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루 알레르기, 꽃 탓이 아니다? 주범은 바로 이 나무
서울 마포구에 사는 최모(39)씨는 이맘때마다 코가 간질간질하고 재채기가 끊이지 않는다. 콧물이 줄줄 흐르고 눈꺼풀이 부어오른다. 꽃가루 때문이다. 최씨는 “봄만 되면 되풀이되는 고통”이라고 했다. “올해는 중국발(發) 황사가 겹쳐 눈까지 따갑다”고 호소했다. 중국에서 황사는 봄철(3~5월)에 70% 이상 발생하는데 특히 4월에 가장 빈번하다.
◇'꽃가루 알레르기’ 주범은 꽃 아닌 나무
서울 낮 기온이 오르던 지난 4일 꽃가루 날림 정도를 측정하는 국립기상과학원이 수도권에서 올 들어 처음으로 참나무 꽃가루인 ‘참나무 비산(飛散)’ 5개를 관측했다. 작년보다 일주일 정도 빨라졌다. 5일엔 참나무 꽃가루가 442개로 급증했다. 꽃가루 알레르기 발병에도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기상청은 매년 국립기상과학원의 관측과 꽃가루 농도에 영향을 주는 기온·풍속·강수량 등을 종합해 알레르기 발생 정도를 나타내는 지수인 ‘꽃가루 농도 위험지수’를 발표한다. 4~6월엔 참나무·소나무 등 수목(樹木), 8~10월엔 돼지풀·쑥 등 잡초(雜草)에서 날리는 꽃가루 농도를 예상해 ‘낮음’부터 ‘매우 높음’까지 4단계로 예보한다.
봄철 꽃가루 알레르기라고 하면 화려한 봄꽃들이 유발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벚꽃이나 개나리처럼 곤충이 꽃가루를 전달하는 ‘충매화(蟲媒花)’는 알레르기를 거의 일으키지 않는다. 주범은 참나무·소나무처럼 바람을 타고 짝을 맺는 ‘풍매화(風媒花)’다. 그중 참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에 고르게 분포하고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성질(항원성)도 매우 강하다. 그래서 기상청이 ‘꽃가루 위험 지수’를 발표할 때 기준으로 삼는다. 우리나라에서 소나무, 참나무 다음으로 흔한 물오리나무도 꽃가루를 많이 내뿜는다. 적응력이 뛰어나 일조량이 충분하지 않은 곳에서도 잘 자란다. 소나무 꽃가루는 양은 가장 많지만 알레르기를 잘 일으키진 않는다. 권혁수 서울아산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6·25 직후엔 나무가 많이 없어서 꽃가루 알레르기가 덜했는데 1970년대 이후 나무가 많아지면서 꽃가루 알레르기도 더 심해졌다”고 했다.
◇꽃가루 날림 시기, 30년 전보다 한 달 빨라져
최근 서울 중구의 한 안과에서 만난 직장인 유모(47)씨는 “눈이 충혈되고 가렵다”며 “예전엔 4월쯤 증상이 나타났는데 요즘은 3월 말부터 이래서 죽을 맛”이라고 했다. 국내 알레르기성 결막염 환자는 2020년 기준 177만4027명이다. 특히 4월을 전후해 급증한다. 안과 외래환자 대부분이 알레르기 환자일 정도다.
꽃가루 알레르기 증세가 한번 나타나면 매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각자가 견디는 꽃가루 수준을 ‘10′이라고 할 때 8~9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한 번이라도 10을 넘겨 면역 시스템이 반응하면 이후엔 소량의 꽃가루가 들어와도 면역 시스템이 자동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꽃가루 농도는 기온이 20~30도 사이일 때 가장 짙다. 통상 4월 하순부터 5월 중순까지 기승을 부린다. 그런데 예년보다 기온이 상승하면서 식물 생태계 시계도 빨라졌다. 2019년 국제 의학저널 논문 ‘기후변화와 꽃가루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매년 하루(연평균 0.9일)씩 꽃이 일찍 피고, 꽃가루가 날리는 시점도 30년 전보다 한 달 앞당겨졌다. 한국꽃가루알레르기연구협회장 오재원 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1997년부터 2017년까지 국내 꽃가루 시기를 조사한 결과 1997년엔 새해가 시작하고 약 70일 뒤부터 꽃가루가 날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2017년엔 약 50일 뒤로 시간이 당겨졌다. 산림청 산하 국립수목원은 2021년 우리나라 대표적 침엽수 4종(소나무·잣나무·구상나무·주목)의 꽃가루 날림 시작이 2009년 관측 이래 보름 정도(연평균 1.43일) 빨라졌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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