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전세사기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월세 계약이 종료될 때마다 임대인은 ‘다음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받아 가라’고 했다. 이사 갈 집도 정해졌는데 새 세입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공인중개사는 원래 그렇다고 했다. 정작 임대인은 남의 돈을 돌려주지 못하는 것에 마음 쓰는 기색이 없었다. 세입자만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제도의 미비가 전세사기, 깡통전세의 토양이었다. ‘1000만원 투자로 월세 받는 법’을 권하는 세상 아닌가.
깡통전세, 전세사기 문제가 지속적으로 예견됐지만 정부는 마땅히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정부는 깡통전세 문제의 확산 가능성이 적다고 보고, 전세사기를 저지른 일당에 대한 사법적 단죄를 중심으로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전국 주택의 전세가율은 2020년 65.1%, 2021년 75.8%에서 2022년 90.6%로 증가했다(한국도시연구소). 조직적인 사기가 없더라도 주택가격이나 전세가가 하락하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일이 늘어날 것이다. 정부가 손 놓고 있는 사이 사태는 심각해졌다. 지난 2월, 전세사기를 당한 인천 미추홀구 피해자가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지난주 금요일 또 다른 피해자의 주검이 발견됐다.
정부는 뒤늦게 피해자들이 임시로 거처할 수 있는 공공주택과 저리 대출 등 몇 가지 대책을 꺼냈지만 한참 부족하다. 등기부등본으로는 알 수 없는 임대인의 미납 세금에 대한 정보를 임대인 동의 없이도 볼 수 있게 됐지만 이는 계약 후에 가능해 실효성이 낮고, 피해자를 위한 저리 대출은 새 임대인이 전세금을 더 많이 올릴 수 있는 새로운 호재가 되어버리는 식이다. 미추홀구에만 2700채의 전세사기 피해 주택이 있지만 정부가 준비한 공공주택은 200호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지금도 매일매일 피해 주택이 경매에 오르고, 피해자들은 쫓겨나고 있다.
피해자들은 가장 시급한 조치로 경매 중지를 꼽는다. 이후 대책이 마련된다 할지라도 이미 경매로 쫓겨난 뒤라면 소급 적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더불어 해당 주택의 공공매입을 통해 주택은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하고, 세입자들의 보증금은 보호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피해자와 연대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은 조속한 특별법 제정으로 피해자를 보호하고, 전세가가 주택가격을 상회하지 않도록 제한하고, 세입자 권리를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개인이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정부는 세입자를 보호하는 데 무관심했고, 은행은 대출 이자만 두둑하면 그만이었으며, 가장 가까운 전문가인 공인중개사는 임대인의 이익을 수호하는 데 익숙했다.
지난 3월 서울에서 열린 추모 행진에서 시민들은 ‘전세사기,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었다.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 정부와 국회는 피해자 보호와 재발 방지를 위해 긴급하고 강력한 조치에 나서라.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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