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높은 문화의 힘’ 박물관을 살리는 법
김구 선생은 암울했던 시대 상황 속에서도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하였다. 왜 국방도 경제도 아닌 ‘문화강국론’이었을까.
현재 우리나라 문화 관련 법령들만 보면 김구 선생이 염원하던 문화강국론을 다 이룬 것 같다. 문화 관련 법령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문화에 필요한 시책, 지원, 육성을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제9조를 보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국·공·사립 박물관 및 미술관의 확충, 지역의 핵심 문화시설로서의 지원·육성, 학예사 양성 등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을 위한 기본 시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현실에서 선언적 문구에 그치고 있다.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에 의하면 한국에는 2022년 기준 국·공립 439개, 정부 등록 사립 364개, 대학 106개로 총 909개의 박물관이 있다. 이는 2004년 국제박물관협회(ICOM) 총회인 서울세계박물관대회 개최 후 3배로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현재 기초자치단체별 박물관 분포를 보면 어떤 지역은 인구 3만명당 1개가 있는 반면, 어떤 지역은 30만명이 넘어도 하나조차 없다. 전체 박물관 시설의 양적 증가는 있으나 지역에 따른 시민의 문화 향유 불균형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박물관 건립과 운영에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로서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해결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인프라가 구축된 정부 등록 비영리 박물관을 박물관이 없는 지역에 이전시키거나 재정을 지원하는 방법이 있다. 미국, 프랑스, 독일 등 대다수 선진국에서는 국·공립 박물관과 같이 비영리 박물관에도 재정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우리 정부 등록 박물관의 형태를 보면 고유번호증(비영리), 재단법인, 기업, 사업자등록증, 사립대학 등으로 혼재되어 있다. 정부도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제각각이다. 미국이나 서구 여러 나라들과 같이 한국도 박물관 구분을 영리와 비영리로만 구분해야 한다. 국제박물관협회에서도 박물관이란 비영리적이고 영구적인 기관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현실 상황에 따라 비영리 박물관들에도 국·공립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재정 지원을 하는 정책이 조속히 시행되어야 한다.
각종 통계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갈등과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힌다. 이런 현상의 원인 중 하나는 문화 도외시와 관련이 깊다. 이번 윤석열 정부에서는 원칙과 공정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면서 문화기본권 보장과 지역 중심 문화국가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에 따라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문구에 머물고 있는 문화 관련 법들이 현실로 구현돼, 시민의 문화적 수준을 높이는 기폭제가 되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는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으로 우리의 삶은 더 편리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한 인간 존엄성 결여 등의 문제도 심각하게 동반될 것이며, 그에 따른 인간 중심의 문화적 가치도 더욱 요구될 것이다. 따라서 박물관은 문화 척도의 대명사로서 시대에 걸맞은 문화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그래야 AI 시대가 도래하더라도 더 높은 문화적 가치를 지닌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박종락 한국전통창조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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