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자 아사드’의 국제사회 귀환… 중동의 밤이 찾아오고 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2023. 4. 17.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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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중동천일야화]
시리아 내전 후 아랍연맹 퇴출… 5월 ‘아랍정상회의’ 참석 가능성
내전으로 50만명 죽고 피란민 1150만명 발생, 화학무기 사용 의혹도
중국·러시아 아사드 편든 덕분… 두나라 존재감 중동서 더 커질듯
파이살 메크다드(왼쪽) 시리아 외무장관과 파이살 빈 파르한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외교장관이 지난 12일(현지 시각) 사우디 항구도시 제다에서 회담을 하고 있다. 사우디는 오는 5월 아랍연맹 정상회의에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초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시리아는 2011년 내전 발생 후 아랍연맹에서 퇴출당했다. /로이터 뉴스1

시리아가 돌아오고 있다. 5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리는 아랍 정상 회의에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참석할지 모른다는 후문이다. 성사된다면 아랍연맹에서 퇴출당한 지 12년 만의 귀환이다. 내전 기간 시리아 정부는 잔혹했다. 집속탄, 열압탄, 통폭탄 등 국제법이 금하는 비인도주의적 무기를 사용했다. 사망자만 50만명이 넘는다. 절정은 대량살상무기(WMD) 사용 의혹이었다. 국제사회는 정부군이 2013년 여름부터 사린가스와 염소가스 등 화학 무기를 살포했다고 보고 있다. 사실이라면 정부가 국민을 살해한 것이다. 사람들은 고향을 떠났다. 국경 넘은 난민이 550만, 국내 피란민은 600만 내외로 추정된다. 전체 인구가 2200만명이니 국민의 절반 이상이 집을 떠났다.

시리아 내전은 특정 국가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난민과 테러로 국제정치의 지형을 바꾸었다. 국경 통제가 불가능해지자 난민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튀르키예, 요르단 등으로 흩어졌다. 일부는 발칸반도를 거쳐 유럽 본토를 향했다. 반면 혼돈을 먹고 사는 테러리스트들은 시리아로 들어왔다. 2014년 소위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 북부에 똬리를 틀었다. 시리아발(發) 난민이 반이민 정서와 우경화를 촉발하며 유럽을 곤혹스럽게 했다면, 시리아행(行) 테러리스트들은 세계를 공포에 빠뜨렸다. 아사드는 이 상황을 이용했다. 자신을 흔들면 시리아는 IS의 땅이 될 것이라며 반군을 지원하는 서방과 아랍을 위협했다. 이 위협은 먹혔고 내전 초기 정부에 불리했던 판세가 뒤집혔다.

시리아
시리아 내전 후 시리아 국민 피해

아랍의 봄 때 무너진 여타 국가와 달리 시리아 정부가 버틸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러시아와 이란의 개입 때문이었다. 러시아는 시리아 화학 무기 살포 사건 중재를 계기로 아사드를 옹호하며 국제사회의 시리아 개입을 차단했다. 이란 역시 시리아와 연대하며 시아파 벨트를 구축했다. 아사드가 속한 알라위파가 시아파의 뿌리에서 나왔다는 점을 도구로 활용한 것이다. 이란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 및 시아파 민병대들이 시리아로 이동, 정부군에 합세했다. 러시아는 시리아에 중동 교두보를 확보했고, 이란은 시리아에서 중동 내 영향력을 확대했다.

결국 아사드 정권은 살아남았다. 반군이 장악했던 영토 대부분을 수복했다. 그리고 다시 아랍연맹 복귀를 타진하고 있다. 아사드를 용납할 수 없다던 다수 아랍 국가는 태도를 바꾸었다. 지난달 무함마드 UAE 대통령은 아사드 내외를 맞았다. 시리아가 형제 곁을 오래 떠나있었지만 이젠 돌아올 때라며 반겼다. 돌아온 탕자를 맞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퇴출 당시 상황과 명분은 달라진 게 없다. 아사드는 공식적으로 반성한 적이 없다. 화학 무기 사용에 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카타르, 쿠웨이트 등은 시리아의 연맹 복귀를 반대한다. 하지만 지역 강국 사우디와 UAE 등 다수의 아랍 국가는 이미 현실을 인정하고 아사드를 받아들이려 한다.

물론 화해와 관계 개선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번 시리아의 아랍 정상 회의 복귀 논의에는 무거운 함의가 있다. 더 이상 보호책임 규범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보호책임이란 특정 국가가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살상하는 경우에 대비하는 원칙이다. 유엔 등 국제사회가 나서서 일시적으로 해당 국가의 주권 행사를 중단시키고 직접 시민을 보호하자는 약속이다. 2011년 나토가 리비아에 개입했던 사례다. 리비아에서보다 많은 민간인이 시리아에서 정부에 의해 죽었지만, 국제사회는 개입하지 못했다. 러시아의 거부권 때문이었다. 특정국의 독자적 개입도 불가능했다. 전쟁에 지친 미국이 대규모 전투 병력을 파견하기는 어려웠고, 사우디와 UAE 역시 예멘에 발목이 잡힌 상태였다. 러시아군이 주둔하고 있는 시리아에 섣불리 개입할 경우 자칫 확전될 수도 있었기에 국제사회는 IS 격퇴 작전 외에는 소극적으로 관여하는 데 그쳤다.

그렇다면 이제 중동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존재감이 더 크게 드러날 것이다. 주변국 권위주의 지도자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혹여 자국 내에서 내전이 일어나고 이를 물리력으로 진압해야 할 일이 발생하더라도 러시아 편에 서는 게 낫다는 것을 알았다. 리비아와 시리아 사례를 비교하면 금세 판단할 수 있다. 주권 존중과 내정 불간섭 원칙을 고수하는 러시아 및 중국과 함께하면 정권의 생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아사드가 입증한 것이다. 최근 중국의 중동 관여 확대와 미국의 영향력 퇴조의 맥락이기도 하다.

이 와중에 사우디의 게임이 흥미롭다.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사드를 품는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 이란과의 데탕트 국면에서 사우디는 하루빨리 시리아 등 친이란 세력을 ‘시아파 연대’에서 떼어놓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주도 ‘아랍’ 공동체로 끌어다 놓으려는 포석이다. 필경 사우디는 시리아 재건 지원에 힘쓸 것이다. 이란은 여력이 없다. 승리한 아사드 입장에서는 사우디와 가까워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라크와 예멘의 친이란 시아파 아랍 세력들에 대한 사우디의 신호이기도 하다. 이란과 화해하며 주변부 안정화에 나서는 행보이지만 동시에 이란의 영향권 약화 시도의 의중도 읽힌다. 여전히 지정학적 수싸움이 만만치 않다.

국제정치는 때론 비정하다. 화학 무기 및 비인도적 살상 무기 사용 의혹에도, 테러·난민·마약 등 이른바 인간 안보 위협의 원인 제공자임에도 불구하고 아사드는 건재하다.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이전의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국제정치의 현실이고 아사드는 그 현실을 반영하는 상징이다. 하지만 정부에 희생된 시리아 국민들은 누가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내전 후 시리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혹 피의 숙청과 보복이 있지는 않을까? 이렇듯 아사드의 귀환은 일련의 물음을 던진다. 그의 귀환은 우리에게 익숙했던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저물어가는 노을로 비친다. 일견 차분하고 아름답지만, 곧 찾아올 밤의 예표(豫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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