았는지 그대로 장바구니에 내버려 둘 때가 많다.

그러다 한 번씩,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이 품절되거나 절판될 때가 있다. 일시품절의 경우 조금 기다리면 다시 책을 구매할 수 있지만, 절판될 경우 책을 구매할 방법이 사라진다. 물론 도서관을 이용하면 쉽게 책을 빌릴 수 있지만. 소장해서 평생을 두고 보고 싶은 책이 절판될 때는 난감해진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중고 책을 구입하는데, 앞서 언급한 책처럼 절판된 책은 정가보다 비쌀 때가 많다.

출판사 직원으로서 절판은 그리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처음 책을 기획할 때는 희망찬 생각으로 가득하지만, 출간 후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거나 많은 시간이 지나면 편집자 역시 책에 대한 관심이 점점 시들해진다. 그와 함께 독자들의 관심사에서도 빠르게 사라진다. 책이 거의 팔리지 않음에도 창고 보관 비용은 계속 발생하니, 책에 대한 애정과 무관하게 경영의 관점에서는 책을 절판 처리해야 한다. 절판된 이후 훗날 누군가 그 책에 관심 가질 거라는 걸 알아도, 누군가 책을 구매하지 못해 아쉬워할 거라는 걸 알아도, 결국은 출판 역시 하나의 산업이기에 경제적인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

애써 만든 책을 절판하는 출판사의 마음과, 애써 찾은 책이 절판되었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독자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관심 가지는 책이 절판되지 않기를, 절판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건 매한가지다. 그럼에도 책이 절판되었다는 건 서점에서 팔리지 않았다는 걸 의미하며, 내가 관심 가지는 것과 상관없이 이 책을 찾는 독자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언제나 그렇듯, 현실은 이토록 냉정하다.

우리 사회에는 많이 팔리지 않아도 꼭 필요한 책이 있지만, 그런 책이 존재하기 위해선 많은 이의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큰 성과가 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묵묵하게 책을 기획할 것이고, 누군가는 높은 창고 비용을 감수하며 몇 년이고 책을 판매할 것이다. 훗날 누군가 책을 찾았을 때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또 누군가는 절판 대신 증쇄를 결정할 것이다. 이 번거로운 일을 누군가 해주면 고맙겠지만, 하지 않았다고 해서 비난할 수는 없다.


한 권의 책이 절판되었다는 건 그저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그칠 수도 있다. 다만 베스트셀러를 통해 우리 사회의 담론과 트렌드를 분석하듯, 절판된 책들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가 어떤 이야기에 관심 가지지 않는지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다. 책도 하나의 상품이기에 팔리는 책이 더 오래 살아남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팔리는 책들만 살아남고 팔리지 않는 책들이 쉽게 사라지는 세상에서는 그 누구도 팔리지 않는 책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중에는 우리가 훗날 찾고 싶어도 찾지 못하는 책도 다수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떤 책을 남기고, 또 어떤 책을 절판시킬 것인가. 이는 비단 출판사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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