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 던지는 오타니, 쓸려나간 MLB 타자들[강호철의 스포트S라이트]
<스포트S라이트>
스포츠를 통해 사람들이 써내려가는 휴먼스토리와 화제가 되는 이슈를 집중 조명합니다.
메이저리그에 ‘스위퍼(sweeper)’ 열풍이 뜨겁다. 보통 슬라이더와 비슷한 구질이지만 수평으로 꺾이는 각도가 훨씬 크다. 마치 빗자루질하듯 좌우를 휩쓴다 해서 ‘스위퍼’란 명칭이 붙었다. 작년부터 메이저리그 투수들 사이에 간간이 유행하던 스위퍼를 올해 태풍급으로 바꿔놓은 주인공은 일본 ‘국보급 야구 스타’ 오타니 쇼헤이(29·LA 에인절스)다.
오타니가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결승에서 9회 마지막 타자 미국 마이크 트라우트를 풀 카운트 승부 끝에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운 공이 바로 스위퍼였다. 당시 그 스위퍼 시속은 140㎞. 좌우로 43㎝나 꺾였다. 홈플레이트 너비가 43.18㎝이니 타자 입장에선 몸쪽으로 바짝 붙여 오던 공이 나중엔 바깥쪽 끝으로 휘어진 셈이다.
◇오타니의 스위퍼는 왜 특별한가
스위퍼는 일종의 변종 슬라이더다. 다만 일반 슬라이더 그립에서 엄지손가락을 좀 더 공 밑으로 집어넣어 던진다. 좌우 변화를 더 심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오타니 스위퍼는 일반 슬라이더가 좌우로 18~20㎝ 정도 휘는 데 비해, 평균 45.7㎝ 휘어진다. 오타니는 메이저리그 투수 중 스위퍼를 가장 많이 구사한다. 오타니 스위퍼의 장점은 구속(球速)이다. 스위퍼를 던지는 다른 투수들이 평균 시속 130~132㎞인데, 오타니는 135~137㎞. 공이 빠르면서도 좌우 변화가 심해 위력이 더해진다. 오타니는 마음만 먹으면 스위퍼를 140㎞ 이상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한다. MLB닷컴 통계를 보면 오타니가 지난 시즌부터 올해까지 이 스위퍼를 결정구로 삼진 89개를 잡아냈고, 205차례 헛스윙을 유발했다. 둘 다 리그 최고다. 오타니 외에도 미치 켈러(피츠버그 파이리츠), 브래드 켈러(캔자스시티 로열스), 맥스 프리드(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이 스위퍼를 즐겨 활용한다.
메이저리그에 2018년 첫발을 디딘 오타니는 투수로서는 예열을 거쳐 지난해부터 리그를 지배하고 있다. 처음 두 자릿수 승리(15승)를 거뒀고, 평균자책점도 처음으로 2점대(2.33)를 찍었다. 올해는 전투력을 더 끌어올렸다. 올 시즌 3차례 등판, 2승 무패, 평균자책점 0.47. 19이닝 동안 탈삼진 24개. 피안타율은 0.100이다. 이닝당 출루허용률은 0.95. ‘언히터블(unhittable)’이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가공할 성장 이면에는 스위퍼라는 주 무기 장착이 자리 잡고 있다. 오타니는 메이저리그 초반 160㎞를 넘나드는 포심패스트볼(직구)에 많이 의존했다. 절반 가까이였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스위퍼를 많이 던지기 시작, 전체 중 비율이 37%로 직구(27%)를 처음 넘어섰고, 올해는 그 비율이 49%에 이른다. 지난 11일 워싱턴 내셔널스 타자 27명을 상대로 오타니가 던진 공 92개 가운데 51개가 스위퍼였다. 스위퍼에 직구, 싱커, 커터, 스플리터, 커브 등까지 적절히 섞어 내셔널스 타선을 7이닝 1안타 6탈삼진 무실점으로 봉쇄했다. 이전 5일 시애틀 매리너스전에서도 6이닝 동안 공 111개 중 49개를 스위퍼로 던지면서 삼진 8개를 잡아냈다.
◇스위퍼, 슬러브… 변화구가 진화한다
MLB닷컴은 올해부터 구종 분석에서 스위퍼를 일반적인 슬라이더와는 별개로 다룬다. 한국 야구 메이저리그 선구자였던 박찬호가 현역 시절 커브보다는 빠르면서 슬라이더처럼 좌우 변화가 일어나는 ‘슬러브’란 공을 던졌는데, 이 공도 올해 별개 구종으로 독립했다.
하지만 ‘스위퍼’나 ‘슬러브’가 새로운 ‘마구’는 아니다. 스위퍼란 용어가 처음 소개된 건 2000년대 초반. 전에는 투구 분석 시스템이 덜 개발되어 이 구질들을 전통적 구종들과 구분할 기준을 찾지 못했을 따름이다. ‘가문의 비기(祕技)’처럼 선수들끼리 알음으로 전수되던 이런 변화구가 최근 정밀 분석 시스템에 힘입어 모든 투수가 그립과 투구 방법을 익힐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투수들이 모두 특정 구종을 구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투수들마다 손 크기, 손가락 길이, 악력, 손목 힘 등이 모두 달라 익히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한국 야구의 전설 선동열도 손가락이 덩치에 비해 작아 당시 유행처럼 번졌던 포크볼을 던지지 못했고, 대신 수평 변화가 큰 슬라이더를 주 무기로 삼았다. 당시 선동열의 슬라이더는 ‘스위퍼’와 비슷한 면이 많다.
메이저리그는 필살기가 유행을 따라 변한다. 10년 전에는 체인지업 열풍이 일어났고, 커터나 라이징 패스트볼 등이 흐름을 주도한 때가 있었다. 올해는 오타니와 함께 스위퍼가 대세인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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