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 풀린 ‘은행 알뜰폰’, 셈법 복잡해진 통신업계

채제우 기자 2023. 4. 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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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3사, 경쟁자·고객 사이 고심… 중소알뜰폰 업체는 적극 반대

최근 은행들도 알뜰폰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빗장’이 본격 풀리면서 이동통신 시장 내 서비스 경쟁이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다만 경쟁 활성화를 통해 통신비 인하를 유도하려는 것이 정부 취지지만, 이를 바라보는 기존 통신 업계 속내는 복잡하다. 중소 알뜰폰 업체는 “은행이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기존 시장을 교란시킬 수 있다”면서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반면, 통신 3사 내에선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통신 3사 입장에선 은행 알뜰폰이 본격화되면 은행들이 통신 망을 빌려 쓰기 위해 사용 대가를 내는 ‘고객’이 되는 동시에, 앞으로 싼 요금제와 새로운 혜택을 내세워 통신 3사를 위협하는 경쟁자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특례를 인정받아 2019년 말부터 알뜰폰 서비스를 해온 KB국민은행 사례에서 봤듯이, 은행 알뜰폰은 카드 결제 할인, 금리 우대 등 금융·통신 서비스 결합이 가능하다”며 “이 때문에 통신 업계가 경계를 풀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 알뜰폰 “은행, 생태계 교란시킬 것”

중소 알뜰폰 업체들이 은행 알뜰폰에 적극 반대하는 이유는 KB국민은행의 알뜰폰 ‘리브엠’을 겪으면서 생긴 갈등의 영향이 크다. 원래 은행은 통신업을 할 수 없지만, KB국민은행은 규제샌드박스에서 특례를 인정받아 2019년 12월부터 알뜰폰 서비스를 시작한 데 이어 3년 만인 작년 말 40만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리브엠은 알뜰폰 업체들이 통신 3사에서 망을 빌리는 대가로 내는 비용(원가)보다도 더 싼 요금제를 소비자들에게 판매해 기존 업체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관계자는 “리브엠은 2020년과 2021년 영업손실이 각각 139억원과 184억원이었다”며 “이에 국민은행이 가입자 모집을 위해 수익성을 포기하고, 도매 대가(통신 3사 망 사용 대가) 이하로 요금제를 판매해 시장 건전성을 해쳤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 은행들의 알뜰폰 규제가 풀린 것도 특례 기간 만료를 앞둔 KB국민은행이 금융위원회에 규제 개선을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그 결과 금융위가 지난 12일 알뜰폰 사업을 은행의 부수 업무로 인정했고, 다른 은행들도 원할 경우 특례 없이 알뜰폰 사업에 뛰어들 수 있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리브엠은 망 사용 대가로 내는 비용을 감안하면 월 3만3000원짜리로 내놔야 할 요금제를 최저 월 2만2000원에 판 적도 있다”며 “다른 은행들이 알뜰폰 사업을 하게 된다면 과연 다를 게 있겠느냐”고 했다.

이 때문에 중소 알뜰폰 업체들은 은행들이 망 사용 대가(원가) 이하로 알뜰폰 요금제를 내놓지 못하게 금지하고, 이들의 시장점유율도 일정 수준으로 규제해줄 것을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국회 과방위 박완주 의원실이 과기정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알뜰폰 시장에서 40여 업체에 달하는 중소 알뜰폰의 점유율은 2020년 56%에서 지난해 41.5%로 줄어든 반면, 리브엠은 같은 기간 1.4%에서 4.7%로 늘었다.

◇통신 3사 “은행은 고객? 경쟁자?” 고민

통신 3사는 이 문제에 대해 공식 입장을 따로 내놓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통신 3사엔 은행들이 알뜰폰 서비스에 뛰어들면 ‘고객’이면서 ‘경쟁자’가 되는 측면이 다 있기 때문에 현재로선 내부 평가가 뒤섞여 있는 상태”라고 했다. 현재 KB국민은행만 망을 빌려 쓰고 있지만, 이번 금융위의 규제 개선으로 얼마든지 다른 은행들도 망 사용 대가를 내는 알뜰폰 사업자가 될 수 있게 된 셈이다. 반면 통신 3사 입장에선 막강한 자본력을 보유한 은행은 통신 3사의 입지를 줄어들게 만드는 잠재적 경쟁자이기도 하다.

이 같은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단체인 컨슈머인사이트가 지난해 말 3만5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2년 하반기 이동통신 서비스 만족도 조사’에서 은행 알뜰폰인 리브엠은 만족도 78%로, 기존 통신 3사인 SK텔레콤(61%), LG유플러스(51%), KT(47%)를 모두 앞섰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은행은 그동안 무풍지대를 누렸던 통신 3사의 과점 체제를 허물 메기가 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정부는 경쟁 속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높은 중소 알뜰폰 업체들을 위한 상생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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