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천 칼럼] 고금리의 그림자-한·미의 다른 행보

기자 2023. 4. 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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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은 세계 각국의 경제정책, 거시경제와 소득분배, 고용시장 향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구촌 시민들 모두가 숨죽이고 연준의장 제롬 파월의 입을 쳐다본다. 고금리 기조라 해도 해당 국가의 맥락과 조건, 정책혼합 방식에 따라 그 의미와 효과가 다르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달러화 강세는 자국 인플레 압력을 완화하고 다른 나라에 전가하는 효과를 낳는다. 비기축통화국이면서 대외의존도가 높고 경제체력이 약한 나라에서 고물가·고금리·강달러의 3고(高)가 가하는 타격은 한층 심하다.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고물가가 과잉수요 때문이라 진단하고 고금리로 고물가를 잡겠다고 나선 세력들의 외눈박이 처방책의 결과로 한국에선 거대과점 은행들이 이자장사로 돈장치를 한 반면 미국에선 실리콘밸리은행발 은행위기가 닥쳤다. 금융 규제완화, 미실현손실이 가져올 위험을 무시한 은행의 행태와 함께 급격하게 금리 인상을 밀고간 연준의 통화정책 탓이 실로 크다. 연준의 기준금리는 2022년 1월 0.00~0.25%에서 2023년 3월 4.75~5.0% 구간까지 치솟았다. 은행위기와 마주해 금융안정이라는 큰 숙제가 떨어졌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둔화에 이어 생산자물가 상승률이 크게 하락했고 연준 스스로 하반기 완만한 경기침체를 전망했다. 그런데도 연준은 물가안정 제일주의에 집착해 또 한 번 추가적 금리 인상을 강행했다.

연준이 신주 모시듯 하는 이상한 목표가 있는데 그것은 물가상승률을 2% 목표치까지 낮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이 없지는 않지만 그런 비용은 물가안정이라는 대의를 위해 감수해야 한다, 이것이 확고한 연준 및 거기에 깔린 경제학의 입장이다. 한국은행의 기조도 연준과 대차는 없다. 한은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물가안정목표제를 도입했고 중기 물가안정목표치도 미국과 같은 2%다. 그런데 이번에 한은은 두 차례 연속으로 금리를 동결했는데 이는 그만큼 한국의 경기하강 정도가 심각함을 방증한다.

조 바이든의 미국과 윤석열의 한국은 가는 길이 아주 다르다. 바이든 정부는 고금리 긴축통화정책의 타격을 즉각적인 초과수요를 일으키는 대규모 재정확장정책으로 만회하는 신정책조합을 시행한다. 긴축재정과 완화적 금융의 조합에서 뒤바뀐 ‘정책역전’이다. 그러면서 기후위기 대응, 반도체 등 제조역량의 재구축을 위한 신산업정책을 공격적으로 추구한다. 또한 보조금 지원조건으로 초과이익공유를 강제하고 부자 및 대기업 증세정책을 추진한다. 미국은 고금리에 따른 인플레 압력을 타국에 전가하고 반도체 기밀까지 요구하는 깡패짓도 불사하는 한편 이렇게 신뉴딜적 경제정책을 펴고 있다. 탈세계화와 글로벌 공급망 변화, 고물가·고금리시대 제국이 구사하고 있는 이 양면적 정책혼합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다른 한편 한국의 윤석열 정부는 고금리 금융긴축과 재정긴축의 악성 조합을 밀고 간다. 대기업에 무조건 퍼주기식 감세와 지원을 할뿐더러 부자감세, 복지 축소, 노조 때리기와 고강도 노동시장 유연화를 감행한다. 이는 나라경제 활력을 죽이고 서민, 노동자와 취약한 중산층 살림살이를 숨막히게 하는 최악의 궁핍화 정책조합이다. 불안정노동 및 가계부채에 결박된 불평등체제와 경기침체가 맞물리는 악순환을 벗어나기 어렵다.

이미 그림자가 어두운데 고금리로 고물가를 잡겠다는 행진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이 정책에 대한 의문점은 한둘이 아니다. 통화정책은 최소 6개월에서 2년까지 시차가 있는데 지난달 동향을 보고 금리정책을 결정하는 게 말이 될까. 물가안정목표 2%의 근거는 무엇인가. 오늘의 인플레이션은 수요 측 요인보다 공급 측 요인이 더 우세하지 않나. 통화정책은 우하향하는 필립스곡선(실업률과 물가상승률 간 상충관계)을 가정하는데 이 곡선이 평평해졌다는 증거가 많다. 금리 인상으로 경제활동수준을 위축시키려 하는데 그 민감도가 약할 수 있다.

따라서 경제가 침체되고 실업률이 높아질 때까지 금리를 반복적으로 인상하게 되는 것이고 그 비용은 크다. 중앙은행의 고금리정책은 금리불로소득을 활성화하는 반면 실질경제와 고용, 노동소득을 공격한다. 피케티식으로 말해 이자수익률(i)이 경제성장률(g)이나 임금상승률보다 더 높은 사태가 나타날 수도 있다. 문제는 미국이 인플레 압력을 세계에 전가하면서 신뉴딜적 정책조합을 구사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은 그 압력을 그대로 받아안으면서 최악의 정책조합으로 나라와 국민의 살림살이를 죽이고 있다는 것이다.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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