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허무한 봄

기자 2023. 4. 17.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피었는가 싶었는데 져버린 봄꽃을 보면 허무하다. 비라도 한 번 내리면 목련꽃잎은 흙탕물에 뒹굴고, 벚꽃잎은 속절없이 빗물에 씻겨나간다. 그래도 ‘찬란한 봄’ 대신 ‘허무한 봄’을 노래한 곡은 많지 않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로 시작하는 ‘사철가’는 구전되어 내려오는 단가다. 영화 <서편제>(사진)에서 유봉(김명곤 분)이 송화(오정해 분)를 데리고 가는 장면에 삽입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봄은 찾아왔건만은/ 세상사 쓸쓸하더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날 백발 한심하구나”로 이어지는 노랫말이 봄처럼 짧은 인생의 허무를 노래한다.

“봄날이 오면은 뭐하노 그쟈/ 우리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데/ 꽃잎이 피면은 뭐하노 그쟈/ 우리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데.”

낭만가객 최백호의 ‘그쟈?’도 나른한 봄날의 한가운데 텅 빈 마음을 노래한다. “그래도 우리 맘이 하나가 되어/ 암만 날이 가도 변하지 않으면”이라고 위로해보지만 헛헛하기는 마찬가지다. 최백호가 부르면 허무의 색깔은 더 간절해진다.

듀오그룹 캔이 불러서 히트한 ‘내 생애 봄날은’도 “촛불처럼 짧은 사랑/ 내 한 몸 아낌없이 바치려 했건만/ 저 하늘이 외면하는 그 순간/ 내 생애 봄날은 간다”라고 노래한다. 원래 일본 그룹 튜브의 원곡 ‘선명한 기억’을 번안하여 드라마 <피아노>의 삽입곡으로 불러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새순이 돋고,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봄은 찰나의 순간에 우리 곁을 떠난다. 청춘은 다시 올 봄을 기다릴 수 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는 봄이 아쉽다. ‘내가 내년에도 저 꽃을 볼 수 있을까’라는 노인의 탄식은 그래서 간절하다. 남은 봄날의 낮과 밤을 허투루 보내지 말 일이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